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세대의 시인이라서 현대시의 특징을 닮은 건지 상당히 어려웠다. 문장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에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낯설지 않는데 연결이 되질 않는다. 좋게 말하면 현대시에 걸맞은 암호이자 난수표같이, 나쁘게 말하자면 시어들의 하나하나가 가진 연관성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하기야 내가 시를 읽는 이유가 시인되겠다는 게 아니니 이게 무슨 오버하는 짓인가 싶기도 한다. 시어를 만날 때 이해의 논리로 시를 재단하는 이과생의 버릇이 시 읽기를 더욱 어렵게 한다. 시는 직관성이 아니라 은유인데 이 메타포의 상징이 금방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단어의 상징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왜 이렇게 어려워 보였을까? 시인의 개인사적인 관념은 시에 곳곳에 부비트랩같이 숨겨져 있을 텐데 아직 찾아내는 시의 돋보기를 가지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산문으로 설명되지 못한 짧은 시에 못처럼 박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출신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뭐 대부분의 시인의 삶을 자세하게 알 수야 없겠지만 이런 시가 나올 법도 한 개연성, 또는 밑바탕에 흐르는 강물을 따라기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사전 지식이 없다는 것도 시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시어가 마치 정신적 편집증처럼 튀어나오고 넓은 언어의 바다에 시어라는 물고기는 무슨 어종들인지 헤맨다.
이 시집은 딸아이의 구매 요청으로 구입한 것이니, 시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읽게 된 거라서 뭐랄까 딸내미 양의 문장 취향이 음~~~그랬었나,라고 난해하게 생각되었다.
시가 딱 7줄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3, 4 혹은 4, 2나 4.4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를 낭송하면 멜로디가 나왔다. 운율이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는 읽는 내내 전부 소리 내며 읽었다. 시가 의미하는 바 상관도 없이 그저 읽기만 해도 노래가 된다. 남해의 밤바다에 파도 소리는 잠잠하기만 한데 읽는 것만으로도 몰입하게 된다. 시인의 나이 70줄에 걸쳤으니 시도 7줄인가 보다. 시를 굳이 길게 쓸 것도 없이 짧게 트위터의 140자 기준이 있다면 70세 노년 시인의 시는 7줄로 줄였던가 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다하고야 살 수가 없겠지. 규칙성을 띠고 정형화되는 과정이 결국 나이로 다듬어지는 형태를 이루는 것은 아닐까.
하기야 두 편의 시집을 읽었는데 지금 이 페이퍼 글을 쓰며 복기해보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렇게 잘 읽었으면 된 거지 않을까. 수험생의 복습용 책도 아닌데, 이 시집으로 어디 시인 자격증 따려고 시험 준비하듯이 읽어야 할 의무도 없지 않겠는가. 그저 읽히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대로 무슨 뜻 알듯 모를 듯 중얼중얼 읽기만 해도 시는 불편과 안온을 교차시키면 그만일 테니까 말이다.
'사진과 시'를 삶의 과업인 분의 선물로 과분하게 받았다. 내가 시인도 아닌데 자꾸 시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따져 묻지는 못했어도 홍진에 묻힌 분네들이 시집 한 권이라도 읽으며 산다는 게 어떠한지 자화자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뭐 시집 읽어도 돈 한푼 생기지 않고, 먹고사는 일과는 전혀~상관없는 것이지만 먹고사는 일 말고 다른 거를 찾으라 하면 난 감히 시집을 추천한다. 한편으로는 시를 읽는다는 것이 내 삶을 언어로 포장해 주는 기분이랄까. 이 포장에 시의 허세라도 부린다 한들 다 자기만족 아니겠는가 싶었다. 돈 버는 일 빼면 똥 싸고 섹스하는 것만 남는다면 인생 진짜 조깥거든. 세상이란 시궁창 구정물에서도 연꽃은 피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막역하게나마 그런 사진과 만난 시집을 생각했었다. 시가 있고 사진이 있는 시집이 반드시 꼭 나올 것이란 예상. 시인으로 등단한 사진작가이거나 사진작가이면서 시를 쓰는 시인이거나. 그래서 시와 사진이 만나는 접점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시집. 이 책이 딱 시집과 사진집을 합쳐 놓았다. 이제서야 두 개가 만난 시집이다. 어쩌면 사진 작업이라는 것이 시를 지어 내는 것과 과정이 참 비슷하다. 다만 형태가 다르지만 속성은 닮은 구석이 많다. 시심이나 사진 감성이나 결국은 뭉뜽거려서 만들어지는 이를테면 시가 뼈대라면 사진은 이 뼈대에 진흙을 발라 붙인 조형적 합작품일 것이다. 하기야 새로운 장르라는 것은 부단한 실험과 시도에서 나온다. 무엇이든 예술이란 답습과는 거리가 멀어야 예술답다. 끝없이 조합하고 해체하고 다시 분해시키고 뭉쳐지는 이 과정에서 없었던 것이 새롭게 발견되거나 만들어진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뻔한 사진에 텍스트가 붙혀짐에 따른 새로움이란 결국 뻔한 것을 뻔한 채로 방기하지 않는 이른바 작가주의의 실험정신. 이것이 예술이 우리 삶에 늘 새로움이라는 개척자의 정신이 다름 아닐 것이다. 있는 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겠다는 것. 끝없이 실험하고 변화해가며 진보를 실천하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자꾸 시도하는 것은 시도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하지 못했던 것의 후회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해보는 거. 그래서 이 실천력은 예술이 가지는 힘을 밑받침한다. 사진도 찍으러 다녀야 하지 책상에 앉아서 글도 써야 하지 부지런하기까지 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이 사진은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글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긴 기다림은 곧 발효되고 숙성된다. 그래서 나온 시집과 사진집의 콜라보가 아름답다.
이 사진 시집은 알라딘의 이웃분의 선물이었다. 아무 책이라도 보내지 않고 보는 사람이 딱 좋아할 만한 책으로 염두에 두고 보냈다는 것은 선물도 맞춤형이라니. 이를 두고 알라딘 복이라고 하자. 복 터졌다.
시집 3권을 남해의 한 적한 바다가 모 펜션에 잠도 자지 않고 밤새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들어가며 시 읽고 시 노래를 불렀다. 캄캄한 밤바다의 초겨울 날씨는 을씨년스러운 차가운 바람 앞에서도 고요했다. 바다 바람아 갈매기 소리만 듣지나 말고 몇 권의 낭송되는 시어들도 물어다 주길 바랐다.
낯선 펜션 방 침대에서 아내와 딸아이가 아침에 눈 뜨고 시집 3권을 다 읽는 것을 보더니
"그 나이에 놀러 와서 시집을 안주 삼아 읽어 대는 사람 여기 있네"했다.
소주 두세병 각인데 ㅠㅠ 그래 나도 알지. 중년의 나이 들어가는 꼰대 모습은 나도 무지하게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