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은 위대하지 않다 - 개정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성장한 사람입니다. 대학교 때, 교양과목에서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현상을 보고 두려움 속에서 신의 존재를 만들어 냈다’는 주장을 접하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공부하고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나름대로 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었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자 볼테르는 유신론을 크게 공격하며 기독교와 성경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 단언했지만,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이성(理性)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 문명사회,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사람들은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시대처럼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자연과 우주를 이해할 수 있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오늘날 종교를 비판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의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도 초지일관 종교를 비판합니다. 과거 어리석은 인간이 두려움에서 신과 종교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교들은 이제 인류에 전혀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제1장, 좋게 말해서’에서 그는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 결코 물리칠 수 없는 것 네 가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 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p. 16). 이것은 저자가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이해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그의 표현대로라면 “‘변성기도 겪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어린 시절 생각보다도 못한 자라는 조롱이 담겨있는 셈이죠. 저자는 종교에 대해 반감을 넘어 혐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종교 간의 싸움, 심지어 같은 종교 안의 분파들이 서로 상대방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라고 단언합니다. 그는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종교는 문명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후렴구처럼 반복합니다. 물론 히친스는 자신도 종교인 중에서도 죽음의 종교에 맞서는 사제, 주교, 랍비, 이맘을 알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류애 때문“이라고 말합니다(p. 49). 히친스는 종교인들의 좋은 점들을 발견하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종교인들의 나쁜 점을 발견하면 그것은 그들이 믿는 종교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분명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주장입니다. 종교인들은 반대로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인들의 나쁜 점을 발견하면 그것은 그들이 믿는 종교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며, 종교인들의 좋은 점을 발견하면 그것은 그들의 종교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인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수없이 나열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런 현상으로 모든 종교를 불필요하고 심지어 악하다고 보는 것은 치졸한 주장입니다. 그것은 무신론 과학자들의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인 모습들을 제시하면서, 그것은 인간의 이성 자체가 악하고 그 이성으로 과학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가 종교의 해악을 이야기하고 싶어 제시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런 식의 주장임을 저는 이 책 전체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종교인들의 엄청난 죄악과 잘못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 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배타성과 도그마티즘에 대해 반성해야 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악행들이 종교 때문입니까? 종교를 가지지 않은 자들에 의한 악행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책이 마지막 “결론: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에서,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잣대로 여기는 계몽주의자임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도 인간의 이성을 신(절대적인 것)으로 믿은 계몽주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서’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비난서’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히친스의 주장이 별로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차라리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