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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인연 ㅣ 붉은 박물관 시리즈 3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일부터 재수사를 시작한다. 오늘 내로 수사 서류를 전부 읽어 줘."
그 말만 남기고 히이로 사에코는 관장실로 사라져 갔다.
오늘 내로? 사토시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관장님처럼 글을 빨리 읽을 수 없는데요......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메지로 거리 야하라2가의 차량 트렁크 속 신원 불명 시신 사건'의 수사 서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p.62~63
하천부지의 교각 아래 노숙자가 사는 판잣집 안에서 두 남자가 죽어 있는 채로 발견된다. 두 사람 옆에는 피 묻은 야구 배트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그 판잣집에 사는 노숙자로 보였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현직 국회의원이었다. 부검 결과 사망 추정 시각은 전날 오후 9시부터 11시 사이였고, 사인은 둘 다 뇌타박상이었다. 유력 정치인이 노숙자와 함께 살해됐으니 연일 뉴스에 보도가 되었고, 여러 경찰서에서 수사관들을 급하게 긁어모아 수사본부가 설치된다. 전 국민이 주목하는 엄청난 대사건이었기에 수사본부의 분위기도 매우 살벌했다. 대규모 수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았고, 국회의원이 왜 그런 곳에 있었는지, 노숙자와 국회의원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십오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사건 해결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3만 명이나 되는 수사관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을, 수사 서류만 읽고도 단서를 찾아내는 게 가능할까. 재수사를 하겠다는 지시에 사토시는 이번만은 진짜로 히이로 사에코의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두툼한 수사 서류를 읽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들은 이번 사건도 해결해 낼 수 있을까. 사이토는 히에로 사에코가 만나라고 지시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재수사를 시작한다. 사건 당일의 정보를 확인하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당시 관계자들에게 던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히이로 사에코의 이번 언동은 평소보다 더 불가사의했기에, 사토시는 그녀의 생각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슬슬 관장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실 수 없을까요?" 드디어 히이로 사에코는 자신의 추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파격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자,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드디어 해결되는 걸까.

"히이로 관장님은 미제 사건을 몇 건이나 해결하셨잖아요.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커리어라고 하셨죠?"
다니자와 시오리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 같은 분이에요. 의사소통 능력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서, 경찰청이 왜 그런 사람을 채용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가끔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p.176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인형같이 차갑고 단정한 얼굴, 어깨까지 길게 기른 매끄러운 검은 머리카락,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 백의를 입고 무테안경을 쓴 그녀는 붉은 박물관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 경정이다.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 통칭 '붉은 박물관'은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사건 발생 이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아름다운 외모의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수사 1과에서 좌천되어 온 조수 데라다 사토시, 단 두 명이 운영 중이다. 히에로 사에코는 커리어라는 고위직 경찰임에도 이곳에서 수년 째 근무 중이다. 데라다 사토시는 형사를 천직으로 여겼기에 언젠가는 수사 현장으로 돌아갈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어떻게든 범죄 자료관에서 버틸 생각이다. 두 사람은 과거 사건 관련 정보들을 등록해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수사 서류를 검토하다 미제 사건의 재수사를 하게 되고, 그들의 활약으로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요 서사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붉은 박물관 시리즈’ 그 세 번째 이야기이다. <붉은 박물관>, <기억 속의 유괴>에 이어 <죽음의 인연>에서도 히이로 사에코 관장의 독보적인 추리와 사건 해결은 계속 된다. 수록된 작품들 모두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트릭, 치밀한 구성과 복선까지 완성도가 뛰어나 읽는 재미가 있다. 오야마 세이이치로는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붉은 박물관>은 두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붉은 박물관’은 작가가 영국의 범죄 박물관, 통칭 ‘검은 박물관(Black Museum)’이라 불리는 곳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가상의 범죄 자료관이다. 미제 사건을 다루는 추리 소설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범죄 자료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히이로 사에코는 3만 명이나 되는 수사관이 투입됐는데도 결국 해결하지 못해 미제로 남은 사건 조차 서류만 읽고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증거품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다가 틈틈이 돌발적으로 재수사를 실시한다고 외치는데, 기존 수사와는 전혀 다르게 대담무쌍한 추리로 매번 진상을 이끌어 낸다. 매력적인 캐릭터 외에도 미제 사건 재수사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본격 미스터리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아하는 시리즈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