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개의 우주 -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
최준석 지음 / 아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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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에게 집은 뭘까요? 누군가에게는 지친 육체를 쉬게 하는 단순한 숙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나와 함께 가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도 합니다. 집을 유기체로 느끼는 누군가에게는 복도 한구석에 놓인 오래된 의자가, 또는 비 오는 날 처마 밑 작은 테라스에 앉아 듣는 빗소리가 그런 요소가 될 수 있겠지요.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각자 ‘나만의 규칙’으로 집 곳곳에 채워질 때 의미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p.37


언젠가부터 집은 더이상 삶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잘 사고 잘 팔아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보다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지역에 몇 평짜리 집을 갖고 있느냐에 모든 관심이 귀결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획일화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고유함을 찾겠다는 의지로 '나만의 집'을 짓는다. 아파트가 가치의 총합이 되어 신분과 계급이 되는 사회에서 단독주택을 짓겠다는 말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한 개인의 독립 선언이자 사회적 저항의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십수 년간 ‘나만의 집’을 꿈꾸는 건축주들을 만나 단독주택을 설계해온 건축가 최준석이 여덟 채의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생각을 담고 있다. 집 짓는 일을 '과거의 성찰'이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설계 도면을 두고 빈 종이를 채워나가는 모든 과정을 통해 집을 물리적 공간을 넘어 각각 개인의 삶으로 완성시켜 나간다. 누군가에게는 지친 육체를 쉬게 하는 단순한 숙소에 불과한 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나와 함께 가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기도 한 것이다. 거실은 꼭 필요한 것인가, 집 어딘가에 혼자 숨어 들어갈 공간이 작게라도 있다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투영하는 반사체라는 생각이 든다... 등 저자의 말이 와 닿는 부분이 많아 공감하며 읽었다. 각종 건축 용어들이 등장하고, 전문적인 설계와 구도 등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이어지지만, 에세이처럼 편하게 풀어쓴 글이라 가독성도 참 좋았다. 




완공된 순간부터 집은 늙기 시작합니다. 벽에 붙어 있는 재료는 비바람에 삭고, 색은 바래며, 문짝은 삐걱거립니다. 하지만 집이 나이든다는 건 외형적 퇴색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집이 나이들수록 그 집에 살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집에는 한 가족이 그곳에서 보낸 역사가 쌓여갑니다. 벽지의 낙서와 문틀에 새겨진 키재기 눈금들은 집이 거쳐온 시간을 웅변합니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필요한 것은 새롭게 덧붙여 그 둘을 공존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오래된 일기장의 찢어진 페이지를 테이프로 조심스럽게 붙이고, 그 뒷장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p.189~190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집안으로 관통하는 빛과 풍경,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계절의 소리, 일상의 사소한 잔향 들이 우리 내면의 확대경 아래 놓이고, 우리는 집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연습한다. 바깥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격리된 공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타인의 시선에 쪼그라들었던 본연의 모습을 다시 일으키고 마주할 수 있는 공간... 건축가가 쓴 책을 꽤 읽어본 편인데, 이 책의 저자는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처럼 느껴졌다. 좋은 집이란 무엇인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매 순간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페이지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개성을 부요하는 요소는 거주자의 취향과 건축가의 의도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건축가라면 언젠가 집을 짓게 될 때 꼭 의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부의 시선은 막고, 내부의 시선은 열고... 감춘 듯 보여주고, 보여준다면 멋지게 보이고 싶고, 외부에서 집 안이 보이는 건 싫지만 집 안에서는 바깥이 잘 보이는 집, 이런 집이 가능할까 싶지만 대부분의 단독주택 의뢰인이 원하는 집이 이런 집이라는 대목에서 사람 마음이란 원래 다 그런 거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들을 이해하고, 거주자의 눈높이에서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시선도 감동적이었고 말이다. 저자가 건축주와 함께 만들어온 여덟 채의 집을 통해 좋은 집,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며, 쓸데없는 몽상과 쓸모 있는 고민 사이에서 무수한 선택을 하는 것이기에 결국 인생을 짓는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집, 나의 우주를 상상해 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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