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 하염없이 재밌고 쓸데없이 친절한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
정지영 지음 / 더블: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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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소위 글 빨을 받게 해주는 명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을 쓰려면 산책이나 자전거를 탈 것이 아니라 등산을 해야 하나? ^^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다 읽어봤기 때문에, 그 두 가지의 맛을 더한 안나푸르나 여행기를 써보겠다는 작가 정지영의 포부를 보며 기대를 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기대에 한껏 부응하는 트레킹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걸스카웃 활동 이후 등산은 졸업했다고 과감히 선언한 나에게도 트레킹이라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던지 말이다. 마치 그녀의 곁, 비록 제대로 씻지 못해 쿰쿰한 냄새가 날지 몰라도,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첫 번째 포터인 무책임한 빔을 함께 씹기도 하고, 두 번째 포터인 믿음직한 림부를 함께 찬양하고, 쓸모 없이 뷰가 좋은 샤워실과 먹으면 배가 꺼지지 않는 달 밧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공감할 것은 바로 밀크티이다. 이 책에 끌리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은가? <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내가 맛볼 수 없는 그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트레커들은 달짝지근한 밀크티에 중독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데, 물론 이름에서 따온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네팔어로 밀크티를 뜻하는 찌아라고 불러달라고 하겠는가? 그나저나 영국인들의 오랜 논쟁거리라는 밀크티를 만드는 순서가 드디어 정해졌나보다. 2003 6월에 영국 왕립화학협회에서 한 잔의 완벽한 홍차를 만드는 방법을 발표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지 않은 자, 유죄.” 아쉬운대로 동네 산이라도 가서 밀크티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질 기분마저 든다.

또 한가지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은 바로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현재를 잊어가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한의 환경에서 트레킹을 하는 것은 하루를 단순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먹고 자고 걷는 그 순간에 몰입하게 만들어, 그 하루가 끝났을 때 충만감이 가득하게 만들고,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감각을 느껴본 지 너무나 오래된 거 같아서,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절로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거 같다. 책을 읽으며 깔깔거리고 웃을 때도 많았지만, 순간순간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과 배울 수 있는 지혜에 감탄하기도 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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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4-1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푸르나 일주는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는데 하나 님의 글을 읽고 나니까 저의 선입견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글 덕분에 깨달음 하나 얻은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