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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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넌 어떤 게 선한 행동인지 생각을 너무 많이 해.> 아들이 무기에 화약을 부어 넣는 걸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우린 전쟁 중이야. 도덕이 낄 자리는 없어. 언제나 이긴 쪽이 옳은 법이지. 네가 할 수 있는 건 승리에 공헌하는 거야. 우리가 승리하면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 거야. 반대로 패하면…… 우리 군의 일선이 어떻게 됐는지 너도 봤잖니, 안 그래?>              p.84


프랑스 혁명기, 시몽은 셀 없이 많은 전투에 참여했고, 전쟁은 그의 일상이 되었다. 화염에 휩싸인 도시들, 사람들이 마치 곤충이라도 되는 듯 쓸어버리는 총탄들... 아무리 정의로운 대의를 위해 싸운다지만, 이젠 전쟁이 지긋지긋해지고 있었다. 자유와 변화에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라고, 병사들이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버티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전쟁이 끝이 난다. 시몬은 고향인 낭트의 집으로 향한다. 어서 부모님을 만나 푹 자고 일어나 전쟁 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달 전쯤엔가 도매상인들이 모조리 체포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거칠게 저항했던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고, 어머니는 감옥에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몽은 자신에게 모든 걸 가르쳐 준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의 시몽이었지만, 이제 <복수>라는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무작정 총독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조심스럽게 소총을 장전하고는 눈 덮인 풀숲에 엎드려 총독이 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총독이 등장했고, 시몽은 그를 죽이는 동시에 자신이 목숨을 잃는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창녀라고 소개하는 한 여자가 나타나 그를 막는다.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복수를 제안하겠다고, 이건 혼자서 완수할 수 있는 복수가 아니라고 말이다. 이유 없이 끌려간 사람들, 하루아침에 모조리 사라진 죄수들... 시몽의 개인적인 복수는 어느새 도시 전체의 비밀과 얽히기 시작한다. 자, 과연 시몽은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흐름의 힘, 매 순간 한결같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그 모든 물이 그가 거기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자연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자연은 인간사를 개의치 않고, 그들의 결점이나 거짓, 잔인함이나 희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흐름을 따라가며 상황에 따라 그들의 목을 축여 줄 수도 있고, 혹은 집어삼켜 죽일 수도 있었다. 그를 삼켜 버릴 뻔했던 그 힘 뒤에는 어떠한 의지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p.614


이 작품은 조나탕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대중의 찬사 속에 화려하게 데뷔한 젊은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들이다. 국내에는 그의 첫 작품인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가 먼저 소개된 적이 있다. 심령술과 마술, 탐정 수사가 뒤얽힌 기이하고 매력적인 세계인 선보였던 전작에 이어 <불화의 아이들>이라는 미스터리 작품을 선보였고, <등장인물 연구 일지>에서는 인공 지능의 소설이라는 흥미롭고 시의적절한 소재를 색다르게 풀어낸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스릴과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었고, 하나의 창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메타픽션으로서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신작에서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잔혹한 내전으로 여겨지는 방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를 선보인다. 철저한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자 찬란한 승리로 기억되는 프랑스 혁명 뒤에 숨겨진 어둡고 추악한 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부제는 〈방데의 한을 풀어 준 남자의 이야기〉이다. 방데는 프랑스 서부의 지역으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잔혹한 내전으로 여겨지는 방데 전쟁의 발원지다. 시몽의 고향인 낭트를 비롯해 방데 전쟁 중 여러 지역에서 학살이 벌어졌고, 오랫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어 왔다. 우리의 4.3과 5.18처럼 말이다. 국가 권력에 의한 무참한 집단 학살이었던 방데 전쟁은 시대에 따라, 진영에 따라 그 평가가 갈라졌다. 이 전쟁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옮긴이의 말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스토리에 페이지수도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아버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가독성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 역사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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