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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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가야 쇼이치.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사람. 암석과 잔해로 가득 찬 빈집을 덜렁 남기고 사라진 무책임한 수집가. 그런 그에게 이제 살이 붙고 피가 흐른다. 그는 틀림없이 이곳에 살아 있었다. 자신도 피폭되어, 고독 속에서 남은 생명을 수집을 위해 남김없이 바치며 조용히 죽어 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지만, 한 사람쯤은 그의 인생을 끝까지 지켜봐도 괜찮지 않을까.                 - '기도의 파편' 중에서, p.189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아유미는 지질 조사와 암석 연구를 위해 매년 두 번씩 미시마 섬을 찾는다. 학과 일 때문에 자신의 연구를 할 시간이 전혀 없어, 방학 때만 일주일 정도 머물고 있다. 암석과 연애한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연구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있지만, 밖에서 보기엔 성실한데 융통성이 없는 괴팍한 사람으로 치부될 뿐이다. 미시마는 화산섬으로 섬 전체가 두꺼운 용암과 화산분 출몰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에 암석 표면의 거칠 갈색과 그 위를 덮은 초록, 그 너머 바다의 군청이 아름답게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경관을 빚어내는 곳이다. 


일주일간 이곳에서 조사를 하며 아유미는 외부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를 자꾸만 마주친다. 오래전 사라진 흙을 찾기 위해 섬에 왔다는 남자는 시시껄렁한 태도에 신원도 불분명했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어쩌다보니 함께 붉은 점토의 흔적을 찾아 섬을 다니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서로의 신념을 이해하게 된다. 아유미는 조교가 된 뒤 정부에서 주는 과학 연구비 지원금을 한 번도 따낸 적이 없다.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소액 지원금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연구비를 따내는지가 연구자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임에도, 아유미는 학계에 어필할 수 있는, 시류에 맞는 연구를 할 생각이 없었다. 빠른 시일 내에 커다란 발견을 하지는 못해도 혼자 답사를 거듭하며 조금씩 작은 사실들을 쌓아나가는 연구 방식이 좋았던 것이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 자신이 하는 연구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도자기를 빚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그때 새끼 거북을 집에 데려갔는지. 왜 지금 또 알을 훔쳐 와 부화시키려는 건지. 히메가우라 바다거북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다. 거북 수를 늘리려는 것도 아니다. 내 새끼 거북을 내 손으로 바다에 내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럼 그 새끼 거북이 나 대신 히메가우라를 떠날 테니까.

구로시오해류를 타고 끝없이 넓은 바다로.

상상할 수도 없이 머나먼 세계로.             -'파랑을 잇는 바다' 중에서, p.328


제17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자 <달까지 3킬로미터>, <8월의 은빛 눈>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이요하라 신의 작품이다. 이요하라 신은 지구행성물리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과학자의 시선으로 여러 작품을 써왔다. 전작들을 읽으며 문학이라는 형태로 드러내는 과학의 목소리를 너무도 아름답게 풀어내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 신작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작품에는 무시해도 그만일지 모르는 가치 하나를 지키기 위해 신념을 세우고, 타인을 위해 위험을 떠안거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켜주고자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멸해가는 바닷가 마을에서 몰래 거북을 돌보는 소녀, 오래전 은둔 과학자가 살던 폐가를 조사하는 공무원,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산골에서 생활을 하다 늑대를 만나게 되는 남자 등 다섯 편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요하라 신은 매번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를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를 하고 생계와 무관한 일에 오랜 세월 몰두할 수 있는 우직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준 시간이었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이요하라 신의 소설들은 특별하다. 이야기마다 과학적인 지식과 정보들이 배경에 깔려 있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가 있어 전혀 어렵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서정적인 느낌마저 든다. 다섯 편의 작품들을 읽으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붙드는 끈질긴 마음과 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긴 여운처럼 남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로 떠나고 싶게 하는' 이 다정한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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