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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평점 :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흔적 하나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려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뭔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사라지기 직전 전화 한 통, 가벼운 접촉 사고, 취소된 항공편, 마지막 순간의 행선지 변경 등등. 아주 작은 실마리, 이를테면 송곳이 겨우 들어갈 만한 틈새 하나면 모든 비밀을 풀기에 충분하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가방 어깨끈을 당겨 메고 여자가 줄을 서려고 걸어가는 보안 검색대를 향해 간다. 도망자들은 늘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신경 쓰기 마련이다. 여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곧 사라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p.8~9
클레어는 케네디 가문 만큼이나 명성이 높은 쿡 가문의 상속자인 로리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친절하고, 배려심 많던 모습은 사라지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모든 일들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독재자만 남았다. 클레어의 주변에는 비서, 요리사, 가사도우미 등 늘 사람들의 눈길이 머문다. 그들은 클레어의 모든 것을 감시해 남편에게 보고하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클레어는 여전히 스토커처럼 자신을 감시하는 남편의 시선 아래에서 쥐죽은 듯 지내고 있다. 그나마 그녀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체육관이었다. 비서가 유일하게 동행하지 않는 장소였기도 하고, 그곳에서 학창 시절 친구였던 페트라를 만났기 때문이다. 페트라와 만나고 나서 몇 년에 걸쳐 클레어는 자신의 실종 계획을 세워왔다. 단계별로 완벽한 타이밍에 계획대로 정확하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실행 당일 로리가 갑자기 클레어의 출장 장소를 바꿔 버린다. 계획이 변경되어 원래 클레어가 가야 할 디트로이트에 로리가 가고, 그녀는 갑자기 푸에르토리코에 가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렵게 준비한 4만 달러의 도주 자금과 가짜 신분증 등 오래도록 준비한 계획이 완전히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도착한 공항, 그곳에서 클레어는 처음 만난 이바라는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두 사람은 항공권을 바꾸기로 한다. 가방에 든 내용물까지 모두 바꿔치기하고, 겉옷까지 바꿔 입은 채 각자 다른 항공기에 오르는 두 사람. 그런데 오클랜드 공항에 착륙한 클레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이 탑승하려고 했던 바로 그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객들의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뉴스 보도였다. 그리고 자신이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만큼 중대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과연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 숨거나 도망치는 일은 그만둬야 해요." 리즈가 말했다.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덮는 행위도 멈춰야해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이바가 말했다. "카스트로는 나에게 평범한 삶을 찾으라고 하더군요. 덱스가 저를 가만 놔둘 리 없는데 어떻게 평범한 삶을 찾죠? 그나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길 떠나는 거예요. 카스트로가 덱스를 체포해 잡아넣을 수 있게 한 다음 나는 멀리 사라지려고 해요."
"당신이 말한 대로 할 경우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해요. 그나저나 어디로 갈지 정해두었어요?" p.395
여기 두 명의 여성이 있다. 클레어는 미국 정계에서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나 곧 상원의원 출마를 앞두고 있는 남편을 두었지만 그의 가스라이팅과 폭력으로 인해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바는 버클리 대학 화학 영재였지만 남자 친구의 강요로 만든 마약이 발각되어 퇴학 당하고, 현재는 마약 조직의 일을 하는 막막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기를 갈망하는 두 여성이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다. 클레어는 푸에르토리코행 항공권, 이바는 오클랜드행 항공권을 갖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두 여성은 서로의 항공권을 바꿔치기하기로 한다. 낯선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과연 클레어는 남편으로부터, 이바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원하는 건 모두 두려움의 뒷면에 존재한다."
남자들에게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찾으려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고, 스릴 넘치게 흘러간다. 잃어버린 삶을 되찾기 위한 그녀들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내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공포를 넘어서고,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작가인 줄리 클라크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의 사각지대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과 불합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구성을 가진 스릴러로서도 훌륭하고,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여성 서사로서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