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통계로 본 강간범: 신화에서 과학으로 ~ 8. 권력과 성폭력


책은 다 읽었지만 아직 페이퍼를 다 쓰지 않아서 결국 2월을 넘겨 버렸다. ㅜㅜ

한번 더 써야하는데..  오늘 중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영화나 문학 또는 매체를 통해 흔히들 떠오르는 강간범에 대한 이미지가 있던가?

사이코패스이거나 뭔가 소심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

당연하게도 브라운밀러는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듯한 이미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허튼소리라고는 없는 FBI통계와 최근 나오기 시작한 엄밀한 사회학 연구 결과를 보면, 전형적인 미국의 강간범은 소심함이나 성적 좌절, 지배 성향을 보이는 부인과 어머니 때문에 시달리는 괴짜 정신병자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가족 배경이 어떻든 사이코 강간범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는 사이코 살인범이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게 예외적인 존재이지 결코 강간범의 전형이 아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강간범은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로 작정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젊은이일 뿐이다.

이처럼 강간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원인에는 프로이트 심리학이 남긴 유산이 큰 몫을 차지 한다.

(p. 271)

 

프로이트 학파가 왜 강간을 다루지 않았는지는 흥미로운 문제이다. 남근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성향을 비롯해 이 분과가 지닌 남성 편향이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특이 사례 분석에 기반을 둔 직관적 접근법을 사용한 탓에 객관적 표본 추출 방식은 수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프로이트 학파가 결정적으로 실패한 지점은 도덕적 판단을 엄격하게 거부한 데 있다. 정신분석학의 주요목표는 그들이 선호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소위 '일탈 성행위'를 '이해'하는 것이니 비난하는 것은 아니었다.

(p. 272)


프로이트 학파 범죄학자들은 서로 옥신각신하면서도 대체로 강간범을 본질상 '유아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충동'의 희생자로, 자기 어머니와 성교하려는 '자연적'충동이 좌절된 결과 생겨난 인물로 정의한다. 이내 강간 행위는 그런 그가 느끼는 '무력감'때문에 생긴 '신경증적 과잉 반응'이 된다. 프로이트 학파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으로 요약해 보면 그는 '성적 사이코패스'다. 카프먼은 강간범이란 "질병에 시달리는 희생자로서 그가 저지른 행위에 희생된 사람보다 더 고통받는다"고 썼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 학파가 가장 선호하는 강간범의 이미지이자 동시에 내가 수정하고자 하는 신화이다. 프로이트 학파는 강간범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p. 274)


 20세기의 사상사에서 뺴놓을 수 없는 프로이트이지만 프로이트가 물려준 잘못된 유산은 아직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강간 사건은 꼭 낮선 사람이 가해자는 아니며 이웃이나 친족같이 아는 사람일 경우도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프로이트 학파는 강간범을 정신적 결함을 통해 나타난 일반적인 상태가 아닌 병적인 상태인 특별한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이 것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거나 치료를 받으면 강간 사건이 줄어들겠구나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그리고 이런 식이면 가해자에 어느정도 면죄부를 줄 측면도 다분히 있다) 현실은 강간범이 어떤 프로필화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극적인 인물인 듯 보이지만, 윈스턴 모즐리와 앨버트 드살보는 사실 강간살인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온순한 태도에, 억압되어 있으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발기 불능의 동성애자라는 정신의학이 구성한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고의로 신체적 저항이 적은 대상인 여성의 몸을 골라 세상을 향해 품은 극심한 혐오를 행동으로 표출한 남성으로서, 잔인하고 폭력에 기대는 유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p.315) 

 

막상 알고 보면 강간범의 범죄 방식에는 마법도, 신비도, 로빈 후드같은 신출귀몰도 없다. 강간이란 풋내기들이 자기 사촌이나 아는 형과 몰려다니다가 저지르는 따분하고 멍청하며 못난 행동이지, 멋지고 재치 있으며, 부도덕하고 영웅적이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한량이나 '정상적인' 성욕 발산 수단을 빼앗긴 소심한 영혼, 통제할 수 없는 성욕에 사로잡힌 초인이 저지르는 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경솔하고 예측 가능하며 둔감하고 폭력 충동에 휘둘리는 이 어린 남성들의 역사적 임무가 짊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힘으로 영구화 한다는 임무이다.

(p. 319) 


 어떤 거창한 정신분석 이론을 말할 필요도 없이 강간범들은 대게 혐오을 행동으로 표출하고자 약한 상대(특히 여성)을 상대로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자이다. 게다가 앞 쪽을 읽으면서 보았듯이 역사적의 발견을 통해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남성다운 호기거나 지배력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오늘날의 남성에게도 무의식 속에 자리잡혀 있는 것도 있다.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자 오늘날도 해결해야될 숙제다. 7장에서는 민감한 문제인 이 인종 간 강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7장 앞쪽에 썼듯, 백인 여성인 저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접근할 길은 없으며 객관적인 태도를 가장할 방법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 인종 간 강간이라는 주제는 미국에서 정치적인 것과 결합이되면서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미국 공산당은 필요한 경우(피해자가 흑인 - 가해자가 백인)에만 집중하였고 백인-백인 간의 강간은 그저 범죄로만 생각했으며 가해자가 흑인이면서 피해자가 백인일 경우는 '국가'가 흑인 남성을 박해하기 위해 허위 고발을 악용했을 뿐 객관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백인 여성또한  백인일 뿐이었지 백인의 권리는 백인 남성들이 독차지 했다. 그들의 소유물이라는 점에서 보호를 받은 것일 뿐 성적으로 백인여성이 독립적인 객체로서 나설때는 백인남성의 신성불가침한 재산권에 직접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성운동이 처음 강간을 페미니스트 주제로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아직 남성 좌파와 동일시 하고 있던 부류의 여성들은 몰이해와 적대로 반응했다.(그들은 그 후로 변화의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인종주의자의 손에 놀아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이유로 범죄자에게 무분별하게 공감할 때 그들의 정서적 반응은 다시 한 번 인종 간 구도에 갇히는 셈이 된다.

