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장바구니를 비우기 위해서이다. 서재 긴축에 들어가면서 책꽂이를 늘리기보다, 책을 정리하고 있다. 서재 내 질량 보존의 법칙이랄까. 디지털 서재도 마찬가지로 정리하고 싶어졌기에 북플의 [읽은 책]에는 리뷰를 쓴 책만 등록되어 있다. 읽은 책 기록을 몽땅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 해 결산 페이퍼를 쓰면서 벌어졌다. 어떤 책을 보았는지 따로 메모해두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책이 많았다! 머리가 좀 큰 이후로 작년만큼 독서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산 적도 없었는데 아쉽다. 그래서 올해는 [읽은 책] 기능을 사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는데 어떻게 될지… 하여튼 이 페이퍼를 쓰는 이유는 장바구니를 비우기 위해서이다. 보관함이나 리스트를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리스트의 경우는 목록이 길어지니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보관함은 대체로 관심 신간을 매달 업데이트하는데 사용하므로 장바구니만 넘치는 것이다. 아무튼 이쯤에서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해서 독서를 미루게 되니, 왜 읽고 싶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하니까…


 


 




『피츠제럴드 단편선 1』은 이웃 두 분의 추천 덕에 꽤 오랫동안 장바구니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1편은 김욱동, 2편은 한은경 역이다. 1편에는 추천받은 「겨울 꿈」과 「컷글라스 그릇」이 실려 있는데, 특히 「겨울 꿈」은 개츠비 러브 스토리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A님의 코멘트와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문학동네 진선주 역, 「죽은 이들」)이 떠오른다는 ㄷ님의 코멘트 덕에 궁금한 작품이다. 예전에 문학동네 판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번역이 좋아서, 진 선생님의 다른 번역이 언제쯤 나올까 문의한 적이 있었다. 어디서 보기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작업 중이시라 했는데 답변은 시일 내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열린책들 성은애 역으로 보시길…






그건 그렇고 단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아직 단편의 참맛을 잘 모른다. 독서력이 짧아서일까? 그나마 즐겁게 읽었던 중·단편 중 떠오르는 것은 러브크래프트의 호러문학이라던가, 비정함이 느껴지는 모파상의 작품 정도가 있다. 카버의 『대성당』도 재간될 때 예약구매를 해 읽었는데 나쁘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좋은 편에 가까웠지만 추천하기엔 애매한 감상…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둘 있는데, 「신경써서」의 도입 부분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장면이다.


 

「신경써서」는 남자의 귀가 잘 안 들리는데 알고보니 귀지가 가득 해서 뭐 이런 얘기다. 이 남자의 거처에 가려면 할머니가 사는 이웃집을 지나야 하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살아 계신지 잘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남자는 거실을 들여다보다 할머니의 헛기침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기고 다음날에도 할머니가 팬지에 물주는 것을 보며 생존을 확인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아이를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지는 부모가 나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찾지 않아 빵집에서 전화가 여러 번 오는데,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전화, 바로 이 빵집에서 나눠 준 온기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왠지 지금 다시 『대성당』을 읽으면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리란 예감이 든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대학에서 레포트를 제출할 때 『시지프 신화』를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어렴풋한 기억뿐이다. 최근에 『단두대에 대한 성찰』을 추천하는 글을 읽고 카뮈 전집 목록을 살펴보다 세 권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단두대에 대한 성찰』 같은 경우는 사형은 합법적인 살인이며, 카뮈가 왜 이 제도에 반대하는지 어린 시절 일화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지라 기억에 오래 남은 듯하다. 내 생각에,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정의의 사람들·계엄령』 모두 지금 이 시기에 읽으면 좋을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은 카뮈의 대표작이니 설명은 생략하고, 『정의의 사람들·계엄령』는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는 희곡이다. 테러 행위가 그 동기에 의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카뮈의 주장을 엿볼 수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클래식을 듣고 공부하는데 대체로 피아노에 관심이 치우쳐 있다. 다른 악기도 배웠지만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게 피아노이고, 이 음악을 듣기 시작한 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EBS에서 방영했던 음악기행 시리즈를 보았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 박종화(서울대 교수)와 조재혁(당시 성신여대 교수)이 등장하여 진행한다. 익히 알아온 내용들을 화면으로 보는 느낌에 더해, 대가들의 흔적에 반응하는 두 덕후들(...)의 기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양음악기행 6부작, EBS 음악기행 6부작 총 12편이 있다.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워낙 콘텐츠가 좋아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있는데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이 엄청 어렵다는 것이다. 슈베르트에게 연주해 달라고 했더니 ‘악마에게나 쳐 달라고 해!’라고 했다나… 슈베르트가 악기를 잘 다룬 작곡가가 아니었기에 그런 난이도의, 하지만 몹시 아름다운 작품들이 나올 수 있던 것이라고 한다. 놀랍다. 아무튼 이 작곡가를 설명하려면 리트를 제외할 수 없는데, 12월부터 눈독들이고 있지만 도무지 도전할 수가 없는 『리트, 독일 예술 가곡』이 장바구니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있다. 리트를 상징하는 성악인, 디스카우가 쓴 글이고 뮐러의 시를 딴 《겨울 나그네》 가사집과 음반도 같이 있어서 1석 2조일 작품이다.






