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 소설가 김신의 졸병 시대라는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이에 서재 블로그 박규호 님께서 주신 댓글에서도 같은 작가의 대학별곡이란 소설도 상기시켜 주셨더군요. 이 소설을 읽었던 기억납니다. 지난 시절의 책에 대한 추억입니다. 그래서 김신 소설가의 근황도 볼겸 검색을 하니, 2011년에 59세의 일기로 작고하셨더군요.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이제 하나둘 부음 소식을 듣는 나이가 되었나 싶었습니다. 책으로 추억할 거리가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어떤 무상감이란... 이 소설은 대학 입시를 겪은 청년들이 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시작되는 소설입니다. 그때는 대학생의 이야기가 참 많았거든요. 고교 얄개에 이어 대학 얄개라는 무슨 뜻도 모를 얄개 이야기도 많았거든요. 그리고 또한 시대적 상황이 군사정부의 독재 타도, 혹은 NL, PD계라는 사상성이 대학 운동권에도 있었고 최루가스와 시위도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뭐랄까요. 저도 시대의 아픔이라는 명제가 끝물이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 속에서 나오지만 대학생들이 상당히 별동대 같고 시인 같고 철학자 같은 이미지들이었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고민과 방황들에서부터 고대 담론으로 이어지는 현실의 삶에 대한 철학적인 부분까지, 요즘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처럼 무슨 알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 일선에서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죠. 취업 사이트를 찾고 미리 어디에 지원할 것인지 먹고 사는 공부가 아니었던 셈이죠. 아무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먹고사는 문제가 확실하게 더 팍팍해진 탓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기에서 더 이상 지나간 시절의 소설 스토리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읽어 보면 될 일이고 하다못해 검색만 해도 이야기 줄거리는 찾을 수 있으니 다시 재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공계통의 공대생이었던지라 인문학 관련의 그런 동아리 모임이라든가 이런 쪽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공대에서도 특별히 절친하게 지냈던 동기들도 없었기도 합니다. 최근에 동기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저보고 교류가 별로 없었는데 분위기상 어디 절에 입산한 거 같았다고 놀리더군요. 부인하기는 어려웠어요. 아무래도 그런 낌새를 알게 모르게 풍겼을 테니까요. 하여간 학교생활은 참 지겨웠던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인문학 계통으로 첫 단추를 꽤지 못해서 겉돌았던 것은 아니었던가 싶었어요. 그러니 전공 공부도 늘 시들했었고 입학 성적에 맞춰서 지원했던 거였으니 특별한 취향이나 적성이나 이런 건 가볍게 무시되는 시대였으니까요. 전공도 심드렁했었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뻔질나게 소개팅하러 쏘다니지도 못했어요. 여자 사귀고  싶은, 이른바 연애 감정은 무척 메말랐었나 봅니다.  그흔한 소개팅이나 미팅조차 단 한 번도 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동기들이 일부러 왕따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대부분은 혼자 지냈던 걸로 기억나요. 게다가 요즘 같으면 열람실에 취업공부다 토익이다 공무원 공부다 이런 공부는 그때도 비슷했는데 그나마 대학이란 곳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이 바로 대학 도서관이었습니다. 평생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만큼의 책들이 즐비하는 서고에서 소설책 읽는 재미는 현실을 벗어난, 소설 속의 현실에 빠져 살기에 충분했었거든요. 아마 그때 만난 소설이 김신의 대학별곡이었습니다. 당대의 최고 히트되었으니 오죽했으면 2편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만큼 인기가 많았던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대학시절이라는 시간적인 특수성이 대학별곡이란 소설 속의 이야기와 상당히 공감되고 같은 시기의 동년배의 연대감이랄까 이런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탓이었겠지요.


요즘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스펙 쌓기부터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참 너무 팍팍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도 학교 임용고시까지, 게다가 취업을 하기 위해 각종 자격증과 해외 어학연수까지 해야 한다는 게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당시에는 시험이 역시 쉽지는 않았겠지만 조금만 공부하면 9급 공무원 시험은 그렇게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률은 오늘날처럼 치열하지는 않았습니다. 경찰직 시험이나 소방관 시험을 치고 실제로도 그때 공무원 하고 있는 대학 동기들이 여럿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 되는 동기들도 있었거든요. 공무원이 되지 않아도 일반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굳이 요즘 대학생들의 스펙을 요구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았거든요. 공무원과 일반 기업의 연봉 차이는 꽤 컸습니다. 그러니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 할 생각은 요즘처럼 치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몇백 대 일이라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 줄까 싶습니다. 그만큼 사회가 불안하다는 반증일 테니까요. 회사를 들어가더라도 40 넘기기 전에 짤리는 회사나 혹은 임금이 야박한 회사에 가서 청춘을 받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계산법일 테니까요.

