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
데이비드 M. 귄 지음, 신미숙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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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제국 이전, 공화정 시기의 로마를 다루고 있다. 건국 신화를 통해 도시국가 로마의 기원을 살펴보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공화정 체제가 안착한 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세력이 된다. 이 시기의 로마는 ‘디그니타스와 글로리아’ 즉, ‘위엄과 영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조들의 업적을 모방하고 능가하라는 요구는 후손들이 정복전쟁에 몰두하도록 채찍질한다. 로마에 있어 가장 큰 영광은 정복 전쟁 후 개선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마르스 평원과 대경기장을 지나 유피테르 신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끝나는 여정이다. HBO TV 시리즈인 『롬Rome』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자. 카이사르 시해를 망설이는 브루투스를 설득할 때, 카이사르의 ‘독재’를 과거의 ‘왕’에 비유한다. 브루투스의 직계 선조가 왕을 끌어내린 주역, 공화정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젊은 귀족들은 정복전쟁에 몰두하게 되고, 팽창한 로마는 내부의 모순을 견디지 못한다. 공화정의 몰락을 불러온 셈이다.

 

로마의 지배층을 지배한 ‘위엄과 영광’은 로마인의 생활과 정치,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라는 ‘보호자와 피보호자(피호민)’이라는 관계형성은 로마시민의 계층화를 불러온다. 자영농 군인, 노예와 도로망 구축에 따른 정복전쟁과 무역의 번성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계층은 로마인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로마인의 두번째 이름인 씨족명은 사회적 서열을 나타낸다. 또한 이름을 통해 가문의 역사와 형제 중 맏이인지를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로마의 종교는 주신(유피테르: 그리스의 제우스)이 따로 있었지만 새로운 신에 개방적이었다. 이는 만신전으로 확인된다. 외국신을 로마에 흡수함으로써 정복지와의 유대감을 확립하면서 로마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세 번의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 공화정은 중요한 변화를 맞이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등장으로 공화정 최초로, 한 개인의 권위와 영광이 원로원의 집단 지배권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스키피오 이후 나타난 기사계층과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들로 인한 빈부 격차는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개혁 시도를 불러온다. (이들의 농지개혁은 실패하지만 이후 카이사르가 계승한다.) 잇따른 군사적 위기는 군사지도자, 군벌의 출현을 불러온다. 그 시작은 가이우스 마리우스였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이어진다.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다루는 시기이다.)

 

공화정기 문화의 절정은 기원전 1세기의 카툴루스와 키케로가 수립했는데, 키케로는 마리우스처럼 아르피눔 출신의 신진세력이었다. 위대한 웅변가였던 그는 군사적 재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천재였으며 로마 하면 떠오르는 문장가이기도 하다. 당시 로마인들의 가치와 세계를 반영한 예술과 건축, 회화와 조각 등도 소개하고 있다.

 

로마 공화정은 5백 년 동안 지속된 체제이다. 왕의 추방에서 시작하여 황제의 등장으로 끝나는 로마의 비극은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 투쟁에 의한 것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귀족간 경쟁, ‘영광’에 대한 갈망은 로마를 팽창시켜 군벌을 탄생시키고 내란을 불러온다. 『로마 공화정』에서는 제정 시기로 넘어간 로마도 살짝 다루고 있다. 제국으로의 변모는 로마시민권의 확대를 불러왔고, 4세기 기독교가 로마에 뿌리내리면서 공화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화정의 역사와 영웅 이야기는 성경에 반영되었고 기독교 교부들의 저술이 키케로의 자리를 대신했다. 14세기, 르네상스 시기 로마 공화정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마키아벨리와 셰익스피어는 로마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켜 여러 저술을 남긴다.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희곡) 흥미로운 것은 로마 공화정이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데 그 부분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공화정 시기의 로마를 정리하기에 제격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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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와 페소아들』을 통해 페소아와 그 이명들을 소개한 작가 김한민 씨가 2014년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정된 작품은 시선집인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올 예정이다. 문학 총서 「제안들」의 22번으로 목록에 올라와 있다. 현재는 10번까지 출간되었다. 이명 중 하나인 알바루 드 캄푸스의 시로 나오려나? 궁금하다. 알바루 드 캄푸스의 시 중 「담배 가게」는 얼마 전 출간된 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에 실렸다. 또 다른 이명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시집 『양치는 목동』은 90년대에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절판이다.


