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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살인법 - 독약,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닐 브래드버리 지음, 김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평점 :
소름 끼치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트로핀은 현대 의학에서 새로운 용도로 주목받고 있다. 신경독에 노출된 스파이를 치료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아트로핀은 병원에서 심장 박동을 제어하는 약물로 흔히 쓰인다. 심장 박동이 느려진 환자나 심지어는 아예 심장이 멈춰버린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다. 또한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아트로핀을 투여해서 수술 도중 타액이나 체액이 폐에 고여 폐렴을 유발하는 것을 사전에 막는다. 한때는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던 물질이 치료제로 재탄생한 것이다. p.95
제목부터 미스터리, 스릴러를 연상하게 만들지만, 이 책은 과학 도서이다. 생리학 및 생물 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미스터리 마니아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 역사상 독약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11가지 화학 물질과 그것이 사용된 실제 독살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슐린, 아트로핀, 스트리크닌, 칼륨, 비소 등 각각의 독약이 가지고 있는 치명성과 과학적 원리를 밝히고,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독살 사건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던 물질이 의료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한 물질로 출발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독약이 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물질들이 우리 몸에서 작용하는 과정을 화학적 원리에 근거해 설명해주고 있어 '독살 교양 과학' 도서로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게다가 실제로 벌어졌던 여러 살인 사건들을 살펴보는 논픽션으로도 흥미진진한데, 웬만한 범죄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범죄의 역사 속에서도 피가 끓어올라 순간적으로 저지르는 충동적인 살인에 비해, 치밀한 사전 계획과 냉혹한 계산에 따라 저질러지는 독살은 그것이 의도적이라는 데 더욱 섬뜩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비롯해 많은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 역시 그래서 독살을 작품의 소재로 종종 사용해 왔을 테고 말이다. 게다가 독살은 철저한 사전 계획과 조사가 있다면 힘 없는 보통 사람도 실행할 수 있는 종류의 살인법이라는 점도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완전 살인을 성공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 무기를 깔끔하게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피 묻은 칼이나 지문으로 범벅이 된 총기류는 감추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무기라면? 아무런 흔적도 없이 혈액 속에 녹여버릴 수 있는 거라면? 일반적인 식품점이나 마트의 진열대에 독약이 아무런 제재없이 진열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이번 장에서 다룰 독약은 바로 그런 독약이다. p.243
'독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개 치명적인 화학 물질부터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때로는 독을 만드는 성분과 좋은 목적으로 쓰이는 약의 성분이 똑같을 수도 있다. 하나의 화학 물질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언뜻 보면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이런 현상을 사람들이 처음 알아 차린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다루는 '인슐린'도 바로 거기에 해당하는데, 인슐린은 겨우 30년 만에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물질에서 치명적인 살인 무기로 전락하는 불행하고 비극적인 역사를 가졌으니 말이다. 이어 대형 마트에서 벌어진 묻지마 범죄에 사용된 아트로핀, 20세기가 밝아오던 시절까지는 강장제, 활력 회복제로 애용되었던 스트리크닌, 매력적인 보라색 또는 푸른색의 꽃을 피우는 투구꽃에서 추출된 아코나이트,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도 잎에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디기탈리스, 여러 스파이 소설과 탐정 소설에서 거의 순식간에 죽음을 불러오는 살인의 도구로 가장 악명 높은 독약인 청산가리 등 이 책은 흥미로운 독약의 과학을 자세하고, 쉽게 알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염화칼륨처럼 소금과 화학적으로 거의 유사하며, 요리나 간을 맞추는 데 있어 소금보다 더 건강한 대체품으로 팔리는 것도 독약의 목록에 있었다는 점이다. 칼륨이 없으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지만, 몸 속에 칼륨이 지나치게 많아도 생명에 위협이 된다고 하니 말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 살인범이 되어 아직도 경비가 삼엄한 램튼 병원에서 형을 살고 있는 얼릿은 바로 이 염화칼륨을 통해 자신이 간호했던 어린이들을 살해했다. 그 외에도 가장 역사가 길고 가장 흉악한 종류의 독약 중 하나인 비소, 전쟁에서 무기로 사용된 염소 등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과학의 여러 측면에 대해 만날 수 있었다. 생리학자의 눈으로 보는 독극물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하다면, 11가지 화학 물질이 어떻게 독으로 변해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