 

게다가 등록금이나 학교를 다니기 위한 비용은 웬만한 봉급자 급여로는 충당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1년에 1,000만 원씩이나 하는 것은 물론, 각종 학교에 다니기 위한 경비는 얼마를 더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학교 다니면서 부모의 버프가 없으면 학자금 대출받아야 하고 폭등해버린 등록금에 허덕이며 공부할 시간에 각종 알바에 내몰려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미 자본주의 교육사업이라는 것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고 일반적인 경제 수준의 학생들이 등록금을 감당하기 벅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과도한 사립 학원들의 천문학적으로 쌓은 적립금은 학원 재단의 잇속 장사에 빠져 있는 대표적인 결과입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 때부터 대출의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 푸어가 나오고 그렇다고 직업의 문은 날로 날로 좁고 높아져 있으니 설사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출발은 이미 마이너스부터 시작해야 할 판입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연애도 포기하고 사랑도 포기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결혼이라도 하려니 변변한 전셋집 하나 마련하기 위해서 작은 평수의 서민 아파트라도 하나 장만하려면 2억 이상 들어야 하는데 출발부터 마이너스인데 빚 갚아 나가는데도 여기에 더 빚을 내야 한다면 과연 결혼이란 것도 형편을 생각하면 도저히 무리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안정 될 때까지라고 하며 결혼조차 유보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혼 적령기조차 늦어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출산은 또 포기하게 되거든요. 이처럼 라이프 사이클이 상당히 불안하게 물려 돌아가다 보면 사회의 밑바닥 구조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육사업은 사익을 추구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립학교의 설립주체는 학원 재단입니다. 주식회사가 아니더란 말이죠. 주식회사의 설립 목적은 철저히 이익 추구이지만 이에 반해 학교의 설립의 주체가 재단법인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도 공익의 목적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재단의 설립이나 운영은 출연한 재단 기금이 순전히 개인이 출자를 하더라도 공공에 헌사하는 형태입니다. 이는 사익의 목적을 위해 학교라는 공익적인 가치에 희생되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니 학교 재단 설립이 상당히 까다롭고 아무나 설립허가를 내주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학교의 재단 설립을 위해서는 설립자의 사명감 혹은 소명의식이 없다면 파행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일반 사립대학의 몇몇 재단을 보면 학내의 재단 분규가 거의 재산 다툼이 대부분입니다. 즉 학교를 설립하고 학교를 통하여 잇권 사업처럼 여기니 복마전 같은 사학 재단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학교가 난립하고 학교 재단의 재산 다툼이 벌어지면 학교의 교육은 그야말로 개똥 차반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이 피해는 인생에 있어서 회복 불가능하다는 절명적 사실입니다. 부실한 재단의 파행적인 학교 운영을 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등록금 장사를 하는 재단의 난립이 대학이라는 질적 수준을 추락시키고 있고 그야말로 졸업장 장사를 하기 바쁜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봤거든요. 아니 지금도 다수의 학교 재단을 보면  투명하지 못한 회계 처리와 친인척들이 포진한 사학 재단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학내 분규의 상쟁의 1차적인 피해자는 학생일 것이며 지역 사회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동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꼴입니다. 부실한 재단이 운영하는 대학들이 과연 대학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을는지 상당히 의문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학내 분규의 재산 싸움을 하는 대학을 보면 설립자의 면면을 살펴보게 됩니다. 대부분 지역 유지급이나 철저히 기득권 세력들이거든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 해도 국회에 진출한 재단 관계자나 설립자들이 그렇게 반대를 하고 저지하는 이유가 바로 학교 장사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막으려 하고 그러니 학교 장사 속이고 돈만 쫓아가는 대학의 실정은 학생들의 부담으로 학부모의 부담으로 나아가 국가 전체의 부담으로 지워지는 꼴입니다. 그렇게 비싼 등록금의 인플레가 가속화되면 자연히 학생들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치명적인 삶의 순환이 어그러질 것입니다.  어쩌면 대학별곡에서 나오는 학생들은 한편으론 시대를 잘 타고났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아니 최소한 지금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파행의 모습은 소설 속에는 전혀 나오지 않으니까요. 또한 대학별곡이란 소설에서는 청년들이 요즘처럼 뭘 먹고살아야 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학시절의 낭만이라면 낭만이고 젊은 시절의 치열한 고뇌와 아픔과 사유와 철학의 이상을 드라마와 같이 펼칩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때가 오히려 더 나은 건지도 모릅니다. 무슨 스펙과 경험을 쌓아야 하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게 각종 활동을 하며 내가 당신들에게 마음에 들 수 있게 이런저런 업적을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요즘처럼 대학생들이 대학별곡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정말 배부른 놈들의 넋두리쯤으로 여길지도 것만 같습니다. 