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는 소설 -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홍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똑바로 가는 공은 없어요."

말을 꺼낸 게 무안해질 만큼 차가운 대답이었다.

"제발 부탁인데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지 마쇼. 축구든 골프든 마찬가지야. 그런 건 전부 쓰잘데기없는 일이라고. 인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냥 인생을 제대로 살아."               - 김홍, '인생은 그라운드' 중에서, p.29


돔 구장 확충을 위한 국민 희망 체육 펀드는 원금 보장과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상품이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사기라는 게 밝혀졌고, 개막전 당일 야구팬들은 경기장 출입구에 붙은 빨간색 가압류 딱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 프로 야구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프로야구 관중수 1300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야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김홍 작가의 <인생은 그라운드>에서는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살면서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 적도 없고, 항상 뭘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야구가 전국민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게 야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인 아니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비롯해서 쇠락해 가는 탄광촌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도를 하고 있는 여학생, 익사할 뻔했던 기억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엄마의 수영 강습권으로 수영장에 들어서게 된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향해 달리는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한파 속에서 골목을 헤매는 인턴 기자, 부상으로 일을 잃은 요가 강사 등 이 책에는 달리고, 버티고, 실수하고, 헤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포츠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려한 승자들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몸으로 살아 내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발을 뻗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기꺼이 발을 내미는 순간, 멈춰 서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신발 끈을 묶으며 일어서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달려가는 우리 모두를, 조용히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내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을까? 나의 어떤 부분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함일 뿐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안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 주기를,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 때는 저렇게 하라고, 그러면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 김혜나, '가만히 바라보면' 중에서, p.223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열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작품들을 선별해서 엮어 왔다. '우정'을 소재로 함께 걷는 소설, '가족'을 소재로 끌어 안는 소설, '노동'을 주제로 땀 흘리는 소설, '이별'을 주제로 손 흔 드는 소설 '재난'을 테마로 기억하는 소설, '환경'을 테마로 숨 쉬는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었다. 이번에 나온 <달려가는 소설>은 '스포츠'를 테마로 한 7편의 단편 소설을 묶었다. 김홍, 이수정, 김기태, 최아현, 김유담, 장류진, 김혜나 작가가 그려내는 야구, 수영, 역도, 풋살, 볼링, 쇼트트랙, 요가를 소재로 한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혼자 하려는 고군분투, 우연히 양도받은 수영 강습권으로 어린 시절 호수에 빠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순간, 들어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서 시작한 역도,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죽은 오빠의 삶을 이해하게 하게 되는 경험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포츠에는 기록과 통계로는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며, 빛나는 장면들 뒤에는 오늘을 살기 위해 달리고, 헤엄치고, 버티는 몸의 서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