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나의 한살매
백기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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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제 밥그릇 찾기 바쁘고 제 살길 곤궁히 쫓는 이 시대에, 그는 마치 초계의 마음에 놓은 산맥 줄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그 기백이 바로 이름에서 말하는 백두산을 닮은 백기완이었다. 한 번도 제도권 내에 들어서 부귀나 영화를 누려 본 적도 없고 두 다리 뻗고 편한 삶 살기를 거부하는 그의 참살이 저항정신. 중동의 사막에 예수가 있다면 이 한반도에는 백기완이 있다. 박정희 유신시절에 받은 핍박과 지금 그의 딸로부터 받는 부조리함의 세상에서 그는 얼마나 염증을 낼 것이며 얼마나 전열을 다시 다질 것인가 생각하니 참 먹먹할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을 감히 펼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마이너 리그의 빛나는 아이콘은 아닐까.

올해로 그의 나이 80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끝없이 부조리와 싸운다. 그렇기에 80의 노구를 이끌고 계속 나오게 했어야만 하는지, 상당히 민망하기도 하거니와 다시 한 번 더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젠 편히 쉬시라고 말했다간 아직도 멀었다며 불호령이 내릴 것만 같아 연민스럽다. 왜 이렇게까지 나오시게 할 수밖에 없는 당대 세대들의 책임 앞에서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임은 틀림없다. 일생으로 점철된 고난과 시련, 끝없는 투쟁, 아직도 노구를 이끌고 전면에 서서 나오는 백발의 준엄함. 왜 그가 그렇게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대접해줄 수밖에 없을까라는 일종의 연민과 위로. 이런 복합적인 것들로 인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 어떤 느낌인지 알았어도 나는 쉽게 이 책을 펼치기를 두려워했다.

 

인생의 갈피는 무엇으로 잡는 것일까? 혹여나 자신의 삶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말은 가끔 듣긴 하지만, 이 갈피라는 방향성에서 곰곰히 자신에게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생 갈피, 즉 방향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인생 궤적은 한결같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갈팡질팡도 아닌, 오직 민중의 삶을 위한 자신의 헌신만이 그를 살리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과연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했다. 그의 몸이 으스러지도록 모진 고문에 모멸을 준다 한들 그의 삶을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선비를 닮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정신이 무엇인가 말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백기완을 떠올린다. 지조와 한결같음이 그의 내면의 심장에는 문신처럼, 생의 근육질을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대학 시절에 김지하의 오적을 읽고 이 땅에 도적떼가 왜 그리 설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지금 김지하는 달라졌다. 일전에 믿기지 않게도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 작가는 박근혜의 정부를 믿음직스럽다고까지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의아스러웠고 믿을 수 없었다.(관련 신문을 검색해보시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의 조정래는 다시 발자취를 바꿔 다른 걸음을 밟는다.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늙음이란 것이 지난 세월을 부정하는 삶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백기완은 대나무처럼 푸르름을 읽지 않고 아직도 재야의 사자처럼 그의 흰머리는 사자의 갈기처럼 휘날리며 맨 앞장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를 우리들에게 일갈하고 있지 않는가.

그의 평생소원이 통일이었다. 분단된 나라에 태어난 국민 전체가 통일에서만큼은 불행한 역사를 살고 있다. 당연히 그의 소원은 첫째가 통일이었을 것이다.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이 이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과연 권력을 모아놓고 이 권력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라는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권력이란 것과 남한의 권력이라는 것의 이 권력의 힘은 무엇을 위해 사용돼야 할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지만, 이 역시 아직 그의 노력은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 노고를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일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은 권력이란 힘의 독점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권력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길이 곧 통일의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북한과 남한의 합작된 통일된 민주주의 국가를 그리워하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의 삶을 증명하며 일대기의 큰 획으로 은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 그의 가르침이 더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는 이 시대의 등불을 치켜든 인도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통일과 분권과 민주와 노동의 모든 밑바닥의 울분이 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그의 삶은 그야말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투신하는 그 불굴의 꺾이지 않는 정신에 있다.

 

PS : 이 책은 얼마 전에 알라딘 서재 이웃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이었다. 이 리뷰를 통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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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1-09 0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77세 박찬종 정치인(이제는 변호사...이 연세에도 변호사@@;)이 김어준과 인터뷰 하는데 정치 판단과 기개가 청년 못지 않은 걸 보며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쓴맛을 보며 정치에서 물러나야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물러나야 했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김어준 파파이스 나와서 인터뷰 한 것도 참 울림이 깊었습니다. 검찰 보고 사랑한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잘 해라 그러는데....ㅜㅜ

yureka01 2016-11-09 00:25   좋아요 3 | URL
아고 그러게 말입니다....요즘 우리 사회의 비참한 민낯을 마주하는 기분 가시질 않네요.

고작 이러려고 그렇게 민주주의를 외쳤던가..라는 허탈감이랄까요...

커피소년 2016-11-09 09:42   좋아요 3 | URL
그런 분들을 볼 때 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쌓은 노하우와 삶에서 체득한 깊은 철학적 사유에 젊은이의 패기를 동시에 겸비한다면.. 그 보다 좋을 것이 있을까요...

겨울호랑이 2016-11-09 06: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백기완 선생님의 아들 되시는 분께 「자본론」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20년 전 자본주의 제도의 대안으로 생태자본주의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yureka01 2016-11-09 09:06   좋아요 2 | URL
오 생태자본주의 이거 무척 쌈빡한데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커피소년 2016-11-09 09:57   좋아요 2 | URL
백기완 선생님 자녀분의 강의를... 정말 좋은 수업을 받으신 것 같네요.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대단한 혜안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군요..

20년 전이면... 그 때는 자본주의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던 때였지요...

놀랍네요...

yureka01 2016-11-09 10:00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역시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게 됩니다..^^..

2016-11-09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9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9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9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1-09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정래, 시대의 어른 흉내 내는 것 보면 좀 역겹죠..

yureka01 2016-11-09 10:11   좋아요 0 | URL
늙어 가는 시간의 아노미 상태였던가 싶었습니다.....
정녕 태백산맥을 쓴 저자가 맞나 싶었죠...

나와같다면 2016-11-09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자 나지막이 노래 불러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yureka01 2016-11-09 17:37   좋아요 1 | URL
노래만 들어도 울컥해지는 요즘 기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