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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ㅣ EBS CLASS ⓔ
고미숙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1960년생인 저자는 ‘60대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은 시기’라고 말합니다. 고미숙 작가는 현대 문명을 ‘자본과 노동과 소비’밖에 모르는 치명적인 문명이라고 비판합니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지금은 ‘삶은 촘촘히 관리하면서 죽음은 내팽개친’ 시대라는 것이죠.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 묻는 일은 인생의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입니다. 작가는 위인 여덟 명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는 삶이 심오할수록 죽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장자, 마하트마 간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사리뿟따, 붓다, 이렇게 여덟 명의 위인의 삶과 죽음을 다룹니다. 저자는 이들이 모두 평화와 지복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거리낌 없이 독배를 든 것일까요? 그는 철학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며,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았기에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장자는 왜 아내의 죽음 앞에서 질장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을까요? 장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본 것입니다.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하니 죽음도 만족스러운 것이죠. 살아서 좋고, 죽어서 좋은 그야말로 ‘아모르 파티(Amor Fati)’입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연암 바지원의 삶과 죽음은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삼십대를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거의 상중에 있었던 연암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인 그는 관직에는 마음이 없고, 좋은 친구와 대화하고 책을 읽고 여행을 했죠. 뒤늦은 나이 50대에 생계를 위해 관직에 나아가서는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관직인 양양부사에서 물러나자마자 한양으로 돌아와 술상을 마련하고 붓글씨를 쓰면서 즐거워했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른 이를 위해서는 많은 묘비명을 썼던 그이지만, 자신에 대한 묘비명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무슨 묘비명이 필요했을까요? 저자는 그의 묘비명은 이 한 마디로 족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살았노라.”(p. 215).
여덟 명의 위인은 모두 가벼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을 대립 관계로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욕망의 그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들이 한없이 가벼운 죽음을 맞게 했다는 것이죠. 저자가 삶과 죽음을 윤회와 환생과 연결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욕망에서 벗어난 심오한 삶을 살면, 평온하면서도 유쾌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러 위인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면서,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생각하는 묵직하면서도 가볍고 즐거운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