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간의 대중심리 ~ 2. 태초에 법이 있었다)
이 책은 강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그냥 그 단어를 쓰거나 들었을 때 혹은 어떤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접했을 경우와는 다르게 그 단어의 역사로 들어가서 마주하게 되면 조금 더 그 단어라는 것에 이입되어 진하게 인식될 경우가 있다.
다 읽고 나면 이 '강간'이라는 단어도 나에게 깊게 인식될 것같다.
사실 강간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부끄럽게도 바로 떠올린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이다.
제주에서의 연설중에 경상도사투리의 억양때문에 관광을 마치 강간이라고 들렸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이지만 찾아보니 실제로 이 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발음 변화를 똑같이 겪은 사례가 또 있다.
바로 게임 댓글 비속어로써다.
언젠지부터는 모르겠지만 스포츠경기에서 혹은 게임할 때 상대방 실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상대방에게 굴욕을 느끼게 해주면서 이길 때 "관광 시킨다", "관광시켰다"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런데 굴욕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이 왜 관광일까? 뭔가 이상해서 찾아보니 영미권에서는 게임중 공격 당했다.(Attacked) 대신 강간 당했다(Raped)라는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한다.아마 이 용어가 한국까지 넘어온듯 싶은데 실제 한국에서도 애초에 굴욕을 느끼면서 이길때 쓰는 표현으로 강간했다, 당했다, 역 강간했다라는 식으로 썼다.
이러던 것이 너무 직접적인 단어라 게임내의 욕설과 비속어 필터링으로 인해 차선책(?)으로 발음상 비슷한 것으로 선택되었던 것이 관광이라고 바뀐 것이다.
어원을 알게된 부터는 이 단어는 안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렇게 잠깐 살펴봐도 특히 게임계는 남성중심적(?)인 게임비속어가 넘쳐 흐른다.
남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을 불편함이 좀 더 생각해보면 여성이 온전히 즐길 게임조차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까지 다가왔다.
이렇듯 '강간'이라는 단어는 누구는 가볍게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한편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만큼의 잔인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미국 강간 반대 운동의 핵심이자 가장 뛰어난 특징은 피해자의 관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당시에는 새로운 발상이었다. 대중이 강간과 아동 성 학대를 바라보는 태도는 온통 남성만의 관점을 통해 형성되어 있었다.
정신분석 이론부터 경찰수사와 사법재판, 인기소설과 영화, TV토크쇼, 나이트클럽 코미디의 단골 소재까지, 일상에서 마주치는 야한 농담과 느끼한 희롱은 물론이고 과학적 사실이라며 거창하게 공표하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든 남성의 관점이 관철되었다.
(p.13)
부끄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언론이나 대중이 보는 관점은 남성만의 관점을 통해 형성되는 사례가 대다수다.
그리고 위대한 사회주의 이론가인 마르크스, 엥겔스와 여러 제자 및 동지들은 계급 억압 이론을 발전시키고 '착취'같은 단어를 일상 어휘에 추가했으면서도 역시나 이상할 정도로 강간에 대해서는 침묵했으며 그들이 분석한 경제구조에 강간을 집어넣을 자리를 찾지 못했다.
(p.21)
이 현상은 좌파/우파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이론가인 마르크스, 엥겔스까지 마저 강간에 대해 침묵한 것은 아마 여성이 아직 계급문제를 넘어설 수없는 부차적인 산물로서 취급되는 시대 상의 한계로 우리가 눈 감아줘야할 부분일까?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은 불의 사용과 돌도끼의 발명과 함께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아야만 한다. 강간은 선사시대 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p.25~26)
수전 브라운 밀러는 남성이 인간의 신체구조로 인해 강제 삽입 행위가 가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강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여성은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할 수 없기에 여기서 강력한 강간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것이다.
힘으로 보복하는 원시적 체계, 즉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 법칙에 기반해 사회질서를 유지했던 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초창기부터 여성은 법 앞에 불평등했다.
(p.28)
그런데 포식자 남성 중 일부가 여성을 선택해 보호자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위험한 거래는 그렇게 성사되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나 모성애, 사랑에 이끌리는 본능이 아니라 언제든 강간당할 수 있다 공포야말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만든 최초의 원인이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의존적 존재가 되었고 보호를 대가로 한 짝짓기에 의해 가축화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p. 28)
태초에 법이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여성에겐 너무나도 불리했다.
여성이 대응할 방법은 전무하다 시피 했으며 이는 곧 포식자 남성중 일부가 여성을 선택해 보호하는 위험한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사례를 보자.
많이 잊혀졌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건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왜?
1심 재판관들은 안 전지사를 유죄로 보기 위해서는 수행비서가 위력을 행사해 간음을 했다는 걸 입증해야한다고 했다. 그럼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넘어간다.
남성 유력 정치인과 여성 수행비서가 동등하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졌다는 전제가 피해자에게는 엄청 불리하게 작용되며 '위력에 의한 간음'을 성립 할 수 없게 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제대로 동의받았는지 묻기 보다 피해자가 얼마나 거부의사를 밝혔는지 묻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이 사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이 책의 2장인 '태초에 법이 있었다'를 현실에서 보고 있는건가? ..
마치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에 아무래도 우유 한잔이라도 먹어야겠다.
출처 및 참고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6248
미디어오늘, 안희정에게 던져야 할 질문 "동의 받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