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만 시인의 첫 시집이라고
한다. 그것도
나이가 무려 쉰일곱에 첫 시집이다. 나이 57에
처음 시집을 낸 것에 대한 알게 모르게 어떤 추측을 하게 된다. (약간은
통속적이긴 하지만,)
학창시절, 문학을 꿈꾸는
청년. 소위
문청이라고 하지.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하고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문학의 꿈보다는 당장에 먹거리를 해결해야
하니 그렇게
문학의 꿈은 증발되었고, 살다 보니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때의 문청의 염원은 먼 추억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나이 들어 갈수록 꿈틀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 나오는 울음을, 자꾸 튀어나오는 문학의 울림을 도저히
외면하기 어렵다. 자꾸 울게 된다.
자꾸 토해내지 않으면 정신병이라도 걸린
양, 사람의 기력이 쇠잔해짐으로 본능은 피할 수가 없다. 그동안 꾸역
꾸역 낙서처럼 흘려 쓴 노트의 언어들이 다듬어지고 고쳐지고 새롭게 덧대니 환갑을 얼마
두지 않은 나이에 드디어 용기를 얻는다.
무얼 주저하는가? 시집을 내자. 그동안
속으로만 울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고백하자. 우리가 살면
얼마 살 거며 좋아봐야 얼마나 좋을 건가, 이대로 못하고 가버리면 난 속이 뒤틀려 도저히 미련을 버릴 수가 없다. 늙어가는 나이의 잠재된, 그 꿈의
문학은 이렇게
잉태되고 울음처럼 시어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어쩌면 그의 문학은 그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이라 얼마나 감격했을까? 안 봐도
비디오 시나리오가 한가득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찌
그의 시집 한 권을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살아 오면서
시에 대한 갈망. 꿈의 지극함. 자신의 모든 언어를 한 권으로 압축시켰을 감동은 늦을수록
빨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란색이라는
꿈과 기억됨을 상징 하는 것처럼, 겉 표지가
빨강보다도 수만 배나 더 강렬하게 다가온 이유이다.
꿈이 있는 자는 늙어도 늙지 않는다.
그것도 문학의 꿈이었으니까.
그래, 사는 게 뭐길래 우리는 사는 게
뭐라고 자꾸 묻는다.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삶이 무엇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 무엇은 도통 알 수가 없다. 각자의 그
무엇은 도저히 살아 보지 않으면 논리로도 설명도 부족하기 마련이고 오히려 와 닿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무엇이라는 것이 모두가 다른
삶일 수밖에 없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내 삶의 무엇을 이야기하고 겹쳐지는
교집합과 어우리지는 합집합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가 있다. 비슷하거나
혹은 전혀 다르거나 단 한 번의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이 지구 상에서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고 계속되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짝 엿보는 것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사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저 돈이나 벌려고 일이나 하고 밥이나 먹고살았던 게 별반 다르지 않는다면 참 사는 게
뭐기는,,,, 조까튼 거지.
눈빛에서 나온 15번째 시리즈
사진집. 이제 이
책으로 눈빛에서 나온 시리즈 사진집을 전권! 구매했다. 앞으로는
새로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즉각 사진집을 보도록 하겠다.
살면 살수록 미궁에 빠지는 질문이
늘어나듯이, 사진도 이와 비슷하더라. 사진을 보면
볼수록 사진은 점점 더 모르겠고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의 일반적인 편견의 관념을 벗어나면 사진은
특별함으로 둔갑되니 더더욱 모를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사진 작품을 보고 그
속에서 내가 찾고 싶은 사진의 이야기를 만날 가능성은 보지 않는 것 보다는 더 농후하다. 애써 찍은
사진들이 사장되지 않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와 내 앞에 다가올 때,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진의 반은
이룬다고 믿는다. 그 나머지의
반은 내가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고 앞으로도 사진집이 꾸준히 나온다면 여측 없이 보게 될 것이다.
요즘 드론이 뜬다.
사진으로도!
대학 입학해서 제일 많이 갔었던 곳이
도서관이었다. 그동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책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밥만 먹고
책만 읽고 살았으면 천상 백면서생으로 살아도 무슨 불만이 없을 것만 같았던 어린 나이. 하기야 학교
도서관에 엄청난 서고의 장서를 보고 약간은 흥분되고 감격으로 눈꺼풀이 붉어졌던 이유. 그만큼 목이
말랐던 것이었을 테다. 갈증. 끝도
없이 밀려드는 타는 목을 적실 것이 책이었으니, 한 세상
무지렁이로 살아도 누가 탓할 것도 없고 일자 무식으로 오로지 일만 하고 밥 먹고살아도 뭐랄 것도 없다.
그런데 이놈의 갈증은 도무지 해갈할
수없는 내 몸의 수분과도 같았으니 늘 말라가는 마음의 한구석은 책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이 들어가고 야금 야금 적금한
것 가지고 시골 산자락 아래 작은 작업실 하나 만들어 책이라도 가득 채워 넣고 사진이라도
걸어 놓고 커피라도 타 마시려던 꿈을 유보시켰을 때는 무척이나 상실감이 컸다. (이사한다고 부족한 주택 마련을 위해
주택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기 싫어서 몽땅 털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쏠쏠하게 이런 책을 보고 그나마
다소 위로를 받고 읽은 책에서 영감을 얻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라는 꿈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책은 내
꿈의 대리만족의 한 수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