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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영화관 ㅣ 환상 시리즈
호리카와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극장에 가서 자리에 앉았을 때의 즐거움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지. 자리에 앉아서 문득 뒤를 돌아보면 저 높은 곳에 자그마한 창문이 있는 거야. 극장 안이라는 게, 꼭 먼지가 떠다니잖니? ... 영사실에서 나오는 빛을 받아서 그 부분만 먼지나 티끌이 또렷하게 보이는 거야. 뭐, 먼지니 좋은 건 아니지. 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마법 가루처럼 보였단다. 저 꼭대기 작은 곳에서 나오는 마법 가루가 영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 p.75
스미레는 아침 등교길에 노신사의 유령과 마주한다. 스미레가 유령을 보는 일은 신기하기는 하지만 결코 드문 일은 아니었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미 학교는 지각이었다. 전철에서 내리는데, 옆 차량에서 내린 한 쌍의 남녀를 보며 깜짝 놀란다. 딱 봐도 불륜임을 알 수 있는 중년 남자와 상대 여성이었는데, 그 중년 남자가 바로 스미레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요즘 일주일에 절반은 집에 안 돌아오고, 늘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는 것이 수상했는데, 역시나였던 것이다. 화가 나서 아버지와 불륜 상대의 뒤를 쫓아가는데, 그곳은 옛날부터 좁은 2차선 차도 양옆으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상점가였다.
그렇게 그들을 쫓아가다 무심코 들어간 곳은 오래된 잿빛 빌딩의 로비였다. 무척 오래된 서양 영화 포스터와 한산한 매점, 충전재가 튀어나온 긴 의자와, 게르마 전기관이라는 금색 간판, 그곳은 비좁고 낡아 빠진 영화관이었다.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맞닥뜨리고, 정신없이 달려가다 급기야 학교에도 가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다니... 열여섯 살 오늘날까지 바른길에서 벗어나 본 적 없는 스미레에게는 엄청난 하루였다. 그곳에서 영사 기사로 일하는 아름다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 스미레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는데, 마침 학교에서 친구도 없고, 따돌림을 당하던 차에 학교 대신 일을 하고 싶다고 집에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스미레는 낡은 영화관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곳은 여러 모로 이상한 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해해 주는구나......"
마리코 씨가 갑자기 힘차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세상에서 '돌아온 사람'을 찾지 못하면 지배인님이 책임져야 해...... 그렇게 되면 내가 게르마 전기관에 눌러앉은 것도 들통날 테고, 큰일이야......"
"그래서 지배인님이 그렇게 당황했던 거군요? 그럼 저희도 '돌아온 사람'을 찾는 건가요? 완전 미인 유령과 소녀 탐정이네요."
무서우면서도 설레는 일입니다. 긴장과 흥분으로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p.135~136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인생에서 겪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 '주마등'을 보여주는 영화관이 있다면 어떨까. 매달 달빛이 사라지는 초승달 밤에 죽은 사람들이 심야 상영을 보러 영화관에 모여든다. 그리고 다들 자기 인생의 '주마등'을 보면서 천국으로 떠난다. '게르마 전기관'이라는 이름의 이 영화관에는 두 개의 관이 있는데, 1관은 지나간 영화들을 상영하는 일반 영화관, 2관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존재하며 주마등을 상영하는 곳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망자들이 방문하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여고생 스미레가 극장에서 벌어진 불가사의한 일과 같은 반 친구의 할머니 유령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호리카와 아사코의 '환상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신의 계약서 및 망자의 유품 등 ‘경계’를 오가는 우체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던 <환상 우체국>에 이어, 이번에는 망자가 방문하는 영화관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환상 영화관>이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전작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해 원령이 되었던 마리코가 등장해 시리즈로서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판타지적인 배경에 호러와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적절히 섞여 들어간 이 시리즈는 가볍게 읽히지만, 따뜻한 여운을 남겨주는 힐링 드라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담은 핵심 메시지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도망쳐!"라고 말한다.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대할 때 '도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지금 일상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쉬어 가는 시간을 가져보길,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뜻이다. 오싹한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