(p. 389)


인종 간 강간은 리버럴에게 여전히 커다란 정치적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백인 남성이 '그 범죄'에 과하게 반응해온 긴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많은 백인들은 깊은 죄책감을 품게 되었다.

(……)

1971년 여성운동이 강간을 논하기 시작했을 때 리버럴이 받은 충격은 심대했다. "당신이 왜 검찰 쪽에 서느냐?"며 마치 강간을 문제화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인종주의와 반동의 증거인 것처럼 비난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불신에 찬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그러나 새로운 견해를 유연하게 흡수하는 능력이 없는 리버럴은 리버럴이 아니다.

(p. 390~391)

 

 미국에서 여성문제가 인종 간 정치 구도속으로 갇히듯, 한국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좌파로 부터 출발한 여성운동의 역사는 험난했다. 남성중심의 한국의 진보세력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성찰을 하지 못한 채 60-80년대의 군부 독재를 넘어 90년대를 맞이 했다. 그 결과 젠더 감수성만큼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으면 되냐는등 의 핀잔을 주는 식 말이다. 한편, 18년말부터 경제이슈로 촉발된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중 하나로 지목된 20-30대 남성의 이탈층의 마음을 잡고자 최근에도 리버럴을 자처하는 방송인이나 정치인들은 여성 문제와는 거리를 두거나 오히려 백래시를 하고 있는 상태다.

 

 8장은 강간을 권력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파트다. 강간은 기본적으로 권력의 우위를 통한 힘의 지배를 행사하는 행위다. 노예제 또는 전시 하에서의 강간은 피해자가 바로 잡을 기회조차 없는 환경이다. 한편, 피해자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시야를 왜곡해 권위적인 위계 구조를 제공하는 환경에서 벌어지는 강간도 있다.


데이트 강간을 비롯해 사건 전부터 피해자와 관계가 있던 남성이 저지른 강간에서도 강압적 권위는 피해자가 단호히 저항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사회적 통념상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기대는 행위를 해야한다는 압력이 피해자에게 일종의 '권위'로 작용하는 것이다. 

(…)

공손하고 여성스럽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관습적 제약과 사회적 예의범절 때문에 피해자는 우아하게 참거나 가능한 한 요령껏 빠져나가야만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며, 피해자가 정면으로 맞서면 행동규범이 선을 넘은 것이 된다. 경찰은 "그녀가 나중에 마음을 바꿨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이는 피해자가 데이트 강간을 당했을 때나 지인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오직 사건 발생 후에만 자기통제력을 되찾아 강간당한 현실과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p. 395)

 

 한국에서도 최근 몇년 전부터 데이트 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 경찰도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적인 논의가 되고 있다. 그리고 위의 본문을 보고 당연히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떠올랐다. 이 8장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다. 위 글대로 2018년 한국의 법정에서도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라면 당장 다음날 아침 가해자인 도지사를 경계하고 피해야했는데 피해자가 아침에 수행비서로서 음식점을 찾아보는 행동을 보였다는 이유로 피해자 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 책이 75년에 나온 책인데 나는 지금 75년에 살고 있는 것인가 2019년에 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본문의 내용과 다름없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 다움은 뭘까? 


강압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중에는 경제적, 정서적 강압도 포함되며, 사건 발생 시 피해자로 하여금 저항하기 두려워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건 후에도 피해자가 다른 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권위 있는 인물이 저지르는 강간은 권위를 존중하도록 훈련받아온 피해자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공모자라고 여기기도 한다. 권위 있는 인물은 그가 옳았다는 분위기를 후광처럼 내뿜고 있어서 그 행동에 도전하기 쉽다. 이런 구도에서는 피해자가 오히려 '잘못'한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과연 피해자에게 이것 외에 다른 위치가 가능하긴 한가?

(p. 416~417)


가족 간에 발생하는 아동 성 학대를 은폐하고 그 실제 발생률과 함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성스럽지 못한 침묵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이런 침묵 역시 강간에 대한 남성의 태도를 역사적으로 형성하고 결정해온 성적 사유재산에 관한 가부장제 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가장 원형적인 육체적 재산이라면, 아이들은 남성이 통째로 소유한 부속 재산이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p. 432)


 권력에 의한 강간중엔 가족 간의 강간도 있다. 이 책에서 아버지강간으로 명명하는 이 행위는 겉으로 들어나기 어려우며 사회도 애써 외면하려고 하거나 가족간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부해버린다.


 이 유형을 보고 있으니 몇년 전 나에게 끔찍하게 다가왔던 칼럼이 하나 생각이 났다.

인기 있는 승려의 고민상담류의 칼럼이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상담자는 어릴적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우울증도 가지고 있다. 7년만에 만난 아버지를 만났을때 증오와 불쌍함이 동시에 들기도 했다. 이 상처를 앞으로 만날 남자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고 부모님에게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라는 질문을 햇다.


