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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필사노트 ㅣ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33명 지음, 귀스타브 카유보트 외 그림 / 저녁달 / 2025년 3월
평점 :
봄’ 필사 노트에 사각사각 만년필로 써보는 ‘봄’! 화가들의 작품에 물씬 풍기는 ‘봄’! 겨울의 끝자락 2월에 봄과 관련된 시를 쓰고,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 봄이 들어 온다. 한 아름 가득! 세 장으로 구성된 이 책, 하드 커버로 된 꽃무늬의 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책이 완전히 펼쳐지도록 묶여있고, 필사 노트는 항상 오른쪽에 위치해서 필사하기에 안성 맞춤이다.
1장, 시인 윤동주는 이렇게 봄을 노래했다. “봄이 혈관(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시인 김소월도 ‘바람과 봄’을 이렇게 표현했다.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 … /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 꽃이라 술잔(盞)이라 하며 우노라”. 시인들에게 봄은 혈관의 피로, 바람과 꽃과 술로 다가오나 보다. 퀴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화병에 풍성히 담긴 꽃들, 드레스 테이블에 서 있는 여인과 뜨개질 하는 부인, 강가를 강아지와 산책하는 신사, 봄비, 숲길은 내 몸 구석구석에 포근한 봄바람을 불어넣는다.
2장, 김소월의 저 유명한 ‘산유화’를 적어본다. 산 저만치에 홀로 피고 지는 산유화, 꽃이 좋아 산에 사는 작은 새는, 덧없는 삶에서 느끼는 고독감이 오히려 행복임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에서 새로운 생명력으로 충만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해도 그 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파울 클레의 추상화에는 자연, 여인, 새, 고양이, 물고기가 선명히 담겨 있다. 그의 그림에는 현대의 난해한 추상화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묻어있다. 이 필사 노트 2장에 파울 클레의 작품을 수록한 것은 탁월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덕분에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꽃 그늘 아래선 / 생판 남인 사람 / 아무도 없네”(고바야시 잇사), “두 사람의 생 / 그 사이에 피어난 / 벚꽃이어라”(마쓰오 바쇼)
3장, 시인 김영랑은 찬란한 봄이 모란과 함께 지는 것을 슬퍼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 5월 어느 날, …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 찬란한 슬픔의 봄을” 그의 시와 함께 차일드 하삼의 작품에 등장한 꽃들을 바라본다. 몇 년 전 강진의 김영랑 생가에 가서 본 모란꽃이 떠오른다. 다정히 불어오지만, 너무 쉽게 가버리는 봄바람, 올해에는 봄의 순간을 만끽해 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