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90세 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 관찰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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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야생동물을 알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선입견이 없어야 할 뿐 아니라 인간이 동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야생동물이 인간과 비슷할 거라 단정 지으면 안 되는 과학자에겐 더욱 그렇다. 자연주의 작가 헨리 베스턴이 말했듯 동물은 우리 형제가 아니고 우리보다 하급자도 아니며, 삶과 시간의 그물에 함께 갇힌 다른 족속이자 지구의 찬란함과 고난을 함께하는 동료 수감자다.              p.178


이 책의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33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에 대해 가르쳤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논문을 쓰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정교수직을 반납하고 메인주 숲속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숲속에 혼자 살며 직접 노동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을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베른트 하인리히는 뛰어난 생물학자였고, 그래서 그가 숲에서 발견한 것들은 소로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메인주 숲 한가운데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숲속 곳곳을 관찰했다. 그렇게 40년간 자신만의 특별한 연구 일지를 써 내려갔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식물, 곤충, 조류, 포유류, 그리고 삶을 위한 전략이라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저자가 평생 토록 숲에서 만난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200년이 지났으니, 현대판 소로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1만 제곱미터 짜리 콩밭을 매일 새벽 5시부터 정오까지 김을 매고 괭이질을 하며, 소중히 돌보았다. 콩밭을 돌볼 때면 날아가는 산비둘기들에 매료되기도 하고, 갈색지빠귀의 노랫소리도 듣고, 흙을 파헤치다가 느릿느릿 거드름을 피우는 점박이 도룡뇽 한 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황자작나무는 어떻게 다른 나무들이 살지 못하는 바위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숲속 나무들은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며 저마다 색다른 생존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울새의 알이 왜 파랗고 임금딱새의 알이 왜 흰색에 암갈색과 자주색 얼룩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어렵겠지만, 알의 패턴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선택압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새알의 착색이 지금 각기 다른 단계로 진행 중인 여러 진화 경로도 보여주는 셈이다. 사람의 붓 솜씨로 낼 수 없는 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외관은 미관적으로도 관찰하는 우리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알록달록 물들인다.                p.316


애벌레가 잎사귀에 남긴 암호를 분석하는 관찰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시작은 애벌레들은 어떻게 건조한 사막의 열기와 햇빛 속에서 굵고 통통하고 촉촉한 몸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애벌레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키워보기도 하고, 밤이든 낮이든 이동해 잎사귀를 먹는 모습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애벌레가 잎을 먹는 방식과 그것이 애벌레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애벌레들은 이동 패턴과 외형의 변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포식자의 위협에 대응하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새가 즐겨 먹는 애벌레는 자신이 갉아먹은 잎의 흔적을 위장했고, 그렇지 않은 애벌레는 숨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고 너덜너덜한 잎사귀를 남겼던 것이다. 




까마귀를 관찰하기 위해 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지켜보고, 새둥지를 조사하기 위해 절벽 근처에 굴을 파고 들어가며, 다친 딱다구리를 구조해주고 이후 딱따구리와 소리를 내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수액빨이딱따구리와의 대화는 일주일 정도 지속되다가, 스위치를 끈 것처럼 갑자기 끝나버린다. 애초에 야생딱따구리와 신호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했다는 것부터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저자의 모험이 너무도 다양하고 드라마틱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는 흔히 숲이라고 하면 나무부터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무가 숲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결핍의 좋은 점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는 것 또한 놀라운 통찰이라고 느꼈다. 나무가 숲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존재인 것은 맞지만, 실은 전체를 이루는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숲에는 그 밖에도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먼지만 한 크기의 작은 벌레도, 스스로 서지 못하는 덩굴도, 사체를 먹고 사는 송장벌레도, 단풍나무 수액을 핥고 다니는 다람쥐도 숲에선 모든 존재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는 순간 누구든 친구가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밖으로 나가 자연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 만지고, 보고, 듣고, 느끼며 관찰하고 탐구할 때만 배우는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생물학자가 숲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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