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동안 아티초크에서 나온 『닥터 글라스』를 읽었다. 리뷰를 쓰려고 한 번 더 보고 있는 중인데 음악을 함께 듣고 있다. 알라딘에는 아직 등록되지 않았고, 타 사이트엔 예약구매 가능한 베르트랑 샤마유의 라벨 전집이다. 조금 소개해보자면, 프랑스 툴루즈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는 조성진의 객석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해리슨 패럿이 월드 매니지먼트, 프랑스는 솔레아에서 맡고 있다. 툴루즈 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15세에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 입학, 장-프랑수아 에세를 사사한다. 이후 런던에서 마리아 쿠르시오를 사사했으며 머레이 퍼라이아, 레온 플레이셔,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알도 치콜리니같은 거장들에게서 조언을 받았다. 2001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 4위에 입상한 후 독주회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2015년 프랑스 예술문화공로 훈장인 슈발리에를 받았다. (위키 참고)


앨범을 여는 첫번째 곡인 〈Jeux d'eau(물의 유희, 물의 희롱 혹은 물의 장난) 은 샤마유가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했을 때 들려주었다. 툴루즈 음악원 시절인 여덟살이나 아홉살때쯤, 자신보다 진도가 앞선 친구가 보여준 악보가 이 작품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음표의 배열이랄까, 이러한 악보를 본 적이 없어 음악이 너무도 궁금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결국 그 자신이 녹음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http://www.franceinter.fr/player/reecouter?play=1218635


-3분 34초 물의 유희. 앨범 수록

-26분 21초 밤의 가스파르, 1곡 옹딘(물의 요정). 앨범 수록


http://culturebox.francetvinfo.fr/musique/musique-classique/interview-le-pianiste-bertrand-chamayou-raconte-maurice-ravel-en-huit-mots-cle-233661


인터뷰)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가 얘기하는 8개 키워드의 모리스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앨범 수록




거울 모음곡 1번, 밤나방들. 앨범 수록 (프랑스 뮈지크 출연 영상)




거울 모음곡 4번,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 앨범 수록




-영어 자막 있음


샤마유가 툴루즈의 생피에르 데 퀴진느 오디토리엄에서의 녹음하는 모습을 담은 앨범 홍보 영상. 라벨의 음악이 자신에게 얼마나 친숙한지,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한다. 오디토리엄에 대해 조금 찾아보다 말았는데 툴루즈 지방 음악원 사이트 내에 소개되어 있다. 고향에서 라벨 음악 녹음이라 그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앨범,


일텐데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았군요... 그래서


https://itunes.apple.com/gb/album/ravel-complete-works-for-solo/id1068269518?app=itunes




아르헤리치 연주도 좋다.



+) 2월 2일 추가, 알라딘에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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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25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세요.^^

에이바 2016-01-25 19:14   좋아요 1 | URL
날이 많이 찬데, 서니데이님도 따스한 저녁 드세요 ^^
 

신간 목록을 보다가 보고 만 것입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3부 출간예정을! 제목을! 

원제는 『Fortune's Favorites』입니다. 6월 출간 예정이니 올 여름도 로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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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1-2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인자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풀잎은 조금 처지네요 ^^

에이바 2016-01-20 21:3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는데ㅋㅋ 확실히 일인자에서처럼 가슴 졸이게 하는 그런게 부족해요. 3권 읽다 말았는데 다시 펼쳐야겠어요! 포르투나! 카이사르를 위하여!

살리미 2016-01-2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학!! 여름이 오기전에 얼른 시작해야겠어요!! ㅋㅋㅋ

에이바 2016-01-20 22:12   좋아요 0 | URL
로마는 쉴 틈을 안 주는 거죠! ㅎㅎㅎ

아말 2016-01-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ㅎㅎ

에이바 2016-01-21 14:33   좋아요 0 | URL
로마로 대동단결해요! ^^

서니데이 2016-01-2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에이바 2016-01-21 20:1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저녁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6-01-2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에이바 2016-01-22 22:43   좋아요 1 | URL
주말의 시작이네요.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요^^
 

