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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꿈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현재는 단 한 번만 존재한다. 그것을 그는 알지 못했었다. 그것이 과거를 불러일으키려는 마술, 즉 가우나의 미약한 시도가 실패한
이유였다. (318p)
그는 마침내 자신의 운명이 과거의 방향을 되찾았고, 자기 운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냥 그렇게 느꼈다. 또한 그 것이 올바르다고 여겼다. (380p)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이끄는 두 명의 이름을 붙여서 ‘비오르헤스(비오이+보르헤스)’라고 한다는데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알고 있었지만,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름은 저 역시 낯설었어요. 하지만 <영웅들의 꿈>을 읽고 나니,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알 거 같더군요. 저자의
말의 마무리에 그의 이니셜이 ‘A.B.C’가 눈에 들어오더니, 어쩌면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들이 하나씩 더해져 나갔는데요. 시간, 기억, 꿈, 운명, 선택, 사랑, 거짓말, 불행 그리고 영웅으로 이어지더군요. 그리고 계속 그 단어들에서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시간 여행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분명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1927년 그리고 1930년 카니발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웅 신화 속으로 점프하는 기분도 들고, 때로는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희곡이 투영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한 때는 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도시로 성장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영과 쇠퇴를 작품에 그대로 녹여놓은
거 같기도 하고요. 1927년 행렬로 가득하고 축제의 정신으로 고양되었던 카니발이 이제는 ‘시커먼 몰락’으로 물들었던 것처럼 말이죠.
소설을 읽으며 하나씩 더해지던 단어를 나열할 때도 책 제목이기도 한 영웅이 가장 마지막이었는데요. 책을 읽다가도 문득 왜 책 제목이 ‘영웅들의 꿈’인 것일까 의아해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와서 그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소설 속의 영웅들은 자신의 위대한 모험담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웅은 조금은 다른 형태일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죠. 스스로도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약간의 위트를 더해 이 작품을 꼽았다고
하더니,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