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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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에다마님을 모시는 건 망것을 잠재우기 위해서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 뒤에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작은 목소시로 가르쳐주었다.

"마을을 굶주림에서 구해주시는 당식선 주위에도 실은 망것이 우글우글 달라붙어 헤엄치고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야 된다."

마을 사람 누구에게 물어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너는 명심해두라고 할아버지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좋게만 들리는 이야기도 때로 그 뒤엔 다른 면이 있는 법이야."              p.20


괴기소설이나 변격 탐정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인 도조 겐야는 일본 각지에 전해지는 괴담과 기담에 사족을 못 쓰는 인물로 괴이담 수집을 위해 거의 항상 여행 중이다. 어쩌다보니 방문하는 곳에서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과 관련된 괴이담에 얽힌 살인사건이 대부분이라 자연스럽게 아마추어 탐정 역할을 하며 사건을 해결로 이끌어 왔다. 이번에는 같은 대학 출신 대학 후배인 편집자 오가키 히데쓰구가를 통해 그의 고향에 전해지는 괴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조사해보기 위해 마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창해의 목>, <망루의 환영>, <대숲의 마>라고 겐야가 명명한 세 가지 괴담은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와 전전의 괴이담이었다. 나머지 하나인 <뱀길의 요괴>는 히데쓰구가 나고 자란 유리아게촌에서 닛쇼방적 공장이 있는 헤이베이 정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무대로 요 몇 개월 사이에 일어난 무척 불가해한 체험담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현재진행중인 이야기라 더욱 겐야의 관심을 이끈다.


도조 겐야를 담당하는 여성 편집자 소후에 시노와 괴담에 대해 알려준 히데쓰구가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그들은 험난한 길을 뚫고 마을에 도착하지만, 그들은 곧 살인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도조 겐야처럼 민속학을 연구 중인 민속학자 노조키 렌야가 현지에서 먼저 조사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바로 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미로처럼 펼쳐진 대숲 한가운데서, 굶어죽은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상태였다는 거다. 특별히 묶여 있지도 않았고, 두 다리 중 어느 쪽을 다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음에도, 대숲 신사 한가운데서 아사한 것이다. 평범하게 걸어서 나갈 수도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노조키 렌야는 무엇을 조사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어떠한 연유로 신사 안에서 아사한 것일까. 대숲 신사의 열린 공간에서 일어난 괴상한 아사에 이어 살인사건은 연이어 벌어진다. 망루의 시선으로 인한 밀실에서 일어난 수수께끼의 실종, 다루미 동굴의 모래땅 경내에서 일어난 발자국 없는 살인, 큰 헛간에서 일어난 위장 사살로밖에 보이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액사까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연쇄살인을 관철하는 동기는 무엇이며, 사건의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겐야는 이번에도 네 가지 괴담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까. 




그 순간 겐야는 왠지 섬뜩했다. 어선에 당연히 불은 켜져 있지만, 진행 방향 일부를 비출 뿐이다. 배 주변은 압도적인 어둠에 싸여 있어서 그야말로 망선에 쫓기고 있어도 전혀 모를 정도다. 하늘에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유일한 빛은 북쪽에 이치한 이시노리 촌 인가의 불빛뿐이었다. 그런 희망의 빛도 마을 해안선을 지나고 나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이소미 촌에 도착할 때까지 어선 주위는 완전한 어둠에 지배당한다. 대자연의 공포...... 산속에 있을 때도 이따금 문득 느낀 두려움과 똑같은 것이 별안간 겐야를 덮쳤다.               p.450~451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일본 번째 작품이다. 국내에는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산마처럼 비웃는 것>,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네 권이 소개되었는데, 그로부터 무려 11년 만에 신작이 나온 것이라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참고로 시리즈 중에 번역되지 않았던 <흉조처럼 꺼리는 것>과 <기명처럼 바치는 것>도 계약이 되었다고 하니, 곧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리즈는 고립된 마을의 집단적 공포에 기반을 둔 오싹한 호러와 곳곳에 포진해 있는 복선으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본격 미스터리를 방랑 소설가 도조 겐야를 화자로 풀어낸다. 특히나 이 시리즈가 재미있는 건 정교한 트릭이 돋보이는 본격추리 방식에, 비현실적인 괴담을 접목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종종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들기도 하면서 종횡무진으로 달려나간다. 미스터리미스 요소가 돋보이면서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괴기스러운 배경은 극에 더욱 매력을 부여해준다. 도조 겐야 만큼이나 엉뚱한 매력을 보여주는 여성 편집자 소후에 시노와의 에피소드도 유쾌하게 극을 이끌어 준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도라 할 수 있는데, 책의 서두에 고라 지방 지도와 함께 주요 등장 인물이 마을 별로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속도를 더해가는 스토리가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미스터리 고유의 수수께끼 풀이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바로 장면마다 배어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공포라는 감정이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절대 밤에는 읽지 말라고 권해주고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험난한 산과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싸여 왕래조차 쉽지 않은 바닷가의 다섯 마을에 전해지는 시대도, 배경도, 각기 전혀 다른 네 가지 괴담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도조 겐야와 일행들이 고생 끝에 도착한 마을에서 괴담을 모방한 것만 같은 '열린 밀실'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데, 그는 이번에도 괴담 살인사건을 해결해낼 수 있을까에 기대를 모으고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충격적인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도조 겐야' 시리즈는 밀실살인으로 대표되는 본격추리의 틀에 토속적이고 민속학적인 괴담을 접목시킨 독특한 작풍으로 읽다 보면 호러인지 미스터리인지 알 수 없는 그 독특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아직까지 이 시리즈를 만난 적이 없다면, 이번 작품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호러 미스터리의 고수가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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