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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 - 내 인생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3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장석주 하면 ‘대추 한 알’이 생각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 이 시를 읽고 장석주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엄청난 독서에서 나온 통찰력과 빛나는 문장들에 감탄합니다.
그가 66편의 에세이를 묶어 펴냈습니다. ‘내 인생의 문장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입니다. 그는 “평생 읽고 쓰며 산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책머리’를 시작합니다. 그는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몰입과 기쁨을 위해 책을 읽었다고 고백합니다. 작가는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감탄하며 즐겼습니다. 그의 이런 고백이 이 에세이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장석주가 좋은 문장들을 접하면서 누렸던 감탄과 환희를 나도 이 책을 통해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 유명한 괴테의 문장,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얘기하지 마라.”를 소개하며 장석주는 절망의 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더는 절망할 여력이 없을 때 죽음을 택하는지도 모르니, 절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말이겠죠.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자라는 말이 있듯, 살아남음이 의로움입니다.
“강가에서 주워온 돌이 책상 위에서 가만히 흐느낀다”(p. 217)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에서, 장석주는 슬픔에도 각각의 색깔이 있다고 말하며, 불안에 떨었던 과거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 그의 삶과 사유가 녹아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에게 독서는 일탈과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 행복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렇듯 멋진 문장들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추 한 알이 붉게 익기 위해 태풍, 천둥, 벼락이 필요했듯, 그의 찬란한 문장들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에세이집은 이곳저곳 눈길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제격입니다만, 장석주의 글에 매료되어 저녁마다 조금씩 거의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독서의 행복, 무위의 행복을 누린 시간이었습니다. 삶이 불안하고 피곤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과 삶에 대한 초연한 감정이 생길 겁니다. 너무 실용적인 이야기인가요? 그냥 독서의 순간을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