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주점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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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년은 타마가 한 또 다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하지만 마음을 열기도 해야 한다는 것.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먼저 호의를 보여야 상대도 마음의 문을 닫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람은 나무에게도, 구름에게도, 산에게도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산이 멧돼지를 주고, 강이 물고기를 주며, 구름이 비를 내려준다고.                p.23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영특했던 소녀는 오늘 밤 집을 나갈 예정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나이든 남자에게 비싸게 팔아 넘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함께 일하던 인부와 시비가 붙어 한쪽 팔을 잃었고, 그 이후로 소녀와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세상 전체를 원망했다. 작은 여자애가 다른 집으로 팔려 가면 어떤 일을 겪는지 보고 들어 왔기에, 소녀는 무서웠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 잰걸음으로 달려간 소녀는 한 동굴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목에 고무줄이 끼인 작은 개를 구하기 위해 동굴까지 오게 되었던 거였다. 다음날 산의 양 쪽에서 소년과 소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소년은 소녀를 위해 서로 방향을 바꿔 나가기로 한다. 


"그러니까 우린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거야... 나는 네가 들어온 구멍으로 나갈게. 넌 내가 들어온 구멍으로 나가."


소년은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깊은 계곡물 같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를 돕고 싶었다. 소녀가 안전한 곳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소녀는 소년의 제안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떠나기 전 소년은 물건을 하나씩 교환하자고 말한다. 신비한 곳에서 신비한 일을 겪었을 때는 뭐든 하나 남겨둬야 안전하게 떠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년은 아버지가 준 단도를 건넸고, 소녀는 아버지 몰래 숨겨두었던 작은 책을 건넨다. 그렇게 소녀는 해풍촌으로, 소년은 대인촌으로 서로 마을을 바꿔 도착하게 된다. 훗날 소년과 소녀가 다시 자신의 마을로 가게 되었을 때 어른들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두 마을은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을 몇 개나 건너야 하고, 기차로 몇 정거장이나 가야 하는 곳이라 절대 동굴이 거기까지 이어질 수 없었던 거리다. 사실 인간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두 아이를 만나게 한 것은 거인이었기 대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녀는 어른이 되어 자신을 도와주었던 소년이 살던 해풍촌을 찾는다. 다시 마주한 마을은 전과 같지 않았지만, 소년은 어린 시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 햇빛과 맑은 달빛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달빛은 어느 한 부분만 비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햇빛은 온 세상 구석구석 아주 작은 틈새까지 무자비하게 파고든다. 투누흐가 뒤를 돌아보자 마을 전체와 그 뒤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산의 능선을 눈으로 천천히 더듬으며 마을이 변해버렸음을 마침내 인정해야 했다. 변화란 일단 일어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인간이 붙잡을 수 있는 건 고작 눈앞의 그 한 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한 줌조차 온전히 쥘 수 없을 수도 있다.                 p.322~323


<도둑맞은 자전거>, <복안인>으로 만났던 우밍이 작가의 신작이다. 우밍이는 대만 최초로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대만의 국민작가이다. 그는 이 작품 출간 후, 독립서점에 대한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담아 56일 동안 6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오가며 타이완 전역의 독립서점에서 총 86회의 북토크를 진행했다. 가오슝의 한 서점에서는 좌석이 오픈되자마자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대기 수요로 인해 시스템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사랑받는 작가일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신화적 존재인 거인을 통해 현실의 벽은 높고 두꺼우며 그 앞에 선 인간은 너무도 작고 유약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해풍촌 사람들의 목소리로 전개되는 현실의 시간과 산의 형상으로 숨어 지내온 멸종 직전의 거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대대로 지켜온 땅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의 서사와 인간과 자연을 굽어보는 신화적 존재인 거인의 이야기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얼핏 우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도시화를 목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투입해 깎고 부수려는 산이 거인 그 자체이므로, 신화적 존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사라지는 자연의 목소리와도 같다. 우밍이의 작품은 서정적이고 우아한 언어로 시처럼 쓰였기에 잔잔하게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세 작품 중에 이번에 만난 <해풍주점>이 가장 좋았다. 거인이 소년과 소녀를 만나게 하고, 순수하고 사심없는 마음으로 두 아이가 헤어지기 전 나눈 '교환'에 깊은 감동을 받는 장면도 뭉클했다. 단 하루의 만남이 평생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너무도 아름다운 대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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