왜냐면 그때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대학이란 졸업장 하나만으로도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통계에 보니까 아이 하나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대학까지 보낼 때까지 비용을 계산해보니 1인당 평균 2억 8천만 원이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여기에서 교육비의 비중이 반 이상을 차지할 거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금액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생각해봐도 당장에 집에 딸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전혀 근거 없고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양육비나 교육비가 고정 비용이 아니라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는 증가비용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급여나 수입이 이에 맞춰 비례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젊은 친구들이 결혼해서 아이라도 낳으려면 그야말로 모험 같은 일을 해야 겨우 충당할 수 있을까 말까 합니다. 치쏟는 전셋값에 무지막지한 결혼 비용에 학교 다니면서 남겨진 학자금 대출에 이중 삼중고의 푸어 생활인데 결혼 따위? 결혼했다 치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 자체가 들기 어렵습니다. 당장에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아이 하나 더 낳아서 감당해야 할 비용은 임계치를 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출산율이 자꾸 떨어져서 이제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신기록 경신중입니다. 출산율 감소는 당연히 취학인구의 감소로 나타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도 초등학생의 학급 수만 보더라도 확연하게 차이 납니다. 이런 건 딱히 통계수치를 찾아 보지 않더라도 실체적으로 체감되는 숫자들이거든요. 이미 유치원이 입학 아이들 부족으로 문을 닫고 어린이집이 운영난으로 패업을 합니다. 이미 시골 초등학교는 폐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도시 내의 학교조차 폐교의 위기에 처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요. 그럼 다음은 중고등학교로 옮겨 간다는 의미이고 다음은 바로 대학입니다. 취학생의 부족은 그리 먼 미래도 아닙니다. 앞으로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방 소재 대학부터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이미 교육사업의 구조조정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더 확대되고 심화될 것이 자명합니다. 정원 감축도 어느 정도 학교가 운영 유지되는 수에서 결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이 없는 대학이나 학교를 운영 유지할 학생 수의 부족은 결국 경쟁력이나 지명도가 낮은 대학일수록 문을 닫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사회가 역동성의 침체와 침체의 악순환에 빠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앞으로 미래의 세대에게 지금의 악순환의 영향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지요?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익에 편승한 국가의 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은 단순히 취업훈련소의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 본래의 출발이었습니다. 기록을 검색해서 찾아보면 이슬람권에서 최초설 인도에서 설립설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체계를 갖춘 대학은 이탈리아에서 1088년 블로냐 대학이라고 나오던데, 근대에 이르러 시스템이 확립되었더군요. 그 목적으로는 인격과 학문이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취업 따위는 없었거든요. 지금처럼 학력만 인플레 현상이 벌어지지 학문의 인플레 현상은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지식과 지성의 고도 화보다는 그저 타이틀이 먼저이듯 졸업장이라는 자격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꼴이 된 것이니까요. 취학 연령 중에서 80%가 대학(전문까지 포함)을 간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입니다. 이렇게 언제까지 타이틀의 경쟁이 치열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요. 사람이 사람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회는 껍데기의 포장에 유난히 더 매몰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마 앞으로 다시 대학별곡에서 나오는 것처럼 대학생들의 철학과 사유가 일어나는 현실을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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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7-03-24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글 읽으면서 철학없는 세상 탓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에 그 얘기가 나오네요. 어제 고3 아들을 둔 언니랑 통화하며 내내 유레카님 얘기와 거의 똑같은 얘길 했지요. 요즘 아이들이 참 짠하다고. 낭만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엾은 청춘들.

yureka01 2017-03-24 12:0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저도 고삼둔 학부모이다 보니 체감중입니다...
책의 띠지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세대가 바뀌어도 문화가 발달해도 대학에의 낭만은 영원하다˝
과연 지금의 시대의 모습에서 대학의 낭만이 영원하게 보이지 않는 현실을 느끼게 됩니다...

