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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난 이름들을 하나씩 잊어, 삼바. 그래도 난 네가 누군지 알아.」343p
프랑스에 온지 10년, 삼바는 체류증을 신청한다. 5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초조해진 그는 진행절차를 알아보려고 경찰청에 자진 출두한다. 한참을 기다려 담당자를 만났더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란다. 그리고 잠시, 느닷없이 수갑이 채워져 벵센 유치소로 호송된다. 이유는 2개월 전, 경찰청은 삼바의 체류를 거절하는 답변을 보냈다는 것. 따라서 그는 (인지하지 못한) 불법 체류자 신세로 추방 직전의 상태에 직면한다. 삼바는 자신의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Vie privee et familiale: 표지에 있는 체류증의 체류목적)을 지키기 위해 <시마드Cimade>라는 시민단체에 연락한다.
작품의 원제는 「Samba pour la France」로 <프랑스를 위한 삼바> 혹은 <프랑스에 삼바를>이라고 번역된다. 전자는 <삼바>로 상징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민자들>을 의미하는 듯 하다. 후자는 삼바라는 춤의 흥겨운 특성을 미루어 볼 때,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인) <프랑스에 보내는 갈채>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비꼼이라고 해도 될까? 델핀 쿨랭은 삼바라는 청년의 눈과 입을 빌려 프랑스를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프랑스의 시스템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에 온 삼바가 가장 처음 배운 것은 바로 <동화>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이처럼 보이기 위해, 스웨터(후드 달린 티셔츠)를 입고 그들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내야 했다. 모든 것은 프랑스에 체류하기 위해서, 어색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다. 월급의 일부는 집세와 생활비로 사용했지만 대부분은 말리에 있는 고향집으로 송금해야만 했다. 합법적으로 머무르는 이들과의 봉급 차이에도, 그를 바라보는 파리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에도 불구하고 삼바는 프랑스를 사랑했다. 그에게 프랑스는 <내 나라>였던 것이다.
삼바의 소망은 프랑스에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법적으로 이 나라에 머무르는 것이 필수다. 체류증이 있으면 더 이상 가슴 졸이며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사회의 안전망 안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얻어 일정한 수입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19살에 프랑스에 도착하여 다시 10년. 그런 이치고 삼바는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 끝에 도착한 프랑스였기 때문일까. 삼바는 그가 부딪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다.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 깨질 수 없는 신화적 존재처럼. 체류증을 얻으면 따라올 <보상> 때문일까? 그것을 얻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프랑스에 도착하고 나서 6개월 임시 체류증을 받았고, 갱신을 한 번 했다. (유효기간은 언급되지 않음) 그리고 10년 후 처음으로 체류증을 신청한다. 벵센 수용소에서 삼바는 자신이 프랑스에 머무른 10년 동안 세금과 사회 보장 부담금을 꼬박꼬박 냈음을 강조한다. 체류 목적인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에 걸맞는 생활을 해왔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프랑스에 온 첫 해의 서류가 미비하여 문제가 생긴다. 우여곡절 끝에 유치소에서 풀려난 뒤에야, 깨닫게 된다. 자신이 꿈꾸던 프랑스와 현실의 프랑스는 다르다는 것을.
전쟁 후, 노동력이 부족해진 프랑스는 여러 차례에 걸쳐 노동이민을 적극 장려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 온 사람들이, 그리고 마그레브(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프랑스 사회 재건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초청, 도시 주변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고 이 곳은 지금의 시떼(Cite)가 되었다. 처음 시떼는 단순히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주택 단지를 가리켰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프랑스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민 1, 2세대(가톨릭 문화권)와는 달리, 마그레브 출신의 이민자들은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기도 했거니와, 프랑스 사회의 재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동화되지 못한 이민 3세대, 4세대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를 다룬 프랑스 영화로 「증오」가 있으며, 영화 「언터쳐블」의 주인공 드리스도 도시외곽(Banlieu), 시떼에 산다.) 이 문제는 <외로운 늑대>로 상징되는 자국민에 의한 테러, 그리고 IS의 출현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의 황금기였던 영광의 30년(Les 30 glorieuses)은 이민자들이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의 이민 세대들이 프랑스 사회에서 거부당한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입장에서도, 이민자들이 꾸린 공동체에서의 문화와 규범이 프랑스 사회의 전통적인 문화와 규범과 충돌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다. 또한 경제 위기가 대두되면서 교육과 복지예산 등의 수혜자들을 프랑스 국민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문턱은 높아졌고, 시스템은 까다로워졌다.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 몇 년전까지만 해도)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했을 때 체류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경찰에 의해 즉각적인 추방이 집행될 수 있었다. 살벌하지 않은가? 그만큼 프랑스에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류증과 관련한 사례로, 니콜라 사르코지와 세골렌 루아이얄의 대선 토론 클립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이슈였는데, 손자를 등교시키던 할아버지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손자의 눈 앞에서 체포되었다는 것. 사르코지는 할아버지가 Sans papier, 체류증을 제시하지 못했음을 강조했다. 사회당 당수였던 세골렌 루아이얄은 단호하게 말했다. <Ce n’est pas notre France. 그것은 프랑스가 아니죠.> Sans papier인 할아버지를 체포해야하는 상황과 법은 인정하지만, 손자 앞에서 집행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삼바가 머물렀던 벵센 유치소에는 끔찍한 일들이 전해진다. 출신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면도칼을 삼키는 등 자해를 하는데, 어떤 이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고향에 도착했다고도 한다. 