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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신의 쫄병시대라는 작품은 알라딘에 조회해도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 검색해서 찾아보니 인터넷에 표지가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이 소설을 군 입대 전에 읽었던 터라 소설의 줄거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제목만큼은 또렷하다. 이 소설과 더불어 이문열의 등단작인 세하곡도 군대 소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군대를 주제로 소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다. 남자들의 술 한잔 걸치고 나서 나오는 레퍼토리가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는 통설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가급적 군대 이야기는 참 꺼내기 부끄럽기도 하고 군대 이야기를 하면 뭐랄까 약간은 수치스러움이 있다. 3년간 끌려갔다 온 남자들의 시집살이에 대한 고생담 따위는 꺼집어 내고 싶지도 않았다.(축구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웬만한 일 아니고서는 당최 군대 이야기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싫었다. 그 지긋지긋함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고역을 추억한다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나 다름없기도 하다. 마치 꿈속의 악몽을 되새겨야 하는 무서움이랄까. 아니면 모종의 억울한 이야기들이야 신선하지도 않다. 여하튼 적어도 나에게 군대의 고생담이 담긴 추억을 들추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고생이 무슨 자랑도 아니고 그렇게 억지로 뒤집어쓴 모자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부자연스러운 미소의 그 이면에는 슬픔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말 싫었다. 너무너무. 입대할 때가 1988년 광복절 다음날. 그날 입대하러 가는 버스 속에서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연발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우울했었으니 어떻게 다시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억울했다. 신체검사 받으러 갔을 때 현역과 방위를 구분하는데 함께 갔던 수백명의 동기들 거의 대부분이 방위였는데 나 혼자 현역 판정이었던 거다.ㅎㅎㅎ 뭔가 잘못된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뒤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기들 전부 방위 갈 때 혼자 졸라 쓸쓸하게 강원도 보충대로 갔었다. (지역 내 군부대가 많았으니 지역 자원은 지역에서 충당하는 제도가 방위였다.) 유독 나 혼자만 현역이라니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던 터라 더 우울했었던 지도 모른다. 18개월과 27개월이란 시간적 차이도 물론이고 게다가 집 근처가 아니라 강원도였으니 그 이질적 공간의 질려 버림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추측은 되지만 확정적 물증은 없었으니까. 수백 명이 동시에 신체검사받고 판정이 나온 자리 얼마나 졸았겠는가. 그때는 그랬다. 군대를 입대하는 게 아니라 잡혀 간다는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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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군대에 대한 모든 일들을 전혀 입 밖에 내뱉고 싶지 않았는데 딱 한가지 기억이 아름답게 각인된 추억이 하나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맞이하는 아침에 밤새 근무하고 먼 동이 터올 무렵. 강원도의 산하는 운해를 이루는 장관을 매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아침의 여명, 점점 밝아 오며 일렁이는 구름의 파도는 산을 넘어가는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무 때나 가볼 수 없는 곳이기에 혹은, 그때는 그렇게 아름다운 줄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강원도 산꼭대기에서 만난 운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쩌나 그 운해의 강원도 아침이 그립던지. 가끔 자다가 꿈을 꾸면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이 서 있었던 그 구름의 바다는 내가 군 생활에서 제일 값진 소득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거 딱 한가지 빼고 나머지는 추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시절은 어찌나 우울했던지. 그런데 차라리 지나고 보니 그때 시절은 또 왜 다시 그리워질러는 건지 참 모를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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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생각해보면 자의적인 선택이 없다는 것은 억울한 거다. 의무라는 것의 필수적 상황에 놓인 거라는 사실은 선택의 여지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의 억울함이다. 마치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국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던 것. 어쩌면 이게 한국의 남자들의 태생적인 비선택이 주는 억울함일 테고.
그런데 이렇게 선택할 수 없었던 강제적인 의무에 대해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고 주장하고 해명해야 할 때 이 비선택에 대해 까임을 당하면 이게 또 얼마나 억울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을 바로 휴학시키고 징집시켜 군대에서 사상교육을 하고 혹은 프락치로 삼으려 했던 의도가 바로 녹화사업이었는데, 이왕 갔던 군대에서 열심히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 비난하는 짓은 참으로 비겁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까고 까서 지지율을 떨어지도록 만들고 싶었겠지만 닥치는 대로 던지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너무 아니다. 그 전후 관계와 이치와 논리를 따져 봤을 때, 까임의 대상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야 한다. 분명 잘못 건드렸다. 이제 하다 하다 군필의 애국심과 우수한 근무에 받은 표창으로 까이다니, 처음엔 웃음이 났다가 이내 짜증과 화가 났다. 건들지 말아야할 것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 그릇의 크기가 보였다. 다음에도 없을 것이다. 간장 종지의 밑천은 금방 들어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