는 장바구니를 비우기 위해서이다. 서재 긴축에 들어가면서 책꽂이를 늘리기보다, 책을 정리하고 있다. 서재 내 질량 보존의 법칙이랄까. 디지털 서재도 마찬가지로 정리하고 싶어졌기에 북플의 [읽은 책]에는 리뷰를 쓴 책만 등록되어 있다. 읽은 책 기록을 몽땅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 해 결산 페이퍼를 쓰면서 벌어졌다. 어떤 책을 보았는지 따로 메모해두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책이 많았다! 머리가 좀 큰 이후로 작년만큼 독서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산 적도 없었는데 아쉽다. 그래서 올해는 [읽은 책] 기능을 사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는데 어떻게 될지… 하여튼 이 페이퍼를 쓰는 이유는 장바구니를 비우기 위해서이다. 보관함이나 리스트를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리스트의 경우는 목록이 길어지니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보관함은 대체로 관심 신간을 매달 업데이트하는데 사용하므로 장바구니만 넘치는 것이다. 아무튼 이쯤에서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해서 독서를 미루게 되니, 왜 읽고 싶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하니까…


 


 




『피츠제럴드 단편선 1』은 이웃 두 분의 추천 덕에 꽤 오랫동안 장바구니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1편은 김욱동, 2편은 한은경 역이다. 1편에는 추천받은 「겨울 꿈」과 「컷글라스 그릇」이 실려 있는데, 특히 「겨울 꿈」은 개츠비 러브 스토리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A님의 코멘트와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문학동네 진선주 역, 「죽은 이들」)이 떠오른다는 ㄷ님의 코멘트 덕에 궁금한 작품이다. 예전에 문학동네 판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번역이 좋아서, 진 선생님의 다른 번역이 언제쯤 나올까 문의한 적이 있었다. 어디서 보기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작업 중이시라 했는데 답변은 시일 내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열린책들 성은애 역으로 보시길…






그건 그렇고 단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아직 단편의 참맛을 잘 모른다. 독서력이 짧아서일까? 그나마 즐겁게 읽었던 중·단편 중 떠오르는 것은 러브크래프트의 호러문학이라던가, 비정함이 느껴지는 모파상의 작품 정도가 있다. 카버의 『대성당』도 재간될 때 예약구매를 해 읽었는데 나쁘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좋은 편에 가까웠지만 추천하기엔 애매한 감상…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둘 있는데, 「신경써서」의 도입 부분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장면이다.


 

「신경써서」는 남자의 귀가 잘 안 들리는데 알고보니 귀지가 가득 해서 뭐 이런 얘기다. 이 남자의 거처에 가려면 할머니가 사는 이웃집을 지나야 하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살아 계신지 잘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남자는 거실을 들여다보다 할머니의 헛기침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기고 다음날에도 할머니가 팬지에 물주는 것을 보며 생존을 확인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이를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지는 부모가 나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찾지 않아 빵집에서 전화가 여러 번 오는데,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전화, 바로 이 빵집에서 나눠 준 온기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왠지 지금 다시 『대성당』을 읽으면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리란 예감이 든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대학에서 레포트를 제출할 때 『시지프 신화』를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어렴풋한 기억뿐이다. 최근에 『단두대에 대한 성찰』을 추천하는 글을 읽고 카뮈 전집 목록을 살펴보다 세 권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단두대에 대한 성찰』 같은 경우는 사형은 합법적인 살인이며, 카뮈가 왜 이 제도에 반대하는지 어린 시절 일화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지라 기억에 오래 남은 듯하다. 내 생각에,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정의의 사람들·계엄령』 모두 지금 이 시기에 읽으면 좋을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은 카뮈의 대표작이니 설명은 생략하고, 『정의의 사람들·계엄령』는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는 희곡이다. 테러 행위가 그 동기에 의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카뮈의 주장을 엿볼 수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클래식을 듣고 공부하는데 대체로 피아노에 관심이 치우쳐 있다. 다른 악기도 배웠지만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게 피아노이고, 이 음악을 듣기 시작한 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EBS에서 방영했던 음악기행 시리즈를 보았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 박종화(서울대 교수)와 조재혁(당시 성신여대 교수)이 등장하여 진행한다. 익히 알아온 내용들을 화면으로 보는 느낌에 더해, 대가들의 흔적에 반응하는 두 덕후들(...)의 기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양음악기행 6부작, EBS 음악기행 6부작 총 12편이 있다.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워낙 콘텐츠가 좋아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있는데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 엄청 어렵다는 것이다. 슈베르트에게 연주해 달라고 했더니 ‘악마에게나 쳐 달라고 해!’라고 했다나… 슈베르트가 악기를 잘 다룬 작곡가가 아니었기에 그런 난이도의, 하지만 몹시 아름다운 작품들이 나올 수 있던 것이라고 한다. 놀랍다. 아무튼 이 작곡가를 설명하려면 리트를 제외할 수 없는데, 12월부터 눈독들이고 있지만 도무지 도전할 수가 없는 『리트, 독일 예술 가곡』이 장바구니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있다. 리트를 상징하는 성악인, 디스카우가 쓴 글이고 뮐러의 시를 딴 《겨울 나그네》 가사집과 음반도 같이 있어서 1석 2조일 작품이다.