삼바가 비정한 현실을 깨닫는 장면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에 루마니아가 포함되면서 각국은 집시로 불리는 이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그들의 문화적 특성상,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고 걸식과 절도 행위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국에서는 이들을 즉각적으로 추방하지만 인권 보호국인 프랑스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타협점은 그들을 비행기에 태워 출신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비행기 편도 비용은 프랑스 정부가 부담하는데 이것이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어째서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는데 <세금>을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뉴스도 기억하고 있는데 인터뷰에 응한 집시들les Romes이 체류하는 목적이 소설 속 삼바 시세와 마찬가지로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이었다. 뉴스에서 봤던 이들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었다. 즉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 마을, 저 마을로 이동하면서 길이나 숲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촌을 꾸린다. 마을은 이들이 투척한 오물등으로 더러워지고, 이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절도 사건이 늘어난다. 걸인 행위는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을 강제 추방하는 프랑스를 성토하며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소설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삼바 시세의 체류 목적도 <사적이고 가족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몸에 불과했다. 저녁마다 그는 지쳐 쓰러졌다. 가끔은 먹지도 않고 잠만 잤다. … 그는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계속, 더 많이 했다. 프랑스 경제를 좀먹는 이주민의 이미지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렇게 십년을 보냈다. 119p
체류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당국이 요구하는 서류를 갖춰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체류목적에 맞추어 거주하고 있었음을 <서류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서류가 <나>라는 사람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조나스가 주머니에서 팸플릿을 꺼내더니 입을 쑥 내밀고 일부러 사투리 억양을 써가며 읽어 내려갔다.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프랑스인은 문화와 근본적인 가치들에 충실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가치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는 계속 읽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고 살아가며, 평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웃기고 있네!」 300p
삼바는 체류증을 받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면, 조나스는 프랑스에 대한 인상이랄 것도 없었는데 난민 인정을 받아 합법적으로 이 나라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지만 삼바처럼 프랑스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만이 가득하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프랑스 당국이 요구하는 서류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심지어 삼바는 체포될 때, 체포되는 이유도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삼바가 못 알아들었으리라 추정된다. 경찰청이 답변을 보낸 사실은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었지만 삼바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진척 상황을 알아보려고 자진 출두했으며, 이러한 상황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체포되었다. 담당직원으로부터 모멸감을 받았으며, 삼촌과 연락도 거부당했다. 그곳에서 그는 불법 체류자로 <분류>되어 인간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스템은 프랑스가 수호하는 가치인 인권을 보호하지 못했다. 즉 인간적이지 않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위선. 그는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 노인네의 똥을 닦아 주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낮이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게, 마치 때, 노쇠, 쓰레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그들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중략) 그는 이 나라보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더 실망했다. 그는 그들의 멸시에 침을 뱉었다. 지난날 자신의 순진함에 침을 뱉었다. 인간의 본성에 침을 뱉었다. 283p
프랑스에 대한 순정이 여러 차례 거부당하면서, 삼바는 타락한 프랑스가 나 역시 타락시켰다며, 아픔을 토해낸다. 프랑스가 요구하는 <삼바>가 되기 위해, 그는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꾼다.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여, 다른 방식으로 프랑스에 머물기를 택한다. 고향, 말리에도 돌아갈 수 없다. 좋으나 싫으나, 삼바의 나라는 프랑스인 것이다. 그리고 소설 막바지에서 그가 염원했던 두가지-프랑스와 그라시외즈-중 또 다른 하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Gracieuse. 우아한 여인은 돌아오지 않을 이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녀에게 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의 우승자였던 권율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만 승자만이 성공을 독식한다는 것이다.> 삼바가 원한 프렌치 드림도 비슷했다. 기억 속의 라쿰바 사내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승자가 아니었다. 프랑스가 내세우는 가치와 달리, 그들의 요구에 맞지 않았을 때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법원으로 받은 답변도 (삼바에게 있어서) 석연치 않았다. 결국 그는 시스템에 의해 거부당했고, 그 시스템을 이용하여 기회를 잡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온 노동 이민자들을 생각해본다. 계획적으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프랑스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우리 사회도 겪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삼바가 특이한 케이스일 수도 있다. 타국에서 일하면서, 능력상의 이유로 혹은 법적인 이유로 자국민과 다른 대우를 받으면서 그 나라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 체류자가 되기를 택한 그의 행보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가 좌초하는 운명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삼바>는 어쩌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맞추려고 노력중인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 서류상으로 기재된 숫자와 문자들로 존재가 증명되는, 소음 속에서나마 내 이름을 외칠 수 있는, 기쁠 때 추는… <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