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도연명 -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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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법학자인 박홍규는 그의 책 <놈 촘스키>에서 촘스키를 현대 아나키스트의 전형으로 보았습니다. 박홍규 또한 아나키스트의 삶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단단히 붙들고 싶어 도연명의 삶과 시에 천착(穿鑿)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 <내 친구 도연명 농사꾼 아나키스트 시인>입니다. 이 책은 농사꾼이며 아나키스트로서 도연명의 삶을 소개하고 그의 시들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해 놓은 평전입니다. 박홍규는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 역사를 간략히 알려주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디스토피아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는 다섯 챕터로 구분하여 도연명의 성장기부터 죽기까지의 일생을 알려주며 각 시대에 지은 도연명의 시()를 해석합니다. 덕분에 도연명의 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1장에 설명해 놓은 도연명의 <자제문(自祭文>을 통해 가난을 술과 독서와 거문고 덕에 즐기며, 자신의 삶에 후회하지 않고, 죽음을 담담히 맞이하는 도연명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도연명의 삶을 따라가 보지 않고는, 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느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도연명을 자연시인(自然詩人)’ 혹은 전원시인(田園詩人)’ 정도로 평가했을 것입니다. 이 책 덕분에 도연명의 유일한 사랑 시인 <한정부(閑情賦)>, 출세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러 시골에 내려와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 57세에 도화원을 묘사한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제대로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박홍규의 말처럼, <귀거래사><도화원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그 뜻을 삶으로 이어간 이는 드뭅니다. 모두가 겉멋으로 흉내를 내지만 세상 출세에 연연했기에 도연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그 삶을 따라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농사꾼으로 살았던 도연명, 그가 나를 손짓하며 말합니다. “, 돌아가자 / 전원이 메말라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 마음을 몸의 노예로 만들고 /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나는 어느새 도연명에게 매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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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 세계철학전집 7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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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오가 엮고 풀어쓴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들을 아주 쉽게 설명합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는 현실의 사태를 보여줍니다. 이는 언어가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컵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와 같은 단순 명제는 ’ ‘책상같은 요소 자체보다 책상이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논리적 그림입니다. 이는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렇게 언어와 사계, 그리고 사고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우리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인과율에 대한 믿음은 미신이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각각 일어난 사건 그 자체인데, 우리는 각각의 사건을 묶기 위해 해석을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이는 확고한 증거 때문이 아니라, 습관 때문입니다. 그가 인과율을 경계하는 것은 인과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실제 세계는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놓여 있을 뿐, 그 사실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필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의 철학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에 직면할 때, 실제 있지도 않은 원인을 찾다가 탈진하지 않게 해 줍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처럼 우리 삶에는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닥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재앙과 고난이 닥쳤다고 인과응보(인과율)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욥은 친구들의 말에 항변합니다. 사실 욥기가 말하고 싶은 것도 삶에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을 인과율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러니 생각을 명료하게 함으로써 말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지혜롭게 인생을 살려면 명료한 생각과 언어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는 이 시대의 현자(賢者)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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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패커 -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들려주는 제임스 패커의 삶과 사상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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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패커! 그가 어떻게 복음주의 신학자가 되었고, 그의 신학이 복음주의에 끼친 영향을 알아보고 싶어서 알리스터 맥그래스<제임스 패커>를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 책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패커의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단순한 전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사상에 집중한 제임스 패커의 신학 평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장에서 제임스 패커의 <복음 전도란 무엇인가>의 역사적 위치와 공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브리스톨의 틴데일 홀 교수로 있을 때, ‘복음 전도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습니다. 그는 찰스 피니의 고강도 전도 운동이 펠라기우스적임을 간파했습니다. 즉각적 결단을 요구하는 전도설교 방식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고 본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미국 빌리 그레이엄의 지나치게 단순한 전도 설교와 신학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제임스 패커는 이 책에서 인간의 책임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외관상 서로 모순되는 듯한 두 교리를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두 교리의 긴장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면서 전도하고 설교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오래전 <복음 전도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는 너무나 평이해 보여서 조금 실망했는데, 이 책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니,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장에서는 제임스 패커의 최고의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말합니다. 패커는 성도의 삶에서 신학이 중요함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신학은 하나님이 가르치시고 하나님을 가르치며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아퀴나스의 명언을 체험으로 검증하는 것”(p. 213)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신학은 경건 훈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1996, IVP)에서 인상 깊게 배웠던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배우고 삶에서 체험합니다. 그는 신학과 삶이 통합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제임스 패커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20207월 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한 신학자는 로마서 838~39(“내가 확신하노니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을 읽었답니다. 이 책의 저자 맥그래스는 패커의 저작에서 기독교 신앙의 지성적인 깊은 비전을 본 사람이 많으며 그 뿌리는 성경이고 청교도주의라고 평가했습니다(p. 297). 지금 한국 교회는 반지성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교회의 외적 성장만 추구하며 열심히 전도했지만, 오히려 이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교회가 제임스 패커처럼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파악하고 깊은 영성을 형성할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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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All Loving - 한국인은 이렇게 사랑했다. Once there was a love in Korea.