켐프와 브렌델이 연주한 슈베르트 후기 피아노 소나타(D.958, 959, 960)를 듣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렵다! 좋은데 어려워! 『더 클래식 둘』에서 읽었던가? 알프레드 브렌델이 은퇴할 때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다고 한다. 연주회의 수준을 더 지속할 수 없어서라는 뉘앙스였는데, 자신의 은퇴 시기를 스스로 정하고 물러난 거장… 그 브렌델의 음악 에세이가 『피아노를 듣는 시간』인데 원제를 보면 『피아니스트의 A부터 Z까지: 피아노 애호가를 위한 책』이다. 목차를 보면 진짜 A부터 Z까지의 키워드로 정리되어 있다. 손열음의 책에서도 피아니스트의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 참 좋았기 때문에 이 책을 볼 날이 기대된다. 엘리제 마흐의 책도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대한다. 리뷰는 따로 안 보이고 클래식 동호회의 추천글만 남아 있다.






러셀 셔먼의 『피아노 이야기』.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석좌 교수인 셔먼은 피아니스트 변화경 교수의 스승이자 남편이기도 하며, 백혜선과 박종화 역시 셔먼을 사사했다. 품절이라 아쉽지만 도서관에 있으니까… 로맹 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는 A님 서재에서 알게 되었다.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었으나, 이휘영 교수 역의 2005년 판이 있고 2007년 범우사에서 나온 버전이 있다. 한국어 제목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책이다. 프랑스인이 바라본 독일의 대가라… 어떨까? 다큐 보니까 베토벤이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베토벤 기념관도 많던데 말이다. 베토벤 삶의 원동력은 단연코 사랑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은 파리의 피아노 공방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되살리는 한 중년의 에세이이다. 아마도, 『투스카니의 태양』같은 감동이 있지 않을까 한다.



페이퍼 끝!




 




(그 외 페이퍼에서 언급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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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2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성당 어제 중고 구매해서 받았어요 :-)
그리고 페이퍼 활용 좋네요~

에이바 2016-01-20 21: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불호보다 호가 더 많아서 대성당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초딩님도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

살리미 2016-01-2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편읽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서 혼자 고민중이었는데 에이바님 글 읽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어요. 대성당도 하도 좋다길래 읽어봤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만 읽고 덮었어요. 아마 그땐 좀 쫓기듯 독서를 해서 그것만 보고 휙~ 덮어버린것 같은데... 저도 기회가 닿으면 다시 잘~~ 음미해봐야겠어요.

에이바 2016-01-20 22:14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도 비슷한 감상이셨네요. 단편만의 매력을 아직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장편은 서사를 밀고나가는 힘이 있다보니 독자도 푹 빠지기가 좋은데 단편은 그렇지 않아서... 그래도 읽다보면 나아지겠죠? ㅎㅎ

붉은돼지 2016-01-2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편애하는 레이먼드 카바의 <대성당>은 저는 잘 읽히지 않더라구요....읽다가 중도 포기했어요..아마 제 취향이 아닌가봐요 ㅜ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은 에이바님 페이퍼를 보니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기까진 읽은 모양이에요..

에이바 2016-01-21 14:32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단편집은 중반까진 괜찮은데 몇 장 안 남기고 읽기를 중단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두 편이나 기억에 남은 걸 보면 괜찮게 읽은 모양이에요. 저 역시 그토록 사랑받는 매력을 아직 깨닫진 못했지만 파리 리뷰 인터뷰 보니까 카버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더라고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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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_14쪽


벨라루스의 언론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만난 대조국전쟁 참전 ‘여성’ 용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라는 말에 대체로 고개를 저었고, 그들이 입을 여는 것은 ‘여성 전우들의 모임’에서 잠깐 눈물을 보인 후였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위대한 용사들이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이야기에 남자들은 ‘여자들이 꾸며낸 얘기’라고 했다. 거짓말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쟁에서 연애질이나 했던 여자들’이라며 손가락질 했다. 참전용사의 귀환에, 어머니는 집을 나가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네가 남자들이랑 있던 것을 아는데 동생들은 시집가야하지 않느냐고. 누이라 부르며 전우애를 키웠던 동료마저도 등을 돌렸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세운 공을 여자와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참전했던 ‘여성’은 두 개의 인생을 산다. 남자의 인생과 여자의 인생. 소녀 저격병들의 활약으로, 독일 측에서 퍼뜨린 ‘소련여자는 간성인(인터섹슈얼)’이라는 선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남자들이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고 주어지는 보상을 누릴 때, 여자들은 조용히 앞치마를 메고 부엌에 서야 했다. 참전 사실을 숨겨야 했다. 아무도 그들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순결했음을 아는 전우들마저도.