외국문학 지원대상 선정 경위

포르투갈어: 『페르난도 페소아 대표 시선집』은 원작시의 묘미를 잘 살린 번역으로, 신뢰할 만한 번역이고 또한 국내 출판 상황을 감안할 때 번역의 필요성이 높은 점에 주목하여 지원작으로 선정했다.



http://m.daesan.or.kr/m_b.html?Table=ins_bbs1&mode=view&uid=555&pag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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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us 2020-11-1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페소아에 대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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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빌가의 테스》를 쓴 토마스 하디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 작품이라길래 궁금해졌다. 캐리 멀리건이 출연하는 영화도 있고... 1874년에 쓰인 소설이지만 현대의 로맨스 구도와 아주 유사하게 흘러간다. 여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성의 이야기인데 당시 사회나 종교적 함의를 더 알았다면 좀 더 색다르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밧세바는 좋은 교육을 받고 외모도 뛰어난 젊은 여성이지만 재산이 없어 숙모 댁에서 일을 돕는다. 같은 마을의 자영농 가브리엘 오크가 청혼하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얼마 후 가브리엘은 사고로 재산을 모두 잃게 되고 삼촌의 유산을 상속받은 밧세바는 부유해진다. 가브리엘은 밧세바의 농장에서 양치기로 일하게 된다. 밧세바는 방종한 관리인을 내쫓고 직접 농장을 관리하는 한편, 이웃 볼드우드에게 장난으로 발렌타인 카드를 보낸다. 볼드우드는 진지하게 구애를 하고,  이에 놀란 그녀는 자신이 경솔했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 꽤 슬기롭게 농장을 꾸리던 밧세바는 잘생긴 군인 트로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주변인들 몰래 결혼한다. 트로이는 도박에 빠져 농장을 빚더미에 올린다. 주인공이 어리석은 결혼을 후회하고 있을 무렵, 남편의 옛 애인이 주검이 되어 나타나고 이어 남편도 실종되는 등 한바탕 사건이 벌어진다.

 

소재만 보면 호러가 따로 없다. 죽음, 살해, 사형, 화재 등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주인공 밧세바의 ‘허영’을 벌하기 위한 장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허영은 있지 않은가. 하물며 외모가 뛰어나고 좋은 교육을 받은 인간이라이라면 더욱! 밧세바가 손거울을 보는 모습을 지켜본 가브리엘은 이를 허영이라고 평가한다. 혼자 있다고 생각한 순간까지 ‘평가’받아야 하는 여성의 운명이여! 밧세바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거울 좀 봤기로서니... 그녀에게 구애한 세 남자 모두 밧세바의 외모를 칭찬하고 인정하지 않는가. 물론 밧세바가 충동적인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대부분의 경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엄청난 결점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지역사회에서 존경받고 나이도 지긋한 볼드우드는 농장을 팽개치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트로이의 실종 후 조용히 살고 있는 밧세바에게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볼드우드의 모습은 소름이 끼친다. 트로이와 패니, 아기 문제와 농장, 사람들의 시선에 ‘밧세바 볼드우드’라는 이름표가 달린 혼수들이 빼곡한 방이 합세하니... 밧세바의 어리석음을 탓하다가도 불쌍해지는 것이다. 그녀의 ‘허영’을 벌하고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 해도 너무 가혹한 일들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보는 입맛이 쓰게 느껴졌다. 오크가 스스럼없이 ‘아내’라 지칭하고 주위의 축하를 받지만 밧세바가 웃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부분 말이다. 이례적으로 독립적이라 평가받던 여성도 결국 누군가의 ‘아내’로 끝난다. 이 소설이 페미니스트 문학으로 꼽히는 이유가 밧세바의 '독립심'이라는 이유라는데 여러모로 시대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나마 신부가 마냥 웃지 못했다는 것, 결혼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운 점을 조금 달랜다.

 

이 소설은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자연 풍경을 훌륭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상호작용이 아주 섬세하다. 토마스 하디가 중요하게 여긴 요소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가브리엘 오크는 밧세바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가브리엘은 종교를, 오크는 자연을 상징한다. 소설 초반부에서 그가 말 없이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과 교회성가대의 베이스를 맡은 신앙심을 떠올려보자. 더불어 밧세바를 향한 헌신과 의리는 그 ‘모든’ 일을 겪은 여주인의 애정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재산도 좀 모아진 터라 신분 차도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말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왜, 토머스 하디가 여주인공에게 밧세바라는 이름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밧세바는 성경 속 우리야의 아내로, 다윗 왕의 눈에 들어 동침해야 했던 안타까운 여인이다. 남편은 심지어 전장에 나가 죽지 않는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 건 다윗인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탕녀가 되어버린 인물, 주변 남성에 의해 평가된 소설 속 여주인공의 모습과 겹친다면 비약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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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8-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읽으려고 사뒀기 때문에 이 리뷰를 읽지 않으려고, 첫 단락만 읽고 그냥 패스하려고 했는데, 다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하하하하하. 그나저나 마지막 단락의 성경속 밧세바 얘기가 더 흥미롭네요. 저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야 하는걸까요? 흐음.

