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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츠하우스 ㅣ ANGST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벌건 대낮이었다. 프린츠하우스에선 굿을 준비하고 이곳 가평에선 구마의식이 시작될 참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현실에서 가상의 세계를 설계하는 개발자였다. 이젠 누군가 억지스럽게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현실로 돌아갈 길을 궁구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사의 얼굴을 애써 지워내려 마른세수를 한 뒤 전원주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코가 떨어져 나갈 만큼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코와 눈은 물론이고 피부가 얇은 목까지 따갑고 간지러웠다. p.130~131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19세기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지어진 4층짜리 고급 빌라 프린츠하우스는 수백 년 전 유럽 귀족 소유의 대저택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벽난로와 선룸, 프라이빗 풀에 비상용 안전공간인 패닉룸까지 구비된 이 곳은 평당 1억 원으로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선우가 게임제작사 근무 3년 차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약간의 현금과 주식, 상가 그리고 프린츠하우스를 상속 받았다. 상가 임대료가 월급과 엇비슷한 덕에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개발자가 되었는데, 몇 년만 착실히 모아 이민 간 전 여자친구 이소를 따라 스웨덴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홀로 프린츠하우스에서 지내며 강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꼈던 선우는 세입자를 들이기로 한다. 단정한 이목구비의 젊은 여성인 전승아는 마치 프린츠하우스에 와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 저기 아는 척을 했다. 열네 살까지는 여기 살았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첫날부터 방안에 붙어있던 부적들을 발견해낸다. 과감하게 벽지를 뜯어내자 부적 열두 장이 있었던 것이다. 방마다 이만큼 있을 거라고, 싹 태워 묻어버리라는 그녀는 무속인이냐는 선우의 질문에 자신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고 대답한다. 몽유병 때문에 잘 때 가죽으로 된 손목 스트랩을 손목에 끼우고 잔다는 것부터 이것저것 수상한 게 많았지만, 이제 와 계약을 무르기도 힘드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가 세입자로 프린츠하우스에 들어오면서부터 평화롭게 지냈던 선우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미카엘이 왜 악마의 말에 공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내쫓아도 놈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불티가 옮겨붙은 인간은 단순히 미쳐 날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유능함을 앞세워 권력을 움켜쥐고, 더 많은 사람을 지배했다. 내가 프린츠하우스를 떠나지 못했기에 놈의 목표물이 된 것이었다. 나 같은 인간은 허구했다. 전쟁 없어도 대량살인은 매일 벌어졌다. 돈, 신뢰, 가족, 사랑, 우정을 잃은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천 명씩 자기 자신을 살해했다. p.237
세입자가 들어온 뒤 선우는 원인 모를 환시와 환청에 시달린다. 친한 형인 무당 한신은 전승아가 여자가 아니라고, 그녀의 몸에 잡귀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요사스러운 짓거리를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과거를 보고는 승아가 '고독'에 빙의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고독은 독을 가진 생물을 독 안에 모아 서로 다투고 죽이길 기다렸다 살아남은 한 마리로 강한 저주를 걸 수 있는 영적 무기라고 했다. 악귀와는 조금 다른데, 생명이 다른 생명을 죽여 힘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원과 한이 쌓이기 때문에 고독을 잘 키우면 큰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권력을 쥘 수도 있으며, 살인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고독은 젊은 사내를 원했고, 그들의 바람대로 젊은 사내인 선우가 프린츠하우스에 오게 된 것이었다. 선우는 부모의 실종과 연인과의 이별을 겪으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지배욕과 권력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과연 선우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킬러들의 쇼핑몰> 시리즈를 쓴 강지영 작가의 신작이다. 영주의 성을 본떠 지은 최상류층을 위한 고급 빌라 프린츠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오컬트 호러라는 장르를 자본주의와 욕망으로 엮어내 굉장히 강렬한 공포를 선사한다. 밀도 높은 서사가 흡입력있게 전개되는 가운데, 마치 눈앞에 보여지는 것처럼 그려지는 문장들로 인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던 작품이다. 귀신 들린 집과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저주라는 호러 장르에서 익숙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당장 다음 페이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다는 오싹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오컬트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순간 훅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라 여름에 읽기 좋은 소설을 찾고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자, 일상을 잠식하는 유채색의 공포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