소녀 병사들은 순결하고 무지하다. 전쟁에서 시작한 월경에, 자신이 부상당했다고 생각할 정도다. 나이를 속이거나 무작정 부대에 숨어든 여성들은 얇은 사라사천으로 대충 옷을 지어 입었다. 혹한 속 돌무더기를 지나다 찢어진 옷, 드러난 피부는 화상과 동상에 온통 상처였지만 제 몸무게의 두 배는 나가는 병사들을 들쳐 업고 포탄 사이를 기어 다녔다. 전쟁 막바지에야 여성용 팬티가 지급되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고 교육받았기에, 어머니 조국에 대한 사랑에 참전한 여성들. 그들은 군인이 되기 위해 제거한 여성성을,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입어야 했다. 갓난아이의 몸에 소금을 문지르고 마늘을 포대기에 넣어 발진을 일으켜 티푸스라며, 마을을 오간 빨치산 엄마도. 남성들의 구애에 응할 수 없는 노파의 시선을 가진 젊은 여인도. 당에서 내세우는 ‘조국의 영웅’이 되기 위해 진짜 이야기는 숨겨야 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간호병, 제빵병, 낙하산부대원, 전투비행사, 그리고 자동소총부대원으로. 또 의무병으로 세탁병으로 기계수리공으로도 있었다. 치열한 전선에서도, 전선이 이동하면 따라가는 제2전선에서도 임무를 수행했다. 여성이기에 더 끔찍했던 독일군의 고문들, 누이처럼 대우했던 병사들만 있던 것이 아니었던 부대들, 살기 위해 상관의 여자가 되어야 했던 일들… 영예롭지 못한 모든 이야기들은 침묵 속에 묻혔다.


스베틀라나가 되살려낸 다수의 목소리들은 전쟁 속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에 감사하고, 작은 강아지의 존재에 까르르 웃고, 총부리에 제비꽃을 매달고 바느질을 했던 여성들. 전쟁 또한 평범한 삶의 일부였기에 할 수 있는 한 깨끗이 씻고,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사랑을 했다. 죽음을 묘사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바로 여성이었다.


전후 그들을 맞이한 혹독한 고향에서도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남은 이들. 그들에게 남은 상흔은 자식들에게 이어졌다. 전장의 논리와 사회의 논리는 달랐기 때문에… 아픈 기억을 되살려 진실을 소리 높이는 이들은 말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선전용 영웅’이 모두가 아니라고. 진짜 전쟁은 이러했노라고, 전쟁의 과정과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다른 시각에서 보라고 말이다.


전쟁에서 남성 못지않게 공을 세운 여성, ‘용맹한 병사’ 메달을 받고, 자랑스러운 훈장을 가슴에 매단 여성, 조국을 빛낸 그런 영웅만을 바라고 기대하던… 이면을 생각지 못한, 그토록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신을 반성하게끔 하는 위대한 작업의 결과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노고,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들려준 노장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전하고 싶다.


-여기서 언급하는 여성성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전쟁 전, 주어졌던 일상에의 회복과 정체성 유지에 더 기울어져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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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에이바 2016-01-18 18:39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

AgalmA 2017-04-18 0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있는데 스베틀라나와 에이바님 글 목소리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용함 속에 호소어림... :)
 

다음달 신간평가단 도서로 조이스 캐럴 오츠의 『그들』과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이 선정되었다. 선정될 것은 예상한 바였고, 『카인』은 나도 5위에 올렸던 소설이긴 하지만 조금 씁쓸하다. 내가 밀었던 소설들은 그냥 사서 보고, 선정 도서도 읽고 하라는 뜻인가 보다.





신간 목록을 살펴보고 있는데 『마르타』가 눈에 띈다. 1873년 출간된 폴란드 소설로, 1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요즘 쇼팽을 열심히 듣다보니 뭐든 반갑다.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여성과 교육, 사회적 불평등을 다루는 작품. "이 세상에서 여자란 무엇인지 너 자신에게 물어본 적 있어?"


