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
라일리 블랙 지음, 조정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주변 세상이 사실은 보이지 않는 우연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자연을 좀 더 직관적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반드시 존재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과거의 대멸종과 끊임없이 일어나는 새로운 생명체들이 진화한 결과 이 세상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집 앞마당의 민트나무들이 왜 존재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야기들이 실은 아주 얇은 시간의 단면 속에 있다.                p.22


바람에 살랑대는 고사리와 소철 밭이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아득히 높은 침엽수가 빽빽이 솟아난 울창한 숲에서 아파토사우루스가 몇 시간째 풀을 뜯고 있다. 20미터 길이에, 20톤이나 되는 무게가 나가는 공룡의 뼈와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을 섭취해야 한다. 한낮의 열기를 잊은 공기는 시원하며, 식사를 방해할 알로사우르스도 주변에 없어 완벽하다. 목이 길고 몸이 단단한 거대 초식동물인 아파토사우루스는 그렇게 연필처럼 한 줄로 가지런한 이빨들로 쥐라기 식물을 크게 한입 베어문다. 쥐라기 후기는 따뜻하고 습했다. 연 평균 기온이 20도 정도로 매우 따뜻했다. 수백만 년 동안 세상은 끝나지 않는 여름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파토사우르스를 비롯한 다른 초식공룡들의 촉촉하고 아삭아삭한 주식이 되어준 식물들이 풍부했던 이유도 이런 환경 덕분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라일리 블랙은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로 원래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를 찾아다니는 일을 했다. 인내심의 한계를 매일 시험하는 화석 찾기 작업을 통해 그저 탐사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수십억 년의 지질학 역사와 식물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식물을 동물 세계의 조용한 배경쯤으로 여기지만, 사실 지구에서 식물의 역사를 떼어놓고는 우리 행성의 생명체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식물도 인간처럼 살아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마음과 감정이 없기에 생명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처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은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생식세포들을 바람에 날려 이동시킬 수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서로 소통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장 놀라운 재주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 삶에 너무나 중요해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와 생명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존재가 바로 식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공룡과 포유류, 인간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역사 한가운데에 있었던 식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식물은 놀라울 만큼 민감한 존재다. 그래야만 했다. 팽나무 같은 나무는 평생 부리를 내린 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기에, 굶주린 초식 동물을 피하거나 힘으로 쫓아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물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공격자를 몰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수많은 입이 남긴 상처를 재빨리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진화시켜왔다. 진동을 감지하는 능력도 그중 하나다. 다른 나무들이 화학 신호를 통해 초식동물이 다가왔음을 서로 알리듯이, 진동 역시 나무에게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               p.183


공룡이나 다른 거대 동물들은 종종 시간을 통찰하게 한다. 이 생명체들은 너무나 거대하고 특이해서 도대체 언제 지구에 살았고 왜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생물종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지, 그리고 어떤 일상생활을 누렸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식물은 우리의 고생물학적 상상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발굴작업을 하는 학자들도 대부분 공룡이나 다른 고대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늘 그들의 진짜 모습과 일상생활이 궁금했고, 그것을 상상하려면 그 장면 안에 반드시 식물으 들어와야 했다. 식물들과 그 서식지들을 이해하면 지질시대를 관통하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고, 자연과의 관계에도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과학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생명과 지구의 역사, 진화의 단계, 12억년의 연대기를 다룬 수많은 책들을 만나왔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굉장히 신선한 방식으로 쓰였기에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지구의 역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책이기에, 우리가 그 동안 읽어온 수많은 인류와 지구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은 12억 년 전 캐나다 북극 지역에서 시작해 뉴멕시코, 유타, 콜롬비아, 남대서양, 네브라스카 등을 시대별로 거쳐 1만 5,000년 전 뉴욕주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식물과 지구의 서사로 함께 그려낸다.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적 풍경들을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어 딱딱한 과학책이 아니라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책이기도 했다. 각 장이 해당 시대를 보여주는 소설처럼 시작되기 때문에 과학이 어렵게 느껴졌던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장은 모기 한마리가 주인공이고, 어떤 장은 작은 식물이, 또 어떤 장에선 공룡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진화는 동물의 역사였지만, 이 책은 그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진정한 주역이 식물이었다고 말한다. 지구의 역사를 가장 작은 존재였던 식물을 통해 읽어 내려간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각 시기별로 과거 생태계를 생생한 묘사로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마치 눈 앞에 보이는 듯한, 직접 관찰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 경이로운 지구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만나보고 싶다면, 쉽고 재미있게 진화를 다룬 과학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