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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는 각 개인의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이다. 노키즈 존에 입장을 거부당했던 어린이도 언젠가는 청년이 된다는 사실, 노인을 '연금충'이라 부르는 청년도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삶의 진리이자 역설이다. 나이에 있어서, 누구든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나이라는 억압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관계를 규정해 온 나이라는 오래된 문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넓은 인간관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11
우리는 연령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는 노키즈존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장소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존재로, 청년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기적인 존재로, 중년은 재미없고 권위만 앞세우는 존재로, 노인은 무력하고 쇠퇴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인 것 같다. 자기를 인식하는 데에도, 남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하다못해 지하철을 타는 데도 나이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이 책은 틀딱충, 개저씨, 삼포 세대, 영포티, 급식충, 잼민이 그리고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등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같아서 비하하고 조롱하는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유아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저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나이는 그 자체로 매우 제한된 의미만 지니는 변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그토록 나이를 묻는 걸까. 장유유서의 수직주의적 교류 문화는 이제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아이는 미성숙하고, 청년은 노력과 열정이 부족하며, 중년은 꼰대처럼 꽉 막혀 있고, 노년은 퇴화의 시기로 보기만 하면 우리는 삶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그리고 중년 및 노년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갈 때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p.321
요즘 자주 들리는 '영포티'라는 말은 사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40대를 긍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젊은 척하려는 중년층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해 모욕적으로 지칭하는 '할매미'라는 노인 혐오 표현도 있고, 무례하거나 인성이 좋지 않고 예의가 바르지 않은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잼민이'는 심신이 저연령층 같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으로 각 세대가 서로를 향해 '나이 멸칭'이라는 총알을 퍼붓고 있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는 점이 유독 아쉬운 점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다보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농담과 유머로 여겼던 나이 멸칭이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 문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대 간 협력과 교류를 위해 사회 제도를 만들어 나가고, 법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그동안 무심히 답습해 온 연령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 은폐된 현실을 더 예민하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약자인 어린이였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이란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인 것이다. 모든 세대가 나이가 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고, 결국엔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