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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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지노동의 네 가지 구성 요소는 우리 중 다수에게도 상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게 정말 '일'인 건지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과 '노동'은 우리 삶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좀 지나칠 정도로 노동에 열중하면서 재생산 노동, 감정노동, 사무실 잡무 등등 계속해서 늘어나는 노동의 형태들을 발명(더 너그럽게 말하자면 규명)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독자들이 이 글을 회의적으로 본다 해도 용서할 수 있다.                  p.68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인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순위에 놓으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또한 자신이 행한 노동의 대가를 바라면 가족을 위한 일인데 대가를 바라느냐고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반대로 남성이 자기 일을 우선순위에 놓거나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바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고 화제로 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엄마들은 온종일 집에서 갖가지 종류의 노동을 하면서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들어 왔다. 하지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내가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아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아이들을 건사해주기 때문에 남편이 마음 편히 나가서 일하고 올 수 있는 것이다. 아내라는 비임금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도 남편과 동일하게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문제는 비슷하다. 똑같은 강도로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아내의 일은 집에서 다시 시작되니 말이다. 물론 예전보다는 집 밖의 생산노동만큼 집 안의 재생산노동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많아졌긴 하다. 실제로 가사노동 분담은 과거에 비해 평등해졌다고 하고, 남성들도 과거에 비해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덕분에 일부 사람들은 성차별의 실제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집안일은 함께하는데 여성들의 머릿속만 이렇게 바쁜 것일까. 현대 사회의 여러 특징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머릿속 노동'을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슨 데이밍거는 이성애, 퀴어 커플에 속한 부모 172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오늘날 가정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육체적 가사노동이 줄어드는 동안 인지적 가사노동은 더 복잡해지고 늘어난 현실을 포착하며, 그동안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인지노동 불평등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연다.




이처럼 대체로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불평등은 더 눈에 잘 보이는 불평등을 지탱하는 데 일조한다. 한편으로는 인지적 책임이 계속해서 여성의 손에 확고하게 쥐어져 있는 한, 남성의 유체노동 기여도 또한 제한될 것이다. 많은 커플이 두 차원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이 서로를 상쇄한다고 이야기했으나 (예를 들어 그녀가 계획을 세우면 그는 계획을 실행한다) 실제로 그러한 상쇄를 이루어낸 커플들은 훨씬 적었다... 인지노동과 육체노동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두 영역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280~281


30대 초반의 백인 여성 크리스틴의 하루를 보자. 그녀는 음식을 만들고,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에 대려다주고 다시 데려오는 일처럼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잡아먹는 익숙한 집안인들을 처리하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잠재적인 문제들을 검토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할 선택지를 선별하고,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이미 내린 결정의 결과와 영향을 검토하고 추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는 '집안일'이란 개념은 크리스틴이 보내는 하루의 이러한 측면들을 적절히 잡아내지 못한다. 크리스틴의 경험은 여러 형태의 '인지노동'이다. 그녀가 하는 육체노동은 아주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기로 진행되는 인지노동은 겉으로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이제 집안일을 행하고 생각하는 일의 조합으로 고려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이해가 필요해진 것이다. 대체로 눈의 띄지 않는 불평등이 더 눈에 잘 보이는 불평등을 지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한 논의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다. 


가사노동과 돌봄의 불평등에 대해 다루는 책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이 책이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지만 가정을 굴리는 데 필수적인 머릿속 노동, 즉 ‘인지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모든 가족구성원의 욕구 충족을 보장하려는 일단의 정신적 과정이다. 이는 시간으로는 측정되지 않는, 가시화되지 않은 가사노동이기에 평등을 지향하는 관계 속에서도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동안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기분도 들었다. 머릿속 노동이라니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개념인데, 그 동안 내가 해온 많은 것들이 인지노동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시간 사용과 정신 사용을 함께 고려해 가사노동을 더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지노동의 평등한 분배를 위한 거시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직장에 나와 있는 낮 시간에도 집안일을 더 많이 생각하는 수많은 여성들과 가사노동과 육아 수행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여성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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