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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인문학 - 고고학자가 파헤친 숟가락과 젓가락의 2만 년 연대기
오승환 지음 / 창해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수저의 사용을 문명의 척도로 여기곤 합니다. 고대 중국인들 역시 젓가락을 쓰는 문명인과 그렇지 않은 비문명인으로 구분하며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 식사 예법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조차 밥을 손으로 뭉쳐 먹었습니다. 결국 음식을 손으로 먹는 것은 '옳고 그름'이나 '문명과 야만'과 같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p.29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음식 고고학'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사라진 고대 문명과 수천 년 전에 죽었던 사람의 시신, 유물 등을 토대로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 고고학이다. 음식 고고학은 이러한 고고학적 관점에서 음식과 관련된 유물 및 식생활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라고 한다. 숟가락이나 젓가락 같은 식기류를 통해 수만 년 전의 문명사를 추적하고, 유물을 발굴해 옛 사람들의 식생활과 생활 방식, 문화 등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 넘게 발굴 현장을 누벼온 현역 고고학자로 화려한 금관보다 옛사람의 삶과 음식에 매료되어 '음식고고학'이라는 분야를 20년 넘게 개척해 왔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집어 드는 숟가락과 젓가락의 발자취를 따라 가며 역사와 음식 문화를 조명한다. 사실 나도 저자처럼 '수저'가 '숟가락'과 같은 뜻이라고 그 동안 생각해 왔다. 수저를 숟가락의 줄임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수저'란 '숟가락'과 '젓가락' 한 벌을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수저를 세는 단위도 많이들 헷갈려 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두 갖춰진 온전한 상태를 '한 벌'이라 부르며, 숟가락은 혼자도 제 기능을 하므로 낱개는 '한 개', 젓가락은 둘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하니 '한 쌍'이라고 해야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수저의 진짜 이름과 유래에 대해 살펴본 뒤, 본격적으로 옛 밥상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식사 도구가 '손'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해 왜 인류의 절반은 아직도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가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수저나 포크 대신 맨손으로 식사를 하는 나라고 지구촌 인구 가운데 무려 40퍼센트나 된다고 하니 놀라웠다. 수저, 맨손, 젓가락, 포크 나이프로 나누어 음식문화권을 지도 상에 색상으로 구분했는데, 손으로 식사하는 꽤나 많았다. 수저의 사용을 문명의 척도로 여겨선 안된다는 뜻이다.

고고학자들은 "모든 증거는 유물"이라 말합니다. 저 역시 젓가락이 보이지 않으니 "정말로 사용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물이 없으니 존재하지 않았다"고 쉽사리 단정 짓기에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젓가락은 앞선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고, 뒤이은 고려시대에도 보이는데 유독 통일신라에서만 '일시 정지' 상태라는 게 도대체 이해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고민은 통일신라시대에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p.321
이 책을 읽다 보니, 음식문화는 누가 더 우월하고 미개한가를 가르는 잣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철석같이 '예의'라고 믿었던 행동조차 타인의 밥상 위에서는 이상한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그릇은 상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식사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서로의 밥 먹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두 나라 사이에도, 밥을 먹는 사소한 자세 하나에 거대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숟가락 모양 도구를 만들어 썼다. 고고학자들은 과연 이것이 '진짜 음식을 떠먹는 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말이다. 사진 자료들을 보니 실제로 너무 숟가락 모양의 도구라... 인류 최초의 식사 도구가 아닐까 싶긴 했다. 신석기시대에 발견된 뼈도구는 젓가락의 시초처럼 보인다. 실물을 보면 젓가락보다는 오히려 가죽에 구멍을 뚫는 송곳이나 머리 장식, 또는 그물을 수선하던 도구일 가능성도 충분했다고 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식사 도구로서 기틀을 잡기 시작한 것은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 때부터이다. 이런 식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식탁에 자리 잡기까지의 긴 여정을 추적하는 이 책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식사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준다. 일본 젓가락이 식탁에 가로로 놓이게 된 배경, 한국인이 유독 쇠젓가락을 쓰게 된 이유 등 다양한 궁금증도 해소시켜 주었고, 한국, 중국, 일본의 음식 문화가 갈라지게 된 과정도 만날 수 있었다. 고고학자가 들려주는 유쾌한 밥상머리 수다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의 음식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