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시간에 윙크 윙크 (시절 시집 에디션)
고선경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 들켜 버려서/도망갈 구석이 없어서/어둠의 망토를 두르고 싶어질 때/그럴 땐 다시 볕이라는 공깃돌을 던져 봐/순식간에 넓어진 표면적/너른 초원에 양팔을 벌리고 누워/햇볕 이불을 덮는 거야/나른한 잠에 빠져들지도 몰라/누군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지도 모르지/시간이 네 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그것 봐, 단어는 힘이 세/네가 어떤 공깃돌을 쥐고 있는지에 따라/너의 세계는 바뀔 거야                   - 안희연, '이루는 쪽' 중에서, p.16~17


자신만의 고유하고 개성 넘치는 시 세계를 구축한 젊은 시인들이 저마다의 10대 시절을 추억하며 쓴 창작 시들을 모았던 <도넛을 나누는 기분>에 이어 '시절 시집'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이번 시집에는 고선경, 심보선, 안희경, 유선혜, 이제니 등 동시대 한국 시단을 이끄는 스무 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스무 명의 시인들은 각각 세 편씩의 시와 창작의 배경과 전하고자 한 마음을 들려주는 시작 노트를 수록했다. 그렇게 모인 60편의 시들은 각양각색의 청소년 시절을 탐색하고, 과거와 현재 속에서 성장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과 그 시절의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으로 우리는 모두 흠집투성이이지만 존재 그 자체로 각자 고유하게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는 학창 시절에 자주 썼던 편지에서, 그 시절을 위로해주던 책과 만화로부터, 이곳 저곳에 붙였던 귀여운 스티커와 어느 소풍날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일이 시작되고, 보이지 않는 것에 가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인생에 무늬가 생긴다.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 저마다의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소년 소녀 시절을 깨웠다면, <다가올 시간에 윙크 윙크>는 성장의 시간을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 다양한 삶의 궤적을 펼쳐 보인다. 지나간 시간을 위로하고, 다가올 시간을 건너는 응원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날 그림자는 무엇인가/밤에서 낮으로 도망친 별 무리/어둠에서 빛으로 건너온 난민들//소년은 전자 신전 앞에 무릎 꿇고/죄를 고백하고 죄를 탐닉하고/기도를 하고 희열에 젖는다/소년은 아름다움을 꺼내려 말의 거울을 깬다//아름다움은 언제나/무수한 슬픔 아래 묻혀 있고/그것을 샅샅이 뒤지려면 용기가 필요하기에/소년은 혜안을 얻고/그 대가로 노인이 되어 간다//                 -심보선, '아포칼립스의 빈집들' 중에서, p.195


어린이, 청소년 시절에도 책을 참 많이 읽었었는데, 당시에 시집을 읽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 시란 교과서에 수록된 이해하기 어려운 문학이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봤을때 시를 많이 접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쉽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요즘은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 정말 다양하고, 수준높게 나오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사실 오랫동안 어린이는 ‘동시’로 시를 향유한 것에 반해, 청소년은 교과서에 실린 정전, 그것도 그들의 삶과 감각에 맞지 않은 어른의 시를 읽어야 했다. ‘창비청소년시선’은 청소년도 동시대의 좋은 시를 읽고 즐겨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그것이 지난해 벌써 10주년이 되고, 50번째 시집을 기념하며 앤솔러지가 나왔었는데, 이렇게 두 번째 앤솔러지가 나왔으니.. 매년 이렇게 시절 시집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시집을 읽으며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청소년이었는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청소년 시기에 내가 열심히 했던 것, 좋아했던 것, 집착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른이 된 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시기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때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우연히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었던 무모함이 있었는데, '어떤 일은 믿기만 해도 벌써 반쯤은 이루어졌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시집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수록된 시들만큼이나 시작노트도 재미있게 읽었다. 안희연 시인은 학창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면 하염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상상 속에서라도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고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임유영 시인은 최대한 과거의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담아 시를 썼다고 하고, 이제니 시인은 사람은 타고난 빛 그대로 각자 고유하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시작노트 속 글들이 마치 에세이처럼 읽혀 시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직은 시가 낯선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시가 어려운 어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시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