그 질문에 이 승려는 

 - 지금 중요한 것은 이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책임을 따지는 게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설령 성폭행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은 부모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행위가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 성추행을 당했는지 사랑을 받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몽이 더러워졌다는 생각은 망상이고 악몽이다. 질문자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

'부처님 저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저의 몸과 마음은 깨끗하고 청정합니다.' 아침마다 이렇게 108배를 하면서 기도하세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고 상처를 치유하고 결혼을 생각하는게 좋겠다라고 하였다.


물론 이 것은 일부 요약한 내용이다. 

난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불교는 더더욱이 잘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종교인이라고 해서 이런 식의 해답은 제3자이지만 불쾌하며 무례한 태도라고 본다.

어째서 강간의 피해자가 온전히 짐을 다 짊어가고 오히려 그를 사랑하고 상념을 벗어던지고 없던 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해법에 너무 세속적인 시각을 들이댄건가?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본다. 이런 해답은 오랜 수행을 하고 계시는 종교인에게는 가능할지모르나 일반인에게 이렇게 엄격한(?) 종교적인 해법을 내놓는 건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이런 종교인들 조차 이 책에 나오는 남성중심적인 권위와 강압적인 시선의 범위에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지나치게 과장된 주장일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칼럼이 다시 생각났다는게 마음이 찜찜해졌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02-01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정체중인데 블랙겟타님 리뷰 읽으니 싹 정리가 되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왠지 출판사 같은 멘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자님, 수고 많으셨어요^^

블랙겟타 2019-02-01 12:31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막 신나게 읽을 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체중이라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ㅜㅜ
막 휘갈겨 썼음에도 제 글을 통해 정리가 조금이라도 되신다니 다행이네요. ^^:;;
아직은 머리 속에 있는 것이 글로 표현될 때 정리가 덜 된 느낌이 나는데요.
계속 쓰다보면 더 정리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출판사관계자님,(응?) 아아니.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19-02-01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승려 대답 읽고 딥빡이 오네요.
자기 일 아니라고 멀찍이 떨어져서 개소리 하는것 같은.. 부모님께 감사하라고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요? 전형적인 가해자 마인드네요. 이미 일어나서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일,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을 없는 일 취급하라니... 이야..진짜 승려 하기 쉽네요. 어디 말이라고 함부로... 하아-
그 승려는 남성중심주의에 가족중심주의에 빠져서 세상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주 많이 공부가 필요해 보입니다. 저런 상태로 다른 사람을 상담해준다니, 말도 안돼요.


인종 강간에 그런 내용도 나오잖아요. 강간당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여자들, 그리고 강간당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여자들. 어디서부터 얼마나 어떻게 억눌려왔나 답답하더라고요. 지금이라고 뭐 다를까 싶고요.

읽느라 수고하셨고, 이렇게 정리하느라 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쯤 한 편 더 올린다 하셨으니(응?) 또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2월 도서중 [캘리번과 마녀] 시작했어요. 아직 서문만 ... 시작했습니다. 참고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2-01 12:36   좋아요 0 | URL
좋은 예시를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빻은 사례를 들고와서 죄송해요. ㅜㅜ
이 분은 아직도 고민상담으로 유명하신 승려이기도 하지요...

사실 매 장마다 밑줄긋기 해놓은 곳이 많아서 그걸 중심으로 글을 쓰고 싶다보니 아직 글 쓸 거리가 조금은 남아있거든요.

어쨋든 같이 읽는다고 생각하니 힘겹게 왔긴해도 다 읽을 수 있었네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일부터 바로 읽으시네요. ㅜㅜ 서문이긴 하지만
저도 오늘 책이 올 예정이니까 연휴동안 많이 읽어놔야죠!

카알벨루치 2019-02-01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 설연휴 즐겁고 환한 미소 넘치는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블랙겟타 2019-02-04 00:38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도 설 연휴 잘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공쟝쟝 2019-02-02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니 얼른 8장~ 읽고 싶다~~~ 헝헝!
즐거운 설명절 되세여 ^.^

블랙겟타 2019-02-04 00:40   좋아요 0 | URL
네. 나머지 부분도 글 하나 써야하는데 최소한 설연휴 안에는 쓸려구요.
쟝쟝님도 가열차게 읽고 계시던데 계속 독려해드리겠습니다. ^^
설 연휴 잘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9-02-04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 설연휴 즐겁게 보내고 계신가요. 내일이 설날이라 인사드립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고 편안한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공쟝쟝 2019-03-1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믿고 거르는 법륜 ㅋ 설에 읽던 책 저 방금 끝냈어요~ㅋㅋ 책 정리 해야지 하다가 겟타님 요약글 다시 보러 왔지유~!

블랙겟타 2019-03-14 16:58   좋아요 1 | URL
바로 누군지 아시네요?! ㅎㅎㅎ

와 쟝쟝님,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한번 더 부족한 저의 글을 읽으러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
 















4.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 ~ 5. 미국 역사에 관한 두 가지 연구: 인디언과 노예제


3장의 '전쟁'을 겨우 넘겼더니 다음장도 만만치 않구나..


