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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ㅣ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서 좀 쉬어요, 틸리. 내일이면 이 좆같은 걸 셜록 홈즈처럼 조사해야 할 거예요."
브래드쇼가 낄낄거렸다.
"전형적인 포네요. 트위터에 올려야겠어요."
"어림없는 소리."
그가 말했다. p.114
크리스마스 시즌, 도시 곳곳에서 신체 일부가 발견된다. 손가락 한 쌍이 #BSC6이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와 함께 각기 다른 장소 세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범인은 무슨 이유로 신체를 훼손해 전시하는 걸까. 곧 피해자들의 신원이 밝혀지지만 여성 피해자 두 명과 남성 피해자 한 명 사이에서 그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가 없다. 중범죄수사국 형사 워싱턴 포와 데이터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가 수사에 투입되지만, 범행 수법에도 공통점이 없었고, 별다른 증거도 없어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범인은 각각의 피해자에게 서로 다른 절단 방식을 썼고, 피해자들의 성별도 달랐고, 마취된 상태에서 사망한 피해자도 있었으며, 마취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극심한 고통 속에 절단을 당해 죽은 피해자도 있었다. 한마디로 범행 수법에 일관성이 없었으니, 뭔가 연결 고리를 발견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는 거다.
범인은 길거리 싸움꾼이 아니라 돌처럼 차가운 살인자였다. 두 사람은 범인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 '블루 웨일 챌린지'라는 게임에 대해 듣는다. 이 게임은 50일 동안 하루 하나씩 일련의 시험을 하는 것으로 마지막에는 피해자가 자살하게 유도한다. 전체 숫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러시아에서만 100명이 넘는 취약자들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유일한 용의자였던 남자는 자신은 그저 게임에 참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틸리는 그가 '안와전두피질 조절장애' 즉, 세뇌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FBI 요원의 말에 따르면 포와 틸리가 쫓는 그자는 단순 연쇄살인마가 아니라 훨씬 더 위험한 존재, 스스로를 '큐레이터'라고 부르는 자, 악의 근원인 무언가라고 한다. 자, 과연 포와 틸리는 '큐레이터'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매번 독보적인 트릭을 완벽한 설계로 선보여온 크레이븐은 이번 작품에서 보다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보여주며 이어질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는 머리 감기를 멈췄다. 포는 자신의 머리가 브래드쇼의 맞춤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읽은 것을 절대 멈추지 않고 계속 처리했다. 들은 것도, 본 것도.......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생생해서 꼭 과거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두 눈이 번쩍 뜨이고, 하나하나 연결되면서 각각의 증거가 지금 펼쳐지는 악몽에 깔끔하게 맞아떨어졌다. p.447
<퍼핏 쇼>, <블랙 서머>에 이은 '워싱턴 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8권까지 출간되어 있고, TV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첫 작품으로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고, 3회 연속으로 골드 대거상 후보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탄탄한 서사와 겹겹의 반전, 독특한 캐릭터의 힘이 잘 어우러진 이야기를 보여준다. 특히나 포가 자신의 직관을 이용해 수사하는 과정이 인상적인 시리즈이다. 작가가 차곡차곡 쌓아온 단서들이 퍼즐 조각들이 되어 하나로 맞춰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작고, 겉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이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짜임새있게 그려내고 있어 수사 과정 자체에 더 즐기면서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밀레니엄>을 넘어설 강력한 수사 듀오의 탄생이다. 뛰어난 지능으로 수학을 전공했지만 아이큐가 150 미만인 사람과는 대화하는 걸 힘겨워할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한 데이터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와 뛰어난 직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이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인 브래드 쇼는 각자 다른 이유로 친구가 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잘 맞는 수사 듀오이다. 틸리는 포와 콤비가 되면서 점차 사회성을 키워나가고 있어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보다 정상적인(?) 캐릭터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포는 알고 있다. 그녀가 이따금 평범해 보이더라도 그건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외에는 틸리의 비중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색다른 두 사람의 케미와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으로 극에 몰입감을 더해주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틸리의 분량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마도 틸리가 서사의 중심에 있었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만들어졌을 것 같긴 하다. 시리즈 4편인 <데드 그라운드>는 최고의 스릴러소설에 주는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상'을 수상했고, 또 다른 주요 범죄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해서 매우 기대 중인데, 국내에서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