이광수 지음, 김정호 편역 / K-Classics Press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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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는 한때 독립운동 활동가였지만 일제 식민지 통치 말기에 노골적인 친일 행위로 비난을 받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래전 그의 소설 <무정>을 읽으면서 내용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지만, 한편 우리 민족을 계몽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열망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 전개와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가 지루할 만큼 세밀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일만 부가 팔린 것을 보면, 당시 대중들이 이 소설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김정호 씨가 현대판으로 편작하고 영문 번역까지 실어놓은 <유정>은 시대적 편차를 넘어 오늘날에도 읽을만한 소설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문장마다 넘버링을 하고 옆 페이지에 병렬식으로 영문을 번역해 놓아서 문어체적 영작 연습에 도움을 줍니다. 한글로 읽다가 가끔 영어 표현을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남자 주인공 최석의 회고록 형식의 편지와 독백 부분의 넘버링을 회색으로 처리한 것도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생각보다 스토리 전개가 흥미롭습니다. 지나치게 세밀한 설명과 고리타분한 심리묘사가 지금 시대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지만, 스토리 위주로 각색해서 드라마를 만든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1900년대 초 서울과 동경과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를 로케이션으로 촬영을 한다면 볼거리도 풍부한 드라마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최석은 딸처럼 키운 정임에게 남녀로서의 사랑을 느낍니다. 정임도 최석에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도덕적 관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이 감정을 책임지고자 스스로 바이칼 지역으로 떠나 쓸쓸히 죽어갑니다. 이러한 스토리 전개 속에서 주인공은 육체적 사랑의 욕망을 고통스럽게 제어하며 순수한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시킵니다. 오랜만에 한국 근대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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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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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는 뜻밖의 사건뿐만 아니라 뜻밖의 물건이나 음식에 의해서도 그 흐름을 바꾸곤 합니다. 중세 유럽, 종교적으로 육식이 금지된 피시 데이(Fish day)’에는 지방이 많은 청어(herring)가 대체 식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연히 청어를 많이 잡을 수 있는 도시들이 부를 축적하고 엄청난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유어인 청어가 발트해에서 많이 잡혔을 때는 발트해 연안 도시들이, 북해에서 많이 잡혔을 때는 북해 연안의 도시들이 번성했습니다. 청어의 출몰이 발트해에서 북해로 옮겨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쨌든 저 유명한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이 청어로 인해 흥망성쇠의 부침을 겪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청어가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대구(cod)는 단백질이 풍부한 생선으로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 장기 보관하기 쉬웠습니다. 따라서 장거리 항해에 주요 먹거리가 되었고, 이는 신대륙 발견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필그림 파더스가 신대륙 외딴곳에서 전멸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카 선주민의 선의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관대하게 대구를 나누어 주었기에 필그림 파더스는 옥수수 수확 때까지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구는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물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후에 잉글랜드가 카리브해에서 사탕수수를 대규모로 재배하면서 사탕수수 농장에서 부릴 노예와 노예의 식량으로 소금에 절인 대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결국 대구 어장을 두고 뉴잉글랜드 어부는 잉글랜드 정부와 갈등했습니다. 이렇게 식민지 미국과 잉글랜드 사이의 독립전쟁이 발발한 원인 중 하나가 대구였다고 합니다.

중세 기독교의 피시 데이때문에 청어와 대구가 세계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후에 종교개혁으로 피시 데이가 쇠퇴하자 잉글랜드의 어업도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한때 국방력까지 약해졌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청어와 대구는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라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이번 독서 덕에 도서 출판 사람과 나무 사이에서 출간한 세계사를 바꾼시리즈에 관심이 갑니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13가지 식물, 10가지 감염병, 커피, 맥주 등등. 모두 일본인 저자군요. 이 중 , 감염병, 커피는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유익한 상식을 재미있게 쌓을 수 있는 좋은 책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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