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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했던 여름 ㅣ 래빗홀 YA
이로아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미움받고 싶었다. 바라건대 그 미움은 질투와 경외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면 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속내를 읽히지 않는 사람. 뒤집어 말하자면, 결코 무엇도 들키지 않는 사람. p.48
연제는 친구들의 손금을 봐 주다 선생님의 호출로 갑작스럽게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연제의 엄마는 '무당'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신내림을 받은 적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었다. 연제는 엄마가 진짜 무당이 아니라 빠른 눈치와 유창한 언변으로 일종의 브랜딩을 해 사업을 해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집에 있던 연제에게 저 높은 곳에서 희고 노란 불꽃 같은 것이 추락했다. 천사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천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엄마는 신의 심부름꾼이었는데, 주제를 모르고 저지른 실수가 하나 있다. 그것을 찾아 바로잡으면 깨어날 것이다. 그때까지 너에게 네 엄마의 알량한 재주를 빌려주마."
천사의 고지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엄마에게 진짜 능력이 있었다니.. 연제는 한번도 엄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한겸이 반찬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다.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했다며, 보냉 가방 안에 주황색 반찬 통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연제는 우연히 한겸의 과거와 미래에 놓인 죽음의 순간들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한겸을 지켜온 건 엄마가 써준 부적 덕분이었는데, 그게 바로 '엄마의 실수'였던 것이다. 죽었어야 하는 한겸을 억지로 살려 놓은 대가로 엄마가 쓰러진 거였다. 죽음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한겸의 운명에 자신과 엄마까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 한겸이 죽으면 엄마는 깨어날 것이다. 연제는 한겸을 죽음에서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 죽음에 얽혀 있는 엄마를 향한 마음 사이에서 흔들린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가 그런 식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내 삶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일마저도 실은 나와 아무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를 죽을 듯 괴롭게 만들었던 일의 시작과 끝은 사실 내 손안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p.127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귀신 붙게 해 주세요> 등의 작품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이로아 작가의 신작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에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친구가 죽는 미래를 보게 되었다면, 그 죽음을 막기 위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경우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 한다면 어떨까. 한겸은 아홉 살때부터 모두가 죽을 것이라 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곤 했다. 엄마는 매년 한겸에게 부적을 보냈고, 그것이 천사가 말한 '엄마의 실수'였다. 한겸이 지금 나이가 될 때까지 몇 번이나 되살아나며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멀리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쓰러진 지금, 한겸에게는 더 이상 엄마의 부적이 없다. 그러니 연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한겸은 자신의 운명에 잡아먹히고, 엄마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운명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경우의 수. 운명대로 돌아갔을 세상. 일찍이 정해진 대로 펼쳐졌을 미래. 그저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연제가 느끼는 원망과 미안함, 애정과 후회가 뒤섞인 마음을 고스란히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과연 연제와 한겸은 엇갈린 운명을 바로잡고 무사히 스무 살을 맞이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이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속으로 잘 녹아들어 섬세한 심리 변화를 따라가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어 미워해야만 했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서툴지만 순수했던 열아홉의 여름방학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