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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겉들 - 이옥토 사진산문
이옥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진의 좋은 점은, 눈으로 먹은 것들을 박제해둘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신 무엇도 꺾지 않으면서, 누구의 것도 취하지 않는 이 상냥한 식사를 무척 좋아합니다. 새가 모이를 쪼아 먹는 것처럼 작게 찰칵거리는 소리만 가득한 시간. 그리고 나와 같은 식성을 가진 이들에게 간식처럼 나누어줄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제가 꾸려온 모이들이 누군가가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식탁에 모여 앉아 먹는 따듯한 저녁처럼 다정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p.69
과일이나 꽃의 단면을 사진으로 포착해 만든 책갈피 다들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얇게 저민 과일과 꽃의 모습을 반투명한 사진으로 제작하고 직접 조향한 과일과 꽃의 향을 입혀 책갈피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처음 만났을 때 정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선 첫날부터 오픈런 사태가 빚어졌고, 온라인 중고 거래로 책갈피 한 장이 고가로 거래될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는 이옥토 작가의 첫 책이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특별 에디션으로 나왔다.

책의 표지, 책갈피 등으로 만나왔는데, 사진 작가의 산문은 또 어떨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고요하고 섬세한, 서늘하면서도 다정한 사진 속 느낌들이 글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어 시처럼, 노랫말처럼 리듬이 느껴지는 듯한 글들이었다. 초기 사진과 미공개 사진이 110컷 이상 수록되어 있어 사진집으로도 근사한 책이었다. 작가는 '사랑한답시고 사랑해온 것들은 전부 겉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타인의 내밀한 '안까지' 눈으로 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겉'이기에 우리는 상대의 안까지 사랑하고 싶어서 내내 겉을 안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이옥토 작가의 사진들은 주로 사물의 표면을 다루는 것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책에는 유독 인물들의 사진이 많이 담겨 있다. 주름진 노인의 옆모습, 수줍은 미소와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 등 다양한 결로 보여지는 인물들의 사진과 빛과 어우러진 풍경 사진들을 가득 만날 수 있었다.

빈 것들은 곧잘 찌그러집니다. 내 손바닥 한가득 그 이력이 손금으로 적혀 있습니다. 빈손으로 걷다 보면 이따금 그 금이 간 틈새로 내가 새어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내 나를 흘리며 걸어왔는데, 이때 만난 또 다른 당신은 손이 무척 커서 내가 넘치지 않고 그 안에 맺히도록 도와줬습니다. 틈이자 깨진 금이라고 생각했던 자국이, 종이접기 자국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는 형태로 접히기 위해 그어진 선처럼. 사랑은 어째서 단번에 슬픔을 뒤집을까요, 그 슬픔을 버리기보다 내부로 감싸안는 형태로. p.172
작가는 '삶의 대부분은 망설임, 머뭇거림, 주저함, 지지부진함, 서성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효율을 따져 물을 수 없는 제자리걸음과 뒷걸음질이 잦'은 거라고.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우리는 실수하고, 후회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삶이 완벽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는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부서지기 쉬운 존재지만, 일상 속 소중한 것들이 작지만 빛나기에,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 이옥토 작가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사물이든, 인간이든, 풍경이든 그 존재가 지닌 아름다움을 과장하거나, 바꾸지않고 있는 그대로 동결건조시킨다. 순간은 영원할 수 없지만, 이옥토 작가의 순간들은 그렇게 영원히 된다.

이 책은 이옥토 작가가 오랜 시간 채집해온 아름답고도 불완전한 사랑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20대에서 30대로 시간을 거쳐오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있고,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던 장면들에 대한 글도 있다. 이옥토 작가의 글과 사진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곳곳에서 마주하는 빛나는 순간들을 박제하고, 지금의 자신을 만든 생각과 오래도록 애정해온 대상들을 선연하게 담아냈다. 독보적인 창의력을 보여주는 밀도 높은 사진들 못지않게 산문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도 단어 하나, 쉼 하나까지 모두 특유의 감성과 색깔이 묻어나서 좋았다. 혹시 처음 나온 버전을 소장하고 있더라도, 이번에 나온 특별 에디션은 무선에서 양장이 되었고, 사진 40여 컷을 새롭게 선별해 담았으니 꼭 다시 만나보기를 권해주고 싶다.
'쓸모는 이름처럼 붙여지는 것이기에 보잘것없음의 가치는 누군가 보아줌으로 인해 소거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한 것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는 것 이면에 담긴 진실까지 마주하게 만들어 준다. 지금의 이옥토 작가를 만들어 준 출발점이기도 한, 이 근사한 책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