에이바 2015-08-24 13:06   좋아요 1 | URL
아뇨아뇨 다락방님 제가 말씀드릴게요. 짧은데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디테일은 틀릴 수 있어요. 다윗이 거인 골리앗에게 짱돌 던져서 이긴 건 아시죠. 그 다윗이 왕이 되고 시간이 흘러 늙고 지쳤던가 그래요. 그러다 어느 밤 옥상을 걷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욕정을 느껴요. (이 부분이 어디선 유혹이라고 해석되는데 제가 본 이야기는 밧세바는 다윗이 보는 걸 몰라요.) 밧세바는 유대민족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던가 그래요. 남편은 우리야 장군이고 금슬도 좋았어요.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동침하죠. 애가 생겨요.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으려 우리야를 전장에서 소환해요. 충신인 그가 집에 돌아가 동침하지 않은 걸 알고 죄를 덮으려 우리야를 가장 치열한 전장에 보내 전사시켜요. 밧세바를 아내 삼고요. 이로 인해 신이 노해 벌을 내리고 태어난 아이는 죽어요. 결국 다윗의 욕심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결국 권력에 대항 못한 밧세바(남편과 아이의 죽음)는 벌을 받고 다윗은 용서받아요. 참고로 다윗과 밧세바의 둘째 아들이 솔로몬 왕이에요.

그러고 보니 등장인물들의 포지션과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관음하는 장면도 그렇고요. 어느 이야기에서나 밧세바는 참 안 됐어요...

one fine day 2015-08-24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 봤는데요. 영화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꺼리짐한 스토리는 다 패스가 되더라구요. 여주가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 밧세바와 볼드우드의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전 그장면에서의 밧세바가 참 아름다웠어요. 뭐랄까.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고 격정적인 사랑도 다 빛을 바래지만, 그 순간만큼은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주는 듯 했죠.
원작이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보다는 책이 더 좋을 때가 많은데, 이 소설은 책으로 보면 많이 답답하지 않을까 싶어 망설여지네요.

에이바 2015-08-24 13:54   좋아요 1 | URL
one fine day님 말씀처럼 수긍할 만한 전개였어요. 아무래도 페미니즘 문학이라 생각하고 읽었기 때문에 순전히 밧세바 입장에서 쓴 리뷰이고요... 사실 글을 읽으며 밧세바가 별난 여성으로 여겨질지언정 어디 감히 여자가 이런 느낌이 들진 않아서 좋았어요. 세 남성 모두 밧세바에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적어도 말로는 말이죠. ^^;; 글의 전개는 속도감 있고 명쾌해서 말씀하신 부분들이 답답하진 않았어요. 초기작이니만큼 덜 다듬어진 맛은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이 얼마나 섬세한지... 영화를 좋아하셨다면 원작도 괜찮다고 느끼실 거예요. 저는 배우들 모두 제 상상보다 예쁘고 멋져서 좀 슬펐어요.

프레이야 2015-08-24 14:09   좋아요 0 | URL
영화제목은 무엇인지요?

에이바 2015-08-24 14:16   좋아요 1 | URL
영화 제목도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입니다. 캐리 멀리건이 밧세바로 나오고요. 가브리엘과 볼드우드가 잘생겨서 슬프더라고요. ㅠㅠ 로맨스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프레이야 2015-08-24 14:25   좋아요 1 | URL
캐리 멀리건‥ 아 그러고보니 제목 본 기억이 납니다. 찾아서봐야겠어요.~^^

one fine day 2015-08-24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하디 작품은 워낙 테스에서 질려버려서 좀 망설였는데 읽어보겠습니다 ^^
영화제목은 책 제목과 같구요. 제가 아름답게 본 장면의 배경의 음악이 유튜브에 있길래 퍼왔습니다 ^^.

http://youtu.be/WCm1XNVD_0c

에이바 2015-08-24 14:28   좋아요 0 | URL
테스보다는 혈압이 덜 올라요. 테스는 정말 ^^^^^^^^^^^^^^!!! 캐리 멀리건은 노래도 잘 하네요. 영상도 아름답고... 잘 봤습니다.^^

꼬마요정 2015-09-0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좀 찝찝했어요. 그 시대에 여자 혼자 살기 힘들어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래도 오크가 낫긴 하죠. 나름 신의도 있고... 볼드우드는 무서웠어요. 얼마 전 기사에서 본 애인을 살해한 남자 같다고나 할까요.. 여튼 재미있게 읽었어요. 불쌍한 밧세바..