옮긴이 소개를 보니, 폴란드어-에스페란토어-한국어 번역일 가능성이 높겠다. 아직 작품을 보기 전이고, 여전히 중역인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주제 사라마구의 작품들도 중역이지 않은가. 아닌가?) 조금은 기대된다. 유럽인들 중 에스페란토어 사용자가 많기도 하니... 그건 그렇고 표지에 마젠타 폰트 이것이 최선이었나요? ㅠㅠ





이탈로 칼비노, 움베르토 에코,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번역했던 이현경의 역서가 두 권 출간되었다. 타부키의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는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실제 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부패한 공권력을 비판하는 범죄소설이라 한다. 단눈치오의 『쾌락』은 내가 좋아하는 을유세계문학선이라 더 반갑다. 직전에 나온 작품은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 『안전 통행증·사람들과 상황』이었다. 이 작품은 추천글이 대단하다.



I. N. 수히흐 (문학 박사,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대학 교수, 상트 페테르부르크 작가 동맹 일원)

: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대개 시인이면서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산문 작품에는 『닥터 지바고』만 있는 게 아니다. 『안전 통행증』(1931)과 『사람들과 상황』(1957)은 그의 창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두 작품은 초기 파스테르나크의 창작적 전기(傳記)로, 1900~1920년대 러시아의 사회적·문학적 삶에 대한 폭넓은 그림을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마야콥스키에 대한 묘사, 마야콥스키와 파스테르나크의 관계, 그리고 러시아 문학 전개에서 마야콥스키의 위상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역자 임혜영의 번역 출간을 모든 점에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이 번역은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러시아 작가 중 하나이자 위대한 시인에 대한 한국 독자의 지식을 확장시켜 줄 것이다.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이 번역 텍스트에 실릴, 수많은 일상적 문학적 현실을 설명해 주는 주석과, 나아가 파스테르나크와 그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해설 부분은 틀림없이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아니 근데 줄거리를 보니 파스테르나크가 스크랴빈을 흠모했었다고? 아 근데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 파스테르나크에 대해 찾아봤었는데 그땐 클래식에 관심이 없었던 때라…





마야콥스키는 뭔가 익숙한 이름인데 생각해보니… 석영중 교수의 강의를 감명깊게 보고 역서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봤던 작품이었다. 창비에서 나온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에는 마야꼽스키로 실렸다. 이상하게 마야콥스키나 마야코프스키보다 마야꼽스키라고 하면 더 고풍스런 맛이다. 뭔가 러시아 느낌이 물씬 난다… 그리고 책세상에서 나온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제목 예술… 3장 선언문 중 하나인 듯 하다.


다시 신간 얘기로 돌아오자면,


단눈치오도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 찾아보니 피우메 점령했던 바로 그 사람…



공허한 기존 가치와 파멸로 치닫는 현실 세계의 불화를

그린 이탈리아 유미주의 문학의 걸작


원전 완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작품은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 등에 큰 영향을 준 탐미주의 문학의 백미다. 단눈치오는 『쾌락』과 『죄 없는 자(L’innocente)』, 『죽음의 승리(Il trionfo della morte)』 자신의 세 작품에 “장미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3부작임을 밝혔다.  (중략)


단눈치오로 인해 이탈리아 문학계에 처음으로 데카당스한 인물이 등장한다. 단눈치오는 주인공 안드레아 스페렐리가 겪는 연애 사건들을 통해 기존 가치의 공허함과 쾌락주의에 병들어 위기에 빠진 귀족 세계와 파멸로 치닫는 현실 세계를 보여 준다. 안드레아는 귀족이며 유미주의자이다. 단눈치오는 안드레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동시에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안드레아는 단눈치오이자 단눈치오가 꿈꾸는 존재이다. (중략)





아티초크 픽션 1권은 스웨덴 문학이다. 알마르 쇠데르베리의 『닥터 글라스』. 감각적인 표지는 여전하며, 수전 손택과 마거릿 애트우드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낙태와 안락사를 옹호하며 죽을 권리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비친 소설'이 190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네… 놀랍습니다… 역자는 믿고 보는 공진호, 쇠데르베리의 작품은 (출판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두 권 더 출간예정이다. 더 있을 수도 있고


『빨강의 자서전』과 『알리와 니노』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책소개는 조금 지쳐서 생략한다.


+)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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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눈치오의 《죽음의 승리》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이 단눈치오의 대표작으로 소개되더라고요.

에이바 2016-01-18 16:24   좋아요 0 | URL
쾌락, 죄없는 자, 죽음의 승리가 장미소설 3부작이라는군요. 한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