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자마자 바로 읽었다. 아니 읽었다라는 표현보다는 책을 읽듯이 봤다가 정확한 뜻이겠다. 사진 에세이는 텍스트가 적고 사진이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하니까 봤다가 맞겠다. 금방 읽고 봤는데, 첫인상은 뭐랄까 참 신났다 였으니까.
사진은 전반적으로 유쾌하기도 하고 상큼하기도 하였다. 저자 머스터드는 자신의 모습을 콘셉트를 잡고 사진 찍히고 자신의 모습을 사진집으로 꾸몄다. 작가의 실명은 프로필에서도 없고 사진 책은 본인이 직접 독립출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책의 저자 프로필도 의미론적인 소개만 있을 뿐 무얼 하는지 어떤 삶인지도 모르겠던데 사진 속에서 발랄한 아가씨가 사진으로 아주 희귀하게도 웃긴다. 사진 보고 웃어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킥킥거리며 그 작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만들게 했다.
이때까지 외국이나 국내 사진작가의 사진을 많이 봐왔지만(많이도 엄청나게 많이) 하나같이 심각병에 걸린 환자처럼 끙끙 앓아 가는데 어떻게 이 작가 아가씨 "머스터드"는 심각병은 잠시 내려놓고 사진을 보고 웃을 것을 요구하고 실제 사진을 보면 웃게 만드는 콘셉트의 힘을 느끼고 이 힘이 전해 오는듯하다. 사진의 발상에 대단한 칭찬을 건네주고 싶다.
한참 웃었다. 기발해서 웃었고, 발칙하게 까불며 노는 장면들이 웃었다. 개그맨의 허슬립틱한 실없는 웃음이 아니라 흐뭇하고 밝은, 그리고 뒤끝 없이 청명한 이슬을 닮은 상큼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사진을 참 재미있게 연출하였음을 직감한다.
사진 분야에서 크게 뭉덩거려서 3개의 파트로 나누어 보자면,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첫째는 사진을 매게로 인한 심각성이다. 즉, 세계의 심각 증상이 사진에 고스란히 기록된 말기적인 증상의 토로이자 표현이었다. 기아와 가난, 부조리한 환경과 삶의 모순, 몰이성과 집단 지성의 몰락, 그리고 비합리적인 광기의 시대를 그대로 담는 다큐 분야의 사진은 보도 사진을 비롯해서 그렇게 대단히 심각한 현상을 사진에서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사진을 보고 웃을 수도 없는 머리를 싸매는 고민들이 넘쳐난다. 사진은 그래서 다만 힘없이 표현만 하는 한계를 느끼고 이 한계에 좌절하게 된다. 비참하게 사진을 지켜봐도 사진으로 자체는 손 쓸 방도는 사실 없다. 끊임없이 지적만 할 뿐이다.
둘째는, 사진에 있어서 회화적인 추상성, 흔히 미학적인 심미성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런 미학적인 화풍을 닮은 사진에 있어서 심미적 추상성은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허물고 사진이 사진의 실제성과 벗어난 초현실적인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사진을 말한다. 왠만한 사진의 고도화된 시선이 아니고서는 이런 추상적인 사진은 이해도 어렵기도 하거니와 선 듯 와 닿지도 않는 형태의 이미지들이다. 회화적인 깊은 심도의 시선이 없이는 사진을 도통 이해가 어렵기만 하기도 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는, 일반적인 아마추어들의 즐기는 사진들이다. 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스마트폰에 담긴 렌즈와 카메라 기능으로 인하여 인스턴트화된 급조된 이미지의 생산일 것이다. 일상의 기록과 일반적인 사진의 활용과 같이 각종 기념하는 그런 일상의 이야기가 담기고 개별적인 각개화된 추억의 집적된 사진을 말한다.
(광고나 상업용 사진 분야도 있지만 예외로 하자. 사진의 죄종 목적이 돈벌이용 사진은 철저히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부합된 사진이므로 굳이 언급할 사진적인 의미는 없다.)
