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허즈번드 시크릿>을 읽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올 때 마다 책 표지가 뜨고, 판매지수도 높길래 읽을만 한가 생각했다. '아마존에 쏟아진 찬사!' 이런 광고카피도 한 몫 했고. 그러다 ㄷ님의 감상을 보게 되었는데 와, 정말로 공감하는 표현을 찾았다. "수다스럽다."

 

사실 글 자체는 흡입력있게 쉬이 읽힌다. 그런데 글 전체에 도사리고 있는, 뭔지 모를 부산스러움은 집중력 있는 독서를 방해한다. 가끔 번역된 소설을 읽다보면 느끼는 점이기도 한데, 작가의 문체가 원래 이런건지 다른 작품들은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책에 실린 아마존 서평 중 하나는 "치밀한 구성, 예상치 못한 반전"이라는데 글쎄올시다. 남편의 비밀은 초반부에서 알아차릴 수 있고, 독자가 반전을 알아차렸다는 점에서 치밀한 구성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추리소설 느낌이 나지만, 남편의 비밀이야 편지를 읽어보면 알 수 있을 테고...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과 '만약'이란 가정은 그저 끼워맞추기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존 폴을 통해 인간의 죄책감과 자기 기만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의 짝인, 모범적인 세실리아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잘 드러난다. '진실'을 마주한 그녀는 몇 번 구토하고 자기절제력을 잃는다. 하지만 충격이 지속되는 시간과 강도는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또 너무 빨리 회복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캐릭터다운 빠른 회복일 수도 있겠고, '엄마'라는 포지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주제를 다루기에 '일주일'은 충분한 것 같기도,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버지니아가 긴 세월 동안 입을 다문 것, 세실리아가 끔찍해 하면서도 입을 다물게 되는 것, 테스가 조각난 결혼생활을 짜 맞추려는 것 그리고 레이첼이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은 것 모두 '모정' 때문이다. 자식이라는 게 뭔지, 주정뱅이였던 코너의 어머니까지도 중요한 순간에 모정을 발휘한다. 엄마는 그런 걸까. 사랑과 희생은 언제나 함께인 단어인걸까.

 

시모도 알고 있었으니 빼박 사기 결혼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진짜일 테지만, 이 때까지 그녀가 알아온 남편의 실체는 빈 껍데기였단 말인가. 아무리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라지만 세실리아가, 매 맞는 아내와 겹쳐보였다면 너무 비약이려나. 죄책감과 울분, 모든 진실 앞에 폭발하고 말지만 부모의 죄를 자식이 대신 이어받는다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보며 더한 고통에 시달릴 건 분명 세실리아일 테고.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갔다면 세실리아는 다른 이를 만나 결혼했을 것이고, 코너도 그토록 오랜 기간 고통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존 폴도 안타깝지만 '그도 피해자'라는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 진짜 피해자는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했고, 살지 못하고, 살아가지 못할 사람들이다. 죄에 대한 속죄 방식을 가해자가 직접 정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거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존 폴이 온몸을 크게 들썩거렸다. 심장마비로 고통받는 사람처럼 손바닥으로 가슴을 세게 눌렀다.

"내 앞에서 갑자기 죽진 마."

세실리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세실리아는 손바닥 끝에 볼록한 부분을 두 눈에 대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지그시 눌렀다. 눈물이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훨씬 짭짤하게 느껴졌다.

"왜 레이첼에게 말한 거야? 하필 이때?"

존 폴이 말했다.

세실리아는 눈에서 손을 떼고 존 폴을 쳐다보았다. -505, 506p

 

펼친 부분 접기 ▲

 

발췌는 딥빡^^ 을 느낀 부분. 저혈압이신 분들께 추천한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만큼은 아니지만 간만에 혈압상승을 느낄 수 있다. 멘탈 약한 남편을 보듬어 살아야 할 세실리아가 안 됐지만, 그녀의 고백이 좀 더 일렀다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자식을 위한 피츠패트릭 엄마들의 선택은, 자식들의 인생을 고통스럽게 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세실리아가 진실을 알지도 못했을테고(편지가 없었을테니), 진실을 알았다손 치더라도 거침없이 이혼했을 텐데 자식이란 게 뭔지 참, 인생은 쉽지 않다. 그리고 자식도 없는데 고통받는 코너... 짝을 잘 만나야한다는 교훈을 준다. 사람 마음이란 게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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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5-05-0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서 딥빡이라고 할수 있는 부분이 있었나요? ^^

에이바 2015-05-06 11:57   좋아요 0 | URL
브리오니요. 제가 이 소설을 2006년 봄에 읽었는데요 그 이후로 다시는 펼치지 않았죠... <작가란 무엇인가> 때문에 매큐언 작품에 관심이 가서 다시 읽어볼까 생각중이에요.

네오 2015-05-06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상황들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 부분요? ㅋ 브리오니가 로빈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ㅎㅎ

에이바 2015-05-06 23:16   좋아요 0 | URL
감수성 풍부한 문학소녀였으니까요. 그런데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시도도 안 했죠. 문학으로 속죄를 했다기엔 기만성이 강하고요...

CREBBP 2015-05-0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수다스러웠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래도 뭐 술술 잘읽히는데다가 그 삼각관계 있자나요. 남편이 사촌이랑 바람나서 와이프한테 하는 짓거리 묘사가 참 흥미진진했죠. `재미`는 있었습니다.

에이바 2015-05-07 19:25   좋아요 0 | URL
테스 이야기는 뭔가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흥미로웠어요. 나머지 인물들은 맥 빠지고요. 그러고보니 이 소설 막장이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