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예술가들 - 변기에서 바나나까지, 100년의 창작 전쟁
캐슬린 김 지음 / 작가정신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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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87억 원짜리 바나나는 그렇게 몇 초 만에 사라진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웃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예술이냐'는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이 행위는 단순한 기행도, 돈 많은 컬렉터의 장난도 아니었다. 오히려 작품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행위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처음부터 사라지도록 설계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개념 미술은 예술을 대상이 아닌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p..77


바나나 한 개에 87억 짜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2019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처음 공개된 <코미디언>이라는 이 작품은 치열한 응찰 끝에, 약 620만 달러, 한화로 87억 원에 낙찰됐다. 작품의 구성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전날 인근 과일 가판대에서 구매한 바나나 한 개, 그리고 그것을 벽에 고정한 회색 덕트테이프가 전부다. 이 '바나나'의 구매자인 중국계 암호화폐 사업가는 낙찰 직후,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 벽에서 바나나를 떼어내, 껍질을 벗기고, 그대로 먹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87억 원짜리 바나나는 몇 초 만에 사라진다. 이것도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념미술은 예술을 대상이 아닌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이나 기술, 물리적 완성도 등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던지는 질문, 즉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예술가와 작품은 전시장만큼이나 법정에 자주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이것도 예술이냐'라는 질문은 더 이상 조롱이나 논쟁의 언어가 아니라, 판결문의 첫 문장이 되었다. 이 책은 <월간미술>에 연재했던 '변호사 캐슬린 김의 예술법 세상'과 <매일경제>에 연재했던 '캐슬린 김의 예술 법정',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칼럼에서 시작되었다. '뜨거운 예술'이 '차가운 법'을 만나는 순간의 기록이라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예술가들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고, 판사들은 그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답한다. 그런데 대체 예술의 가치는 누가 정할 수 있는 걸까. 치열한 공방 끝에 남는 것이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면, 법정에서 벌어지는 그 치열한 싸움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 걸까. 예술과 법이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자, 엄숙한 법정의 문을 열고 그 낯설고도 치열한 세계로 들어가 보자.




AI가 그려낸 밤하늘에는 고흐가 정신병원 창살 너머로 바라보던 고독과 광기가 없다. AI가 묘사한 여인에게는 박수근이 화강암 같은 질감 속에 새겨 넣은 시대의 가난과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AI가 조합한 전쟁의 참상에는 피카소가 <게르니카>에 쏟아부은 분노와 시대정신이 부재한다. 예술은 데이터의 조합이 아니라 삶과 죽음, 환희와 고통이라는 인간의 실존적 경험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그렇기에 AI는 인간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는 없다.                 p.372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벌어진 일은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전 세계 미술계의 큰손들이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차지하기 위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벽에 걸린 액자 속, 풍선을 놓친 소녀가 있었다. 하트 모양의 빨간색 풍선이 막 하늘로 떠오르려는 찰나를 포착한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다. 이름 없는 반역자, 거리의 시인이자 체제의 적이라 불리는 예술가인 뱅크시의 작품이 자본주의의 성전인 경매장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낙찰을 알리는 세 번의 타음이 울린 뒤, 경매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캔버스가 액자 아래로 빨려들어가 파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이 절반쯤 잘려나갔을 때 기계는 작동을 멈췄다. 미술시장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작품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재창조했다고 주장하는 뱅크시의 기행을 비롯해 NFT를 팔기 위해 프리다 칼로 작품을 불태워버린 암호화폐 업자의 기괴한 쇼를 비롯해서 예술의 역사를 뒤흔든 브랑쿠시, 앤디 워홀, 클림트의 사건들과 AI가 만든 작품을 둘러싼 최신 사례까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AI가 만든 결과물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소유자는 작품을 파괴할 권리까지 가지는 걸까. 예술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서부터 표절인 것일까. 이 책은 미술사의 운명을 바꾼 세기의 예술 재판들을 여섯 개의 법정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예술가의 평론가의 명예 전쟁, 무단 도용의 벽, 위작 논란, 파괴가 창조가 된 역설, 도난과 장물 스캔들, 블록체인 사기극 등 실제 사건과 판결을 살펴보며 법이 예술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난해한 법률 용어나 골치 아픈 미학 이론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라 예술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자, 현대미술이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을 통해 미술관 밖에서 벌어지는 진짜 리얼한 예술 현장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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