우리가 사랑한 도시 - 역사, 예술, 문화, 미식을 넘나드는 인문 기행
김지윤.전은환 지음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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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동이 준비되면 허리가 굽은 종업원이 다정한 말 한마디와 함께 그릇을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그 단순한 순간에 찾아오는 무장 해제된 것 같은 감각이 좋다.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교토의 노포 식당을 찾다 보면, 일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가끔 찾아오는 여행객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조금 더 젊었던 그들의 모습과 또 조금 더 젊었던 우리의 여행이 남아 있다.              p.61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 걸까.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완전히 낯선 곳에 있을 때 발견하게 되는 내 모습이 한국에 있을 때의 나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자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자신 안에 있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여행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세상을 더 이해하게 된 두 저자가 들려주는 세계 각지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권력이 예술을 사랑했던 순간들이 남아 있는 도시 피렌체, 사람들로 붐비는 명소보다 조용한 골목에서 더 잘 보이는 교토, 지루하다고 믿었던 도시의 반전을 보여주는 워싱턴 D.C., 그리고 불세출의 화가들을 낳은 도시 암스테르담 등 이 책은 8개 도시에 관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볍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 같으면서도,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깊이 있는 내용들이 가득해 인문학서로도 훌륭한 책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이 책이 색다른 가이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명하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기 때문에 정한 여행지에 대한 흔한 정보가 아니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줄 테니 말이다. 두 저자가 들려주는 세계 각지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와 예술, 문화와 미식을 넘나들며 8개의 도시를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에서 보다 입체적이고 넓게 시야를 확장해준다.




세계에는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도시들이 몇 있다. 파리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냄새가 좀 날지언정, 일단 너무 예쁘지 않은가. 그런데 낭만과 로맨스가 넘실거리는 파리는 사실 19세기 중반 이후에 완성된 도시다. 중세 시대의 파리는 어둡고 비좁으며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로 가득한 곳이었다.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악취가 심했고,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목조 가옥들은 화재에도 취약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미로 같은 골목길이 있었기에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볼 수 있듯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p.194


많은 사람들에게 로맨틱한 곳으로 여겨지는 피렌체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이다.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문 간의 암투가 얽혀있어 정치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피렌체는 한없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꽃의 도시였다가, 어느새 압도당하는 마성이 도시이기도 하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에 관한 정보를 알고 나서 여행하는 피렌체는 또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피렌체는 단순한 행정 지역이 아니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알아가면 갈수록 더 재미있는 여행지가 될 것이다. 피렌체뿐만 아니라 교토의 ‘금각사’가 소설의 소재가 된 배경, 왕조와 종교, 갈등의 드라마가 펼쳐진 에든버러, 정치 도시 워싱턴 D.C의 또 다른 모습, 지금의 주식 열풍을 만들어낸 네덜란드, 지옥 위에 세워진 천국이라 불렸던 상하이 등 가볍게 산책처럼 시작해서 깊이 있는 지식 인문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저자는 30년지기 친구이자 함께 유튜브를 운영 중인데, 정치학 박사와 국제 경영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배경만큼 밀도 있는 사유와 지적인 수다를 보여준다. 이 책 덕분에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하게 될 도시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람의 여행이 저마다 다른 모습이며, 한 사람이 같은 도시에 다시 갔을 때 얻는 경험도 매번 달라지는 것처럼, 도시를 경험하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다양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어진다면, 그 여행길이 조금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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