폭동이나 혁명등의 소규모 분쟁은 남성의 강간 욕망을 배출할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강간 실행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때에 발생한 강간 사례는 선전선동할 때만 이용가치가 있을 뿐이었다. 역사가들은 앞서 말했듯 대개의 강간 기록들을 '일탈'행위 정도로 여기거나 더 심하게는 사후에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포그롬(19~20세기 제정 러시아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시기에는 많은 유대인 여성들이 강간 피해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자를 '자신들의' 영토처럼 여겨온 남자들의 마음속에는 더럽혀진 여자라는 관념이 심리적 지배력을 뿌리 깊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태도는 유대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강간 후 이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p. 188~189)


실망스럽게도 희생양이 된 유대인 여성들에게 랍비들도..남편들도 힘이 되어주질 못했고 오히려 그들은 외면했다.

오랫동안 다른 민족 법 아래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랍비의 법은 강제력이 없었음에도 남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여성의 '더렵혀진' 이미지를 벗어내질 못했고 결국 이 여성들과 이혼한 경우가 많았다.


오래전부터 유대인 여성을 따라다닌 고삐 풀린 듯 음탕하다는 평판은 유대인 여성이 반복해서 집단적으로 강간당해온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유대인 여성이 음탕하다는 평판은 남성의 관점에서 섹스 판타지를 여성에게 투사한 결과 생긴 것이다. 이런 면에서 유대인 여성과 흑인 여성은 공통점을 가진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여성을 따라다니는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평판 역시 유대인 여성처럼 강제로 강간당한 빈도가 굉장히 높았던 역사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p. 189)                                                                                                        


더 나아가 남자들은 비겁했다. 

오래전부터 유대인 여성과 흑인 여성에게 따라붙은 딱지는 음탕하다는 것이었다. 

근거가 있다는 것도 말도 안되겠지만 이는 어떤 근거도 없었다.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적 판타지와 맞물려 지금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 시선인 남성 카르텔의 붕괴를 막기위해 강간 피해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관점의 결과물이었다.


역사의 매 막간마다 테러 작전이나 어떤 민족을 말살하자는 목표가 남성에게 강간 면허를 부여한다. 다른 남성의 소유물을 활발히 파괴하는 행위는 집단이 상대에게 품은 증오와 경멸을 상징하는 행위가 되었으며, 이때 다른 남성의 소유물이란 가구, 가축, 그리고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집단을 이룬 강간범들은 피해자가 '매력적'이든 아니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사실은 성적 매력이 강간 행위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집단 속에서 강간은 힘과 지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남성집단 내에서 서로 인정받기 위해 여성을 거의 무생물 같은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p.190)


앞서 3장에서도 봤지만 어떤 민족을 말살하자는 목표중에는 상대방 남성의 소유물을 철저히 파괴하고 강탈하는 것이 있으며 이는 곧 남성의 소유물으로 인식하고 있는 여성을 함부로 하겠다는 의미였고 당연히 상대방 여성이 '매력적'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수잔 브라운 밀러는 집단 속에서 강간은 힘과 지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이때 여성은 남성집단 내에서 서로 인정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강간에서 '힘과 지배'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흑인이 KKK의 특별한 표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며, 흑인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특별한 학대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백인 여성을 따로 분리한 후 그들만은 KKK의 테러를 면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성적 위협이 있었으며,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성적 억압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인식에 다다를 수 있다.

(p. 201)

 

수잔 브라운 밀러는 강간피해 사건을 인종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빈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백인이라서.. 흑인이라서..라기 보다 여성이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콩고 사례에서 강간은 복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으며, 그런 정당화를 가능케 한 것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고색창연한 이데올로기적 변명을 걷어내면, 그 복수란 실은 남자들끼리 되는대로 경박하게 좋은 시간을 보낸답시고 저질러온 수많은 강간 사건 중 하나일 뿐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 213)


4장의 콩고 독립 기념 기간에 벌어진 강간 사태에서 보듯, 적국 국민이 아닌 여성도 강간을 당했으며 자기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손 쉽고도 준비된 표적인 여성에게 압제자에 대한 복수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강간이 복수로 정당화된 이유는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5장에 보여지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백인남성은 인디언 여성에게, 또 인디언 남성들도 백인 여성에게 강간을 저질렀다, 

백인'남성'들은 선전선동에 백인'여성'의 피해담을 이용하기만 하였고

반대로 인디언의 경우는 인디언'여성'이 겪은 모욕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누구에게도 증언을 남기지도 않았고 누구도 증언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


인디언 전쟁 기간의 강간은 보복성 행위로서 이루어졌다면

노예제 하에서의 강간은 폭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의 '일부분'으로서 제도화된 범죄였다. 


노예제하에서 흑인 여성에게 강제된 성적 착취는 결코 즉흥적으로 벌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생산 기관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6세 내지 8세가 되면 바로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노예 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의미했다.

(……)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는 수동적인 여성 신체 -저항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했다- 가 많을수록 노예를 소유한 백인 남성은 남자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반면, 흑인 남성의 역할 개념은 축소되고 일그러졌다.

(p. 237)



가장 아래쪽의 지위를 가졌던 흑인노예 여성은 노동자이자 재생산자로서 이중의 착취를 강요당했다.

흑인 노예 여성의 모든 부분이 백인 주인의 소유였다.


그렇다면 흑인 남성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남성 노예의 일과 후 성생활은 노예와 주인 모두에게 일종의 보상처럼 여겨졌으나, 과연 여성 노예에게도 그런 일반화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노예제 연구의 권위자인 케네스 M. 스탬프는 이렇게 썼다. "노예들은 주인의 우월한 힘에 굴복했으나 서로에게는 극도로 공격적으로 굴었다." 억압이란 늘 이런식이다. 억압받는 집단 내부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학대한다.