확실히 신선한 느낌이랄까. 약간은 장난기가 묻어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장난기가 사진으로 잘 논다는 것과 더불어서, 놀 때는 자신의 콘셉트와 놀기에 대한 밑그림을 코믹과 재치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논다는 점이다. 창작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곧 창작이 되는 발상의 힘이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일종의 자기 놀이의 한 방편이라는 점도 있다. 참 발랄하면서도 즐거움이 묻어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살아갈 세상이 그닥 간단하지도 않고 때로는 상당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과도한 학비와 불확실한 미래, 재산의 축적은 고사하고 가난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미미한 현실, 치열한 경쟁 구도와 치열한 구도를 뚫고 달성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보상도 적다. 흔히 전쟁 때 겨우 쌀밥도 못 먹고 자랐던 위 세대의 어려움과는 비교가 안된다고는 하나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사진의 즐거운 메시지에 대한 애쓴다는 인상을 받는다. 차라리 이왕 어려운 것이라면 애써 찾으려는 발상이 참 신선했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작용이 사진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언 듯 가볍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급한 대로 사전에 치밀한 밑그림을 잡고 계산했다는 것. 사진을 계산하고 미리 마인드 컨트롤로 예행연습하듯이 먼저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실행으로 옮기는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똑똑한 친구임을 직감한다. 뭔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정립시켜 나갈 의미의 시선을 사진에 넣을 수 있는 발상이 대단해 보인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추구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사진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드물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담으려 했을까. 사소한 것으로도 자신의 생각을 끌어올리고 표현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바로 이런 것이 새로운 창조성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사진에서는 심각병은 없다. 그러나 심각병 대신에 주장하는 화두가 상당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 시적인 문학 요소도 엿보이고 사진의 연출력을 돋보이게 하는 각종 소품들의 활용도도 높다. 주제와 부제의 간극도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특히 이 포토에세이는 작가의 독립출판 형식으로 발간했다. 책의 날개 말미에는 돈벌이 용이 아니라고 적혀 있다. 결국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어낸 생각을 책으로 낼만큼 강고한 자기주장도 있다. 요즘처럼 사진 책이 나오기 상당히 어려운 현실이고 보면 이 책이 얼마나 팔릴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명세 높은 선두그룹 작가도 경제적인 난관에 봉착해 있는 마당에 책으로 자신의 비용과 지원을 받아 낼 수 있고 보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기쁘다. 어렵더라도 사진은 이렇게 꾸준하게 퍼블리싱이 되어야 한다. 오래전에는 텍스트의 시대였지만 오늘날처럼 이미지의 시각적인 시대로 변화했다고는 하나, 그 생산자의 입지는 그렇게 변한 시대에 걸맞게 올라가지가 않기 때문에라도 특히 사진을 찍고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이 책이라도 많이 사봤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어느 사진작가는 말하기를,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진열장에 카메라가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어도 카메라보다 책장에 꼽혀 있는 사진 책을 먼저 찾는다고 했다. 역시나 인류의 모든 문화적인 총아는 사진마저도 텍스트화되고 이미지의 전시로 나타나기 때문에 취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작가처럼 사진 찍기 전에 먼저 미리 자신이 무슨 사진을 찍겠다는 선행학습을 하듯이 책이란 선행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좋아한다면 깊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넓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의 깊이는 사진의 다양한 섭렵 또한 필수적이지 않을까 한다. 이 시대의 화두가 무엇인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각의 개인의 추구하는 화두같은 이야기는 무엇이라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비극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다. 따라서 사실 사진 관심 없는 사람은 사진 책 따위는 안 봐도 된다. 그러나 적어도 관심과 애정이 있는 곳에 대한 시선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이해할 수는 없다. 새로운 발상의 시선의 참신성을 느끼고 내제 시키면서 앞으로의 내 시선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 넣는 동기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좋은 사진이란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진부하지 않고 식상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는 참신성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선의 보는 것은 사진의 훌륭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뭐라도 배우면서 익혀야 학이고 습이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기를 못하는 것도, 배우지도 않고 익히기만 하는 것도 올바른 공부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학습이란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사진도 마찬가지다. 배우고 배운 것을 실전에서 익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참신한 발견도 어렵고 늘 누군가 먼저 찍어 댔던 뻔한 것들만 보이고 찍고 그냥저냥 재미없네라는 식으로 흐지부지하게 된다. 흐지부지할 사진에 카메라는 또 좀 비싼 도구이던가 말이다.
나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책으로 접하고 이론과 실전을 배우고 사진을 찍어 옴으로써 익히려 했다. .(물론 전공자만큼은 아닐 것이겠지만.) 이때까지 사진 책을 봤던 분량도 상당하다. 사진 찍는 것도 찍는 것이지만, 사진 책을 통하여 간접적인 경험을 하고 그들의 고민과 사진 작업을 간접적으로 만나 보면 결국은 내가 찍는 사진에 반영이 되고 참조될 것이란 이유였다. 기백 만원씩이나 하는 카메라는 도구이므로 필수적으로 필요하니까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도구라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표현의 방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이다. 미학에 감성이 메말라서 나오는 것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이미지일 뿐이다. 단순한 이미지를 위해서 수백만 원씩 하는 카메라가 굳이 있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나 카메라에게 미안하지는 않을까 한다. 사진을 찍는 분들이라면 꼭 사진 책을 일 년에 서너 권은 구매해서 사보길 권한다. 그렇게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고 한두 권씩 보노라면 어느덧 10년 20년이 지나서 자신의 사진에 큰 산맥을 발견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물론 작은 뒷동산처럼 구릉에서 사부작사부작 놀아도 나쁠 것은 없지만 남아 있는 감성은 없다.
이번에 읽고 감상한 포토에세이 책 '그렇게, 웃어줘'라는 책은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사진계에서는 주류를 형성하는 사진작가는 아니었다. 더욱이 sns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담는 작가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콘셉트를 더하여 자신의 연기와 연출을 하며 표현하는 퍼포먼스의 성격은 순간적인 무용처럼 사진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기성의 것에 물들지 않는 순수함으로 만들어진 작가 아가씨의 발상은 그래서 더 찬사를 건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고 책의 제목처럼 그렇게 웃어 달라는 요구가 썩 나쁘지 않았다. 아 정말 등이라도 토닥토닥 거려 주며 "잘 했어." 이렇게 전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자기 발전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