에이바 2015-09-08 14: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볼드우드의 집착이 섬뜩했어요. 밧세바가 가진 것 없는 여성이었다면... 음... 그래도 오크가 제일 낫죠. 이러쿵저러쿵 대는 하인들도 단칼에 정리하고 성실하고요. 한편으론 밧세바를 위해 준비된 남자라는 생각도 들었어요.ㅋㅋ
 

감이 붉은 시골 가을이
아득히 푸른 하늘에 놀 같은
미결사의 가을 해가 밤보다도 길다.

 

갔다가 오고, 왔다가 가고,
한간 좁은 방 벽은 두터워,
높은 들창 갓에
하늘은 어린애처럼 찰락어리는 바다.

 

나의 생각고 궁리하던 이것저것을,
다 너의 물결 위에 실어,
구름이 흐르는 곳으로 뛰어볼가!

 

동해바다 가에 작은 촌은,
어머니가 있는 내 고향이고,
한강 물이 숭얼대는
영등포 붉은 언덕은,
목숨을 바쳤던 나의 전장.

 

오늘도 연기는
구름보다 높고,
누구이고 청년이 몇,
너무나 좁은 하늘을
넓은 희망의 눈동자 속 깊이
호수처럼 담으리라.

 

벌리는 팔이 아무리 좁아도,
오오! 하늘보다 너른 나의 바다.

 

 

임화, 〈하늘〉(1936)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에 나오는 임화의 시.

1936년 8월호 〈신인문학〉에 소개되었으며 이 시가 실려있는 시집은 아직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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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궁금했던 시를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에이바 2015-08-20 12:44   좋아요 0 | URL
저도 원문을 보고 즐거웠습니다.^^

2015-08-21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1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1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1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화 시선 : 해협의 로맨티시즘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8
임화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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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화의 시집 제목에서의 〈해협〉은 현해탄을 가리킨다. 보통 대한 해협을 떠올리지만 정확히 그 바다는 아니며, 일본의 큐슈 앞 바다라 한다. 현해탄은 일본식 한자를 독음한 것으로 〈검은 바다〉라는 뜻이다. 임화는 카프와 월북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작품을 모아둔 시집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여느 시들과 달리 임화의 시는 시간을 들여가며 읽었다. 수월하게 읽히지 않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을 그려보니 이런 저런 생각에 복잡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카프 서기장답게 대부분의 시는 사상의 결집이 담겨있다. 아무래도 문학을 사상의 도구로 사용했던 만큼, 저항 문학의 성격을 그의 작품과 분리할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낭만적인 시들도 있다. 함께 실린 임화의 평론은 문학에 있어 로맨티시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문학, 예술에 대한 그의 고민을 보여주는 글이다. 아티초크 시집답게 함께 실린 사진자료, 그림, 동료 문인들에 대한 글은 임화의 생애와 문학 활동을 소개하며 이해를 돕는다. 문학사의 커튼 뒤에 묻혔던 시인을 알게 되는 기쁨이 지극하다. 인상 깊었던 시 중에 현해탄을 보자면 임화는 당시 일본을, 아니 일본을 배워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단 모양이다. 식민지 청년이 적국으로부터 근대 문화를 배워 조국을 일으키는 열정은 예로부터 파고로 유명한 현해탄에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워 어떤 노래를 함께 추천할까 고민하다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를 보고 떠올린 엔카를 함께 소개한다. 임화가 살았던 조선의 치열함, 그 속의 낭만을 떠올리기 위한 도구를 일본어와 멜로디로 선택하는게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와도 어울리기에..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중략)


아무렇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 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나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현해탄] 중에서

 

주리라! 죽음의 악령이여! 네 탐내는 모든 것을 . . .
가을의 산야가 네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눈 속 깊이 내어 맡기듯 . . .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중에서

 

나는
시꺼먼
갈빗대 속에
굼틀거리는
밤의 그
대담한 의지를
한량없이
사랑한다


(중략)


나는

태양과 더불어
별들을
낮과 더불어
밤 밤을
사랑하고
한밤중
죽어가는
낡은 세계를 위하여
미칠 듯
조종을
난타한다


역시 나는
밤의 시인이다


[밤의 찬가] 중에서

 

나는 영원히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독자로부터 기억되고 애호될 조선문학을 위하여, 생생한 낭만주의를 가져 자기를 반성할 것을 성실한 작가들에게 제안한다.

 

평론 [위대한 낭만적 정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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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작가의 ‘그 여자네 집’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임화의 시 ‘하늘’의 뒷부분을 들려줍니다. 혹시 ‘하늘’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습니까? 사실 이 시의 전문을 보고 싶어요.

에이바 2015-08-18 19:30   좋아요 0 | URL
하늘은 실려있지 않아 따로 페이퍼에 올렸어요.. cyrus님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저도 생각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