(p. 242)


애초 노예제와 관련된 법과 언어를 노예 소유자 계급이 만들었으니, 노예를 강간한다는 개념이 법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닥 놀랍지는 않다. 이 경우 노예는 재산일 뿐이기에 자기 재산을 강간한다는 개념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소유한 노예를 다른 백인 남자가 강간하는 것은 대농장 법의 관점에서는 그저'무단침입'으로 간주되었다. 한 사람이 소유한 노예를 다른 노예가 강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범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p. 250) 


주인의 성적 특권은 차고 넘쳐 농장에 고용된 낮은 계급의 백인 남자들까지 순서가 돌아갔고 일부 흑인 남자들도 콩고물을 얻었다. 그리고 노예제하의 법이란 노예를 위한 법도 아니었으니 최하층에 있는 흑인 노예여성을 향한 '강간'이란 것이 '강간'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주인-노예 관계는 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착 환상이다.

(…)

시와 춤으로 찬미되어온 동방 지배자의 하렘 이미지부터, 피부색이 옅은 매춘부에 대한 숨 가쁜 묘사, 싸구려 역사소설의 특정 장르에서 나타나는 관습, 노예제하의 강제 성관계와 제도화된 강간 미화까지 이 모든 것이 문화유산의 일부가 되었고, 이런 유산은 남성의 자아는 키워주고 여성의 자아는 무너뜨렸다.

(p. 260~261)


이 노예제하에 보여진 힘과 관련의 특정 이미지가 남성들의 왜곡된 성적 판타지화로 미화되어 지금까지 그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다. 


5장의 부록부분에는 계량경제사학자라는 분들께서 몸소 데이터를 이리저리 이용해 노예제에서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기막힌 주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연히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빈약했다.

현대로 오면서 학계에서 계량적 방법을 통한 분석 시도가 중요해졌다.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지만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리고 당시 데이터가 그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일까?  

통계 분석, 특히 오래된 데이터를 가지고 한 통계 분석은 신중히 해야되고 섣부른 결론을 내어서도 안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01-25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겟타님 같이 읽어주시니 너무 좋으네요.
게다가 저랑 읽는 속도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이 부분 읽으면서 뭐야, 전쟁 끝나도 힘드네... 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지금 노예를 강간하는 부분 읽고 있는데, 흑인여성 들은 강간을 발화하고 기록할 힘조차 없었죠. 사실 이 책에서 쉬운 부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전쟁만 넘기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더라고요. 휴..

이제 1월이 얼마 안남아서, 더 열심히 읽어보려 합니다! 힘내자구요!

단발머리 2019-01-25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막 이 부분 지나왔어요. 다락방님이랑 셋이서 진도가 거의 비슷하군요.

저는 진보적인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흑인 남성을 고소하는 걸 고민했던 사건들이 인상깊더라구요.
모든 경우에 남성들이 억압자인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피해자는 여성들이니까요.
저도 힘내서 읽어볼께요. 블랙겟타님 리뷰 또 올려주세요^^
 















~ 3. 전쟁과 강간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는 알고 있지만 특히 이 쳅터를 읽으면서는  탄식을 하며 읽은 것같다.  


전쟁은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이면서 강간 또한 무참하게 벌어지는 현장이다.

나도 대부분의 남성들 처럼 전쟁사을 좋아했었고 삼국지등의 소설에 흥분하며 봤던 사람이다. 전쟁에 착한 편, 나쁜 편이 어딧겠냐만은 주인공쪽에 이입하여 적들을 무참히 섬멸하고 정복하면 괜히 흥분하고 그랬다. 고등학교때 한국사를 좋아했던 나는 일제강점기시대의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배우며 때로는 불타는 민족주의자가 되기도 했고 외세로 부터의 침략이 많았던 우리나라가 왜 약한지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의 현장에는 역사책에서 보이지 않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조그만 내전부터해서 전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벌어지는 것 중에 큰 언급없이 가볍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강간'에 대한 부분이다. 

분명 존재했지만 이 문제가 전쟁에서 일어났던 다른 문제보다 더 가볍게 치부했던 것인지 몰라도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전쟁에서 벌어진 전시 강간'은 책상 한 편으로 물러났었다.


일찌기 종교전쟁에도 강간이 동반되었었다. 

이것은 '정의로운' 전쟁인지 '정의롭지 않은' 전쟁인지에 따라 전시 강간 여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현대에 오면서 전시 강간은 전쟁에 관한 국제 규약하에 범죄 행위로 불법화되었다. 

그럼 현대에 와서는 없어진거 아니야?

