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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이라 해도 모든 부모는 부모이기 전에 시민이고 개인이다. 자식 또한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고유한 타인이다. 우리는 아이와 좋은 이별을 맞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을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심을 수는 없다.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나'들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돌보는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이 사회를 함께 돌아보면 돌봄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p.7
아무리 많이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준비하고, 타인으로부터 조언을 들어도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바로 돌봄, 육아가 아닐까.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으며, 세상의 속도를 아득바닥 따라잡아야하고,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며, 불안과 공포는 익숙한 감정이 된다. 온갖 매체에서, 각종 책에서 육아에 관련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이지만, 사실 이론으로 배우는 육아 정보란 현실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기 전부터 수많은 육아서들을 섭렵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 적은 거의 없었다. 아이는 언제나 내 맘 같지 않고, 어디선가 배운 대로 아이에게 잘해보려고 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아이가 안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잘 키우고 싶은 것뿐인데, 왜 이리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눈치봐야 할 것도 많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아등바등 쫓아가야 하는 것일까. 전작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로 아픈 딸을 간병하며 돌봄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던 신성아 작가는 이 책에서 내 아이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사회의 불안과 결합해 ‘탐욕스러운 돌봄’이 되는지 짚는다. 저자는 정성과 유난, 책임감과 욕심은 그 경계가 모호하고 기준도 저마다 다르기에 무결하고 이상적인 돌봄이란 성립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을 욕심이라 부르면 탐욕스럽지 않은 돌봄은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돌봄의 어려움은 개인이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당장 해결되거나 개선될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답답해지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대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더이상 내게 없기에 간절하고, 유한하기에 애틋한 것이다. 그러나 형태를 잃었어도 사랑은 오랫동안 온존할 수 있다. 기억은 사건을 연결하고, 관계를 완성하며, 서사를 완성한다. 페이지를 넘겼다고 앞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내가 사랑했던 아이는 우리 이야기 속에 계속 남아 서사를 끌어간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미래의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부를 옛 시절이 될 것이다. 아기에서 아이로, 소녀로, 미성년으로 커가는 아이의 성장 궤도는 마치 나선형 계단 같아서 아래를 보지 않고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 p.166
이 책은 사적인 헌신에 가두지 않고 모두의 책임으로 재사유하자고 제안한다. 저자와 그의 아이가 겪는 개인적 경험들은 사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거나, 고민해봤을 법한 문제들이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수시로 돌발한다는 점, 우리는 부모가 줄곧 아이를 관찰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도 부모를 관찰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아이와 엄마의 관계 역시도 결코 쉽지 않다. 정답이 없는 문제가 대체로 그렇듯 나만의 답을 찾는 데는 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는데, 엄마로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딸맘들은 딸의 독박 육아를 한탄하고, 아들맘들은 아들이 결혼할 때 집 한 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비관한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자식 세대를 위해 구조적 성차별과 역차별을 거론하며 입씨름을 계속하며, 모든 제도들이 오로지 당장 나에게, 혹은 우리 딸이나 아들에게 유리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계량되고 판단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작 이러한 불행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가와 사회가 뒷짐 지고 있는 동안, 애꿎은 개인들만 싸우고 서로에 대한 혐오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한국 사회 돌봄의 구조적 결함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최소 두 번은 돌봄이 필요하다. 취약할 수밖에 없는 미성년과 노년의 삶만큼은 차별 없이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는 소수의 탐욕 앞에서, 경제적 쓸모를 낼 수 없는 이들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사랑이 경제로 환원되면서 발생하는 돌봄의 양극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은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이며, 우리 모두 언젠가 겪게 될 일이기도 하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야 하는 돌봄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확장이 필요하기에, 더욱 의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