samadhi(眞我) 2017-03-24 12:20   좋아요 1 | URL
저는 대학을 워낙 즐겁게 다녀서 누구에게나 대학을 꼭 가라고 권하곤 했었죠. 근데 지금은 직업학교와 다를 바 없는 대학엘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어요.

yureka01 2017-03-24 12:26   좋아요 1 | URL
저도 특별히 즐거운 것은 별로 없었는데,
학교 도서관이 제일 좋더라구요..ㅎㅎㅎ

책읽는 낙로 살았습니다~^^.주로 소설책 ㅎㅎㅎ

samadhi(眞我) 2017-03-24 12:37   좋아요 1 | URL
인문학이 뜨는 시대지만 누구나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양서 못지 않게 가치있는 것이 소설이라 믿거든요.

yureka01 2017-03-24 12:43   좋아요 1 | URL
하기야 그 때 시절에 소설책은 제가 특별히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재미로 ^^...물론 재미라고는 하지만 인간성의 접근이랄까 삶의 깊은 레파토리의
간접 경험으려 삼으려 했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설책하고는 담 쌓고 살았습니다...ㄷㄷㄷ

samadhi(眞我) 2017-03-24 12:57   좋아요 0 | URL
소설은 재미, 그 맛으로 읽는게 맞죠. 재밌는 소설 발견했을 때 정말 행복해요. 그러고 나면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이 부럽답니다.

yureka01 2017-03-24 13:01   좋아요 0 | URL
ㅎㅎ그러게요.
아마 그 즈음에 나온 이외수 소설은 최고였습니다^^..ㅎㅎㅎ

samadhi(眞我) 2017-03-24 13:06   좋아요 2 | URL
저는 이외수 「들개」를 2000년대에 읽었지만 혹시 그책이 그 즈음에 나온건 아닌가 싶네요. 이외수 소설은 「들개」가 저는 제일 좋더라구요.

yureka01 2017-03-24 13:15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이외수 소설이 뭐랄까,, 도나 선의 사상같이 독특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4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 졸병시대 ! 읽진 않았지만... 그 제목 생각납니다.. ㅋㅋ

yureka01 2017-03-24 13:15   좋아요 2 | URL
오래된 소설이죠..군대 이야기의 소설...소설도 추억이었어요^^..

hnine 2017-03-24 1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언제적 책인가요. 저는 대학을 졸업한지 한참 되었을때임에도 이 책 읽었거든요.
오늘 뉴스 보니까 대학진학률이 취업률보다 높다던데, 그러니 대학 졸업후 취업난을 겪어내야 하는 일이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몇년 후를 예측할 수 없어서 저는 제 아이 (고1) 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고 자신있게 닥달도 못하네요.

yureka01 2017-03-24 13:19   좋아요 2 | URL
8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었습니다..ㅎㅎㅎㅎ

아마 it 기술이나 자동화 기술,인공지능 기술이 발달 할수록 사람이 하는 일이 점점 줄어 들 것입니다.

기업들도 상용 정규직을 뽑지 않고 임시 땜빵용으로 임시직만 뽑고 말죠....

그러니 점점 더 문이 좁아질 것입니다...더 어려워지겠지요.....아이들 생각하면 걱정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4 15: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 유레카님 책장에는 추억을 머금은 책들이 많이 있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3년이 되도 1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은 평생 읽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처분하는 편이라 유레카님 같은 추억이 담긴 책은 없는 편입니다. 부럽습니다. 유레카님께서 말씀하신 학원화된 대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한편으로는 지난 촛불 집회 때 우리 모두가 ‘아침이슬‘, ‘광야에서‘ 등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대학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대학진학을 통해서 직간접적인 집회문화의 영향을 받았기에, 처음보는 이들도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다면 높은 대학진학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사교육비 등이 문제 아닐까... 그런 짧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yureka01 2017-03-24 16:03   좋아요 4 | URL
오래된 책이라서 책을 다시 주문했습니다.다행히 재고가 있었던.ㅎㅎㅎ
네 공감됩니다. 대학의 수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게 맞죠.교육열이 높은 것과 비정상적인 사교육의 문제는 다르니까요. 딸아이가 고삼이다보니 사교육이 참 고민이더군요.공교육이 학습의 질적 수준을 채울수 없는 부분도 관계가 있어서요..참 어렵더군요..

2017-03-27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7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