실망스럽게도 강간은 여전히 전시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행위로서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평시에도 남성이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멸시를 극대화해 폭발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심리적 배경을 제공한다. 군대는 그들만 독점할 수 있는 무기가 발휘하는 잔혹한 힘과 병사 간 정신적 결속, 명령을 하달하고 복종하는 남성적 훈육 과정, 위계에 따른 명령 체계의 단순한 논리를 통해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것을 구성원에게 주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여성이 진짜로 중요한 세계와는 관련 없는 주변적 존재이며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는 존재라는 남자들의 오랜 의혹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P.54)



전장에서 여성은 주변적 존재로 여겨졌으며 부속품에 불가하다는 인식을 남성군인들에게 심어주어 강간에 대한 도덕적인 의식을 흐릿하게 만들어 강간이 더 쉽게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통하는 단순한 규칙이 있다면 바로 이기는 편이 강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는 실용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 두 가지가 있는데, 결코 패자가 승자보다 강간을 기피할 만큼 더 고결하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는 아니다. 실용적 원인은 이긴 편의 군대가 패배한 편의 영토를 지나면서 강간을 한다면 당연히 패배한 쪽의 영토를 지나면서 강간을 한다면 당연히 패배한 쪽 여성의 몸이 주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심리적 원인은 강간이 정복자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뻔한 동어반복이 아니다. 강간이 정복자의 행위라는 말은 왜 남성이 전시 강간을 멈추지 않는지를 설명해준다.

(P.58)


승리를 거둔 군대의 시점에서 강간은 순전히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 국가 단위의 테러와 정복이 보여주는 커다른 패턴의 일부로 강간을 인식하는 일은 사후에만 가능하다. '사후에야'이런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강간하려는 충동이 복잡한 정치적 동기 부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언제나처럼 여성의 신체 온전성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강간은 충동이 생겨 어쩌다 저지른 일에 그치지 않고 군사적 효과도 불러일으킨다. 피해를 입은 쪽에게는 협박을 당해 사기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P.61)


전시에서의 단순한 규칙은 이기는 편이 강간한다는 점이다.

수잔 브라운밀러는 전시강간이 왜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여성의 신체 온전성을 무시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거기에 더해 정복자의 행위로서의 군사적 효과로 인해서 벌어지게 된다고 했다.


평화 시처럼 전시에도 강간당한 여성의 남편은 비난받을 책임을 주로 아내가 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허상일 뿐인 부인에 대한 남편의 소유권이 침해당했다며 소유물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것이다.

(P.65)


전시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남성은 비겁하게 비난을 당한 여성에게 책임지게 했다. 

그리고 1,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장면은 이 전시 강간을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덕적 우월성을 통해 상대 적군이 이렇게 나쁘다라는 선전도구로서 이용된 것인데...


전시에 강간 이야기는 이용가치가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더 이상 여성의 말을 믿어주거나 여성만 겪는 특수한 비극을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주제로 간주할 정치적 필요가 없어졌다.

(P.85)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나치가 행한 홀로코스트의 범죄는 많은 학자들을 통해서 연구되어 후대의 사람들도 알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분명 같이 일어난 나치에 의해 벌어진 젠더범죄에 대한 연구는 책상 한편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90년 중반이 되어서야 나치의 대 여성 범죄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단순히 정치적 이용가치로서 써먹은 것을 뿐 진지하게 간주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솔제니친은 전시 강간의 의미나 문제점,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강간 억제 처벌 시스템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기는 커녕, 강간은 애초에 범죄가 아니며 그저 술에 취하는 것을 과하게 즐기는 성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비열한 경찰 국가의 참상을 폭로하는 것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

(P. 113~114)


반 스탈린주의로서 당시 소련에 대한 비판한 대문호 솔제니친에게서도 전시 강간은 범죄가 아니며(?) 일탈 행위에 불과하다는 그의 솔직한 모습은 그 당시 얼마나 젠더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했나를 알 수 있다.


미군의 경우 자유거래 행위였다는 점이 흐릿하게나마 전시 강간과 차이를 보이지만, 실상 전시 성매매와 전시 강간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나치 친위대 경찰이 유대인 소녀에게 "다음 차례는 너야. 5즈워티를 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강간 행위를 피해자도 책임을 공유하는 매춘 행위로 바꾸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P.118~119)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시 강간은 약간 변형되어 나타나게되는데 전시 성매매제도 였다. 공창제도를 통해 강제가 아닌 대가를 치루고 한다는 방법은 도덕적 책임을 조금이나마(?) 면피하려는 얄팍한 수에 불과할 만큼 실상은 전시 강간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몇푼의 돈을 쥐어줬을 뿐 그것이 강간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 책에서 소개된 베트남 전쟁부분은 한국이 가해자가 되는 지점이다. 

당시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박정희 정권은 명분도 없던 전쟁인 베트남 전에 한국군이 대규모로 투입되었다. 당시 역사책에서는 용맹하게 싸웠던 한국군이라고 기록하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명분도 없이 참전한 전쟁에 많은 한국군들의 희생또한 컸지만 책에서도 나오듯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진 전시 강간에 대한 것에 있어서는 미군과 한국군이 최악이었다라고 나온다. 자국의 어두운 면을 넣기 힘든 한국의 근현대사 책에도 나오는 것이 라이따이한(한-베트남 의 혼혈)이다.

물론 모두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베트남 전에 벌어진 성범죄의 결과이기도 했다.
















끝으로 이 책에서도 잠깐 소개된 1971년 벌어진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때의 일은 다른 책인 <작전명 서치라이트 - 비랑가나를 찾아서>에서 전쟁에서 여성을 얼마나 정치적으로 다뤘는지 다큐소설의 형태로 자세히 볼수 있다.


너는 우리의 국민이 화환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으로 생각해? 아니 매리, 그런 일은 세계 역사에서 일어난 적이 없어. 전쟁이 끝나면 남자들은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여자들은 타락했다는 말을 들어. 그냥 봐봐, 그들은 우리를 창녀로 만들 거야.