켐프와 브렌델이 연주한 슈베르트 후기 피아노 소나타(D.958, 959, 960)를 듣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렵다! 좋은데 어려워! 『더 클래식 둘』에서 읽었던가? 알프레드 브렌델이 은퇴할 때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다고 한다. 연주회의 수준을 더 지속할 수 없어서라는 뉘앙스였는데, 자신의 은퇴 시기를 스스로 정하고 물러난 거장… 그 브렌델의 음악 에세이가 『피아노를 듣는 시간』인데 원제를 보면 『피아니스트의 A부터 Z까지: 피아노 애호가를 위한 책』이다. 목차를 보면 진짜 A부터 Z까지의 키워드로 정리되어 있다. 손열음의 책에서도 피아니스트의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 참 좋았기 때문에 이 책을 볼 날이 기대된다. 엘리제 마흐의 책도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대한다. 리뷰는 따로 안 보이고 클래식 동호회의 추천글만 남아 있다.






러셀 셔먼의 『피아노 이야기』.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석좌 교수인 셔먼은 피아니스트 변화경 교수의 스승이자 남편이기도 하며, 백혜선과 박종화 역시 셔먼을 사사했다. 품절이라 아쉽지만 도서관에 있으니까… 로맹 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는 A님 서재에서 알게 되었다.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었으나, 이휘영 교수 역의 2005년 판이 있고 2007년 범우사에서 나온 버전이 있다. 한국어 제목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책이다. 프랑스인이 바라본 독일의 대가라… 어떨까? 다큐 보니까 베토벤이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베토벤 기념관도 많던데 말이다. 베토벤 삶의 원동력은 단연코 사랑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은 파리의 피아노 공방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되살리는 한 중년의 에세이이다. 아마도, 『투스카니의 태양』같은 감동이 있지 않을까 한다.



페이퍼 끝!




 




(그 외 페이퍼에서 언급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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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2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성당 어제 중고 구매해서 받았어요 :-)
그리고 페이퍼 활용 좋네요~

에이바 2016-01-20 21: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불호보다 호가 더 많아서 대성당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초딩님도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

살리미 2016-01-2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편읽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서 혼자 고민중이었는데 에이바님 글 읽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어요. 대성당도 하도 좋다길래 읽어봤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만 읽고 덮었어요. 아마 그땐 좀 쫓기듯 독서를 해서 그것만 보고 휙~ 덮어버린것 같은데... 저도 기회가 닿으면 다시 잘~~ 음미해봐야겠어요.

에이바 2016-01-20 22:14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도 비슷한 감상이셨네요. 단편만의 매력을 아직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장편은 서사를 밀고나가는 힘이 있다보니 독자도 푹 빠지기가 좋은데 단편은 그렇지 않아서... 그래도 읽다보면 나아지겠죠? ㅎㅎ

붉은돼지 2016-01-2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편애하는 레이먼드 카바의 <대성당>은 저는 잘 읽히지 않더라구요....읽다가 중도 포기했어요..아마 제 취향이 아닌가봐요 ㅜ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은 에이바님 페이퍼를 보니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기까진 읽은 모양이에요..

에이바 2016-01-21 14:32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단편집은 중반까진 괜찮은데 몇 장 안 남기고 읽기를 중단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두 편이나 기억에 남은 걸 보면 괜찮게 읽은 모양이에요. 저 역시 그토록 사랑받는 매력을 아직 깨닫진 못했지만 파리 리뷰 인터뷰 보니까 카버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