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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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한 해를 따라잡고 있다. 나는 1월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들을 찾아낸다. 내가 알고 있는 1월. 클레롱의 1월, 벨기에의 1월, 유럽 한가운데의 1월. 내게는 많은 눈이 필요하지 않다. 한 번은 가벼운 눈발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것을 얻었다. 나는 상점들에서 1월을 찾고, 1월의 음식들을 찾는다. 나는 수프를 먹거나 사과와 계피를 넣은 차를 마신다... 계절에 대한 수첩이 나의 사용 설명서가 되고, 나의 여행 동반자이자 안내서가 되며,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 곧 나의 미래라는 생각을 한다.                     p.124


타라는 11월 18일이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매일 아침 같은 날짜가 반복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전작에서 122번째 11월 18일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던 타라는, 어느 새 11월 18일이라는 하루를 365개를 모았다. 벌써 1년이 지난 것이다. 같은 가을의 날들을 한데 쌓아 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한 해가 될 수는 없는데, 다른 날로 이어지는 통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는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남편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처음이자 유일한 날이지만, 타라에게만 똑같은 날들이 반복의 순환 속에 놓여진 것일까. 왜 시간의 균열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1권에서 하루의 작동 방식을 조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불규칙함 속에서 하루가 되돌아오는 시점을 찾으려 애썼던 타라는, 2권에서 대단히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새로운 계절이 오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페리를 타고 눈이 있는 북쪽으로 겨울로 향해 간다. 1월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들을 찾아내고, 계속 북쪽으로 나아가며 2월의 추위를 향해 간다. 그리고 계절의 수첩을 정보들로 채운다. 겨울 음식을 먹고 겨울옷을 사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다. 그리고 봄의 징후를 찾아 돌아다니고, 봄을 향한 갈망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늦여름의 도시들을 찾아 나서고, 가을의 거리들을 생각하며 계절의 조각들을 수집하며 새로운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사실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당장 2권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신기했다. 무려 7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인데, 대체 별다른 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루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7권이나 되는 책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 도착해 이미 커피를 주문해두었다. 우리는 9시에 창가 자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로마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결국은 그 이야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가방을 든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헨리 데일,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은 그 밖에도 많았다. 예를 들어 그 역시 11월의 어느 하루, 18일에 갇혀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는 시계를 본다. 곧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우리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날 것인지.              p.282~283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는 7부작이며 현재 5부까지 출간되었고, 1부가 2025년 국제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것은 소설 연작의 서막을 여는 첫 두 권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솔베이 발레의 작품을 드디어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솔베이 발레는 1990년대 덴마크 문학의 걸작 《법에 따르면》의 작가로 이 작품으로 30여 년 만에 세계문학계로의 복귀를 알렸다. “사변소설(SF) 장르에 있어서 시의적절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22년 북유럽의회문학상(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타임루프' 소재로 유명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개봉하기 6년 전인 1987년에 처음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소재는 유사해보여도 막상 작품을 읽어 보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인 거라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이번에 전체 7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같은 시간을 계속 반복해 겪게 되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하면 일정한 패턴의 서사가 있게 마련인데, 솔베이 발레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내고 있다. 다양한 길이의 일기 형식으로 쓰였는데, #368에서 시작해 #1144까지... 거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복되는 11월 18월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최면에 걸린 듯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재구성하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와 삶에 대한 사유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어떻게 타임루프에서 벗어나느냐보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에 대한 탐구가 더 밀도있게 펼쳐진다는 점이 이 작품만의 매력이다. 표지 이미지처럼 나선형으로 된 회오리에 점점 더 휘말리는 느낌으로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잠식되는 기분일 것이다. 각권의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밀도 있는 이야기라 천천히, 깊이있게 읽어야 했다. 그렇게 그저 감탄하며 홀린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2권의 결말 또한 매우 충격적이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서 독자들을 안달하게 하는 멋진 엔딩이었다. 자, 그래서 세 번째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요?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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