방글라데시의 독립 전쟁영웅이자 정치 지도자인 세이크 무집은 파키스탄군에 억류되었던 여성들을 칭송하는 단어로서 '비랑가나'를 그 여성들에게 부여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남성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추앙받았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철저하게 은폐되고 배제되었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어째서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91년이 되기 전까지 약 46년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준다. 비랑가나는 가족들에게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 취급을 받았고 마을 공동체에서는 '결혼 상대가 될 수 없는 여성'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정말 과거의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고 있는 것일까?


출처 및 참고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3436

프레시안, 나치의 '젠더 범죄'는 왜 책상 한편으로 밀려났을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4351

프레시안, "전쟁이 끝나면 남자는 '영웅', 여자는 '매춘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01-18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책, [작전명 서치라이트]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인용하신 문장이 뼈를 때리네요.

제가 133페이지 까진가 읽었는데, 우앗, 더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블랙겟타님이 저보다 훨씬 앞서나가실 것 같습니다.

전쟁 부분 읽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아킬레스랑 브리세이스에 대한 낭만 같은 거 갖고 있다가 완전 확 깨지면서 대체 내가 뭐한건가 싶었고요.

좋은 글 고마워요,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블랙겟타 2019-01-18 22:33   좋아요 0 | URL
전쟁 파트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힘도 들더라구요. ㅜㅜ 저도 읽는데 힘든데 다른 분들은 더 심할 것 같네요.

다락방님 덕분에 저도 힘을 내서 읽고 있어요. ^^

앞으로도 부지런히 읽고! 쓸께요!
 
















(1. 강간의 대중심리 ~ 2. 태초에 법이 있었다)


이 책은 강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그냥 그 단어를 쓰거나 들었을 때 혹은 어떤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접했을 경우와는 다르게 그 단어의 역사로 들어가서 마주하게 되면 조금 더 그 단어라는 것에 이입되어 진하게 인식될 경우가 있다. 

다 읽고 나면 이 '강간'이라는 단어도 나에게 깊게 인식될 것같다.


사실 강간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부끄럽게도 바로 떠올린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이다.

제주에서의 연설중에 경상도사투리의 억양때문에 관광을 마치 강간이라고 들렸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이지만 찾아보니 실제로 이 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발음 변화를 똑같이 겪은 사례가 또 있다. 


바로 게임 댓글 비속어로써다. 

언젠지부터는 모르겠지만 스포츠경기에서 혹은 게임할 때 상대방 실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상대방에게 굴욕을 느끼게 해주면서 이길 때 "관광 시킨다", "관광시켰다"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굴욕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이 왜 관광일까? 뭔가 이상해서 찾아보니 영미권에서는 게임중 공격 당했다.(Attacked) 대신 강간 당했다(Raped)라는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한다.아마 이 용어가 한국까지 넘어온듯 싶은데 실제 한국에서도 애초에 굴욕을 느끼면서 이길때 쓰는 표현으로 강간했다, 당했다, 역 강간했다라는 식으로 썼다. 

이러던 것이 너무 직접적인 단어라 게임내의 욕설과 비속어 필터링으로 인해 차선책(?)으로 발음상 비슷한 것으로 선택되었던 것이 관광이라고 바뀐 것이다.

어원을 알게된 부터는 이 단어는 안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렇게 잠깐 살펴봐도 특히 게임계는 남성중심적(?)인 게임비속어가 넘쳐 흐른다. 

남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을 불편함이 좀 더 생각해보면 여성이 온전히 즐길 게임조차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까지 다가왔다. 


이렇듯 '강간'이라는 단어는 누구는 가볍게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한편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만큼의 잔인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미국 강간 반대 운동의 핵심이자 가장 뛰어난 특징은 피해자의 관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당시에는 새로운 발상이었다. 대중이 강간과 아동 성 학대를 바라보는 태도는 온통 남성만의 관점을 통해 형성되어 있었다.

정신분석 이론부터 경찰수사와 사법재판, 인기소설과 영화, TV토크쇼, 나이트클럽 코미디의 단골 소재까지, 일상에서 마주치는 야한 농담과 느끼한 희롱은 물론이고 과학적 사실이라며 거창하게 공표하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든 남성의 관점이 관철되었다.

(p.13)



부끄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언론이나 대중이 보는 관점은 남성만의 관점을 통해 형성되는 사례가 대다수다.


그리고 위대한 사회주의 이론가인 마르크스, 엥겔스와 여러 제자 및 동지들은 계급 억압 이론을 발전시키고 '착취'같은 단어를 일상 어휘에 추가했으면서도 역시나 이상할 정도로 강간에 대해서는 침묵했으며 그들이 분석한 경제구조에 강간을 집어넣을 자리를 찾지 못했다.

(p.21)


이 현상은 좌파/우파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이론가인 마르크스, 엥겔스까지 마저 강간에 대해 침묵한 것은 아마 여성이 아직 계급문제를 넘어설 수없는 부차적인 산물로서 취급되는 시대 상의 한계로 우리가 눈 감아줘야할 부분일까?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은 불의 사용과 돌도끼의 발명과 함께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아야만 한다. 강간은 선사시대 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p.25~26)


수전 브라운 밀러는 남성이 인간의 신체구조로 인해 강제 삽입 행위가 가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강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여성은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할 수 없기에 여기서 강력한 강간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것이다.


힘으로 보복하는 원시적 체계, 즉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 법칙에 기반해 사회질서를 유지했던 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초창기부터 여성은 법 앞에 불평등했다.

(p.28)


그런데 포식자 남성 중 일부가 여성을 선택해 보호자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위험한 거래는 그렇게 성사되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나 모성애, 사랑에 이끌리는 본능이 아니라 언제든 강간당할 수 있다 공포야말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만든 최초의 원인이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의존적 존재가 되었고 보호를 대가로 한 짝짓기에 의해 가축화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p. 28)


태초에 법이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여성에겐 너무나도 불리했다. 

여성이 대응할 방법은 전무하다 시피 했으며 이는 곧 포식자 남성중 일부가 여성을 선택해 보호하는 위험한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사례를 보자.

많이 잊혀졌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건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왜? 

1심 재판관들은 안 전지사를 유죄로 보기 위해서는 수행비서가 위력을 행사해 간음을 했다는 걸 입증해야한다고 했다. 그럼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넘어간다.

남성 유력 정치인과 여성 수행비서가 동등하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졌다는 전제가 피해자에게는 엄청 불리하게 작용되며 '위력에 의한 간음'을 성립 할 수 없게 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제대로 동의받았는지 묻기 보다 피해자가 얼마나 거부의사를 밝혔는지 묻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이 사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이 책의 2장인 '태초에 법이 있었다'를 현실에서 보고 있는건가? ..

마치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에 아무래도 우유 한잔이라도 먹어야겠다.


출처 및 참고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6248

미디어오늘, 안희정에게 던져야 할 질문 "동의 받았습니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01-09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블랙겟타님! 시작하셨군요. 웰컴입니다. 이번 한 달 우리 같이 힘내서 달려봅시다!

블랙겟타 2019-01-11 09:08   좋아요 0 | URL
넵! 찬찬히 읽으면서 글도 부지런히 쓸께욧! 같이 잘 읽어봐요 ㅎㅎ

단발머리 2019-01-10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의 거부의사가 중시되고 있다는데에, 아직도 그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데에...ㅠㅠ
세상은 아직도 가해자 중심이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저도 부지런히 읽고 있어요. 블랙겟타님 리뷰 반가워요^^

블랙겟타 2019-01-11 09:11   좋아요 0 | URL
네에.. 맞아요.. 최근에 불거진 빙상계 사건도 왜! 선수 이름으로 법을 발의 하는지요.. ㅠㅠㅠ
단발머리 님의 글도 잘 읽고 있어요.
1월동안 같이 열심히 읽고 잘 부탁드려요!!
 


1. 오랜만에 도서관이란 곳(;;)엘 갔다. 도서관에 가면 알라딘계정에 '언젠가 사겠지..' 하고 담아둔 보관함의 책들을 무료로 빌려볼 수도 있고 나의 방보다 훨씬 시원하고 책도 잘 읽히는 좋은 곳임을 당연히! 안다. '이렇게 좋은델 왜!!자주 안오는 거니..' 하면서도 게으른 것도 있고.. 책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 한동안 안 읽다보니 더럽게 가까우면서도 안왔었다. 너무 더워 도서관이라도 가보자 하며 책 몇권을 검색하니 다행이 보고 싶은 책 몇 권이 대출이 가능하길래 얼른 빌려서 그 자리에서 읽고 다시 집으로 왔다. (너무 좋은 곳!)

 동화경제사는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 오즈의 마법사, 성냥팔이 소녀등등)속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그 당시의 시대의 사회경제사를 재밌게 소개놓은 책이다. 

 간병살인은 일본의 재택 간병에대한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건데 이런 종류의 일본 번역책을 몇 권 읽었지만 또 읽어보기 위해 빌렸다. 아무래도 우리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던 환경이 이유일지 일본의 이런 현상들이 한국과 꽤 비슷해서 이런 류의 책이 눈길이 끄는 건 사실이다.

 나는 태어나자 마자 속기 시작했다는 이 전에 여러권 읽었던 사회학자오찬호씨가 쓰신 책임을 발견하고 빌려본건데 잘 읽혀지겠지?

 마지막으로 도쿄 책방탐사는 일본갔을 때 참 아기자기한 책방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서 가볍게 읽어보고자 빌려본 책이다.


 

2. 알라딘에서 산 책

오랜만에 여러 권의 책을 샀는데. 2권은 만화책이긴 하지만...^^:;; 

 원펀맨이야.. 뭐 1권부터 사고 있어서 새롭게 나왔길래 당연(?)히도 샀던 것이고

파인애플 아미!! 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 작품이기도 하고 제일 좋아하는 만화인 마스터 키튼의 전신이기도 한 작품으로 한국판으로 이미 나왔던 적이 있지만 아쉽게 내가 알았을 때는 절판이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새롭게 나와서 얼른 구매했다. 

 역사의 역사는 가장 최근에 나온 유시민작가의 책인데 고등학교때 우연히 읽었던 '거꾸로 가는 세계사' 이후로 꾸준히 유시민작가의 책을 읽어왔던 것같다. 뭐 글재주나 말빨이야 지금은 워낙 유명해져서.. 이 책도 잘 읽힐 것 같다. 

 마지막으로 21세기 기본소득인데 기본소득에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온전히 이 책을 알게된 이유는 역자인 홍기빈씨의 덕택이다. 경제학자인 홍기빈씨의 저서도 많이 읽다보니 번역한 책도 꾸준히 사보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구매한 책으로 얇지는 않지만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