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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날들
이상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사진인데, 사진을 자주 찍으러 못 나가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아무런 때라도 카메라 들고 훌쩍 떠날 수 없다. 게다가 삶이란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일 멋진 인생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게 정답이겠지만 대부분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슨 떼부자가 아닌 담에야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사는데 소비시켜야만 하다 보니 싫고 좋고 가 없다. 취향으로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게 아니란 거였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도 부족하니, 대신에 사진 또는 사진 관련 글이 많은 에세이류의 책을 지독하게 편식 중이다. 다른 책은 눈에 거의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또한, 다른 여타 블로그 사진도 많이 감상하곤 하지만 아무래도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은 대부분 시간적인 휘발성이 강해서 지나면 그만이라서 다시 찾아 본다는 것도 역시 시간적인 한계가 있고 블로그 사진은 아무래도 뭔가 진한 진액 같은 것도 찾기도 어렵다. 그러니 자연히 사진 책을 자주 보고 읽는 방향으로 치중하게 된다.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과도 비슷하다. 앞으로도 사진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란 짐작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사진으로 책을 만드는 것은 기획하여 원고를 단시간에 만들어 출판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사진이란 원재료가 오랜 기간 동안 걸쳐서 나와야만 가능하다. 사진이 곧 시간의 압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몇 날 며칠 동안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꾸준히 사진을 찍고 사진의 감성에 글을 덧대져야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원고가 나온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동안 책을 내겠다고 원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일상에서 꾸준한 사진 찍기와 글이 축적이 되어야 가능한, 그래서 원고로 뽑아내거나 다시 편집으로 수정하고 덧붙이거나 빼거나의 가공의 결과로써 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텍스트 글이야 기획하고 빨리 만들어 낼 수 있어도 사진은 기획하고 찍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이 책은 사소한 날들이라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사진을 찍고 내레이션 하듯이 글이 짧게 덧대져 있다. 여기서 첨부된 사진은 전부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진이란 무슨 기념적인 시간을 기억하려 기록으로 남기려 하는 주요한 목적도 있지만 여기 이 책에 나오는 사진 대부분은 일상적이고 흔한 주제들이다. 이 흔함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베어들지 못하면 무심히 지나쳐 버리고야 마는 것들의 기록인데도, 저자는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사소함들에 대해 농도를 더하고 자신의 생각에 사진을 매게로 해서 밀도를 더했다. 사소한 일상의 감각을 팽팽하게 부풀려서 흡사 밍밍한 요리에 소금을 더 넣으며 농도를 높이는 것과도 다름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우리의 삶, 대부분은 먹고사는 일에서 각자가 주어진 임무와 책임을 다하고서야 받는 대가로서의 일상들이다. 그래서 일상은 늘 일에 치이고 빨리 완수해내야 하며 크든 작든 성과로써 결과물을 보여주며 다달이 입금되는 통장에 찍힌 숫자로써 더하여지며 혹은 무슨 소비로써 빼기가 되는 적산법과 감산법에 의해 가감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시간이 참 속절없이 지나고 나면 분명 뭘 하며 살기 위해 유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이 훌쩍 건너뛴 것과 같은 황망함에 몸서리치며 세월이 빠르다는 한탄의 자조만 푸념처럼 내뱉기 일쑤이다.
인생은 거대한 맹목의 강에 조각배를 타고 떠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기야 우리의 생존이 본능적인 맹목으로 시작하였다면, 이 과정도 맹목적 과정을 거처 맹목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을 거절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맹목적 존재들이라는 거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삶의 최대 목적이 맹목적이라는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 다름 아닐 거 같더란 거다. 존재의 이유가 맹목이었으니 대부분은 지나고 난 인생의 뒤안은 허망이고 허무이고 허상처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뭐 하느라 여태까지 살아왔으며, 또 뭐 하자고 살아갈 것인지, 왜 또 기어이 사라지고야 말할 것인지에 대해서, 사진은 이런 사소한 일상의 모습에서 감각이라는 촉각의 안테나를 돌린다는 점이다. 무심하면 무심히 가버릴 수밖에 없는 일상을, 작가의 감각 안테나는 사진으로 집중하고 그런 맹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 감지하려 든다. 무심을 유심으로 바꾸고, 무의미를 유의미로 바꿈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의미에 저항하며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의 전부는 우리 일상으로 들고 다니는 핸드폰 카메라였다는 것도 상당히 의미롭다. 일상의 사소한 것을 잡아내고 감정을 쏟아내는 훌륭한 도구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으로 보여 주고 있다. 카메라를 들면 카메라의 시선과 카메라의 화각이라는 뭔가 사진 찍음에 대한 형식을 갖추게 되지만, 핸드폰의 카메라는 그런 카메라의 마음가짐이라는 형식에서 탈피하여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순간순간의 피사체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는 효율성을 나타낸다. 존재의 자각이란 가성비라는 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밀도 있게 사는 사람만이 나올 수 있는 일상의 단상은 농도가 높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일상은 참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일쑤라는 건 오늘을 산 사람이라면 대부분 크든 적든 느끼는 부분이다. 그러나 작가의 감성이나 감정은 순간순간 핸드폰의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피사체로 조준한다. 삶이란 이 거대한 허무 앞에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는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용점이 별로 크게 없다는 것들 더 크게 있음을 사소한 것들에 유념한다는 사실이다. 사진이 무슨 거창한 행사의 표상처럼 내세우지 않고도 충분히 자신의 삶에 녹여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치밀하고 세밀한 그리고 농도 진하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작가인 저자는 학교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면서도, 농촌 라이프의 삶도 산다. 얼핏 시골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의 많은 분량이 시골에서의 풀과 나무들 구름들 곤충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작아서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에 시선을 멈추고 마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일상의 사소한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삶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 낸다. 시골 라이프의 감성에 최대로 끌어올리는 추임새도 역시 술이 빠질 수 없음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라이프의 모습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느낌은 너무나도 부럽기까지 한다. 마침 저자의 노모도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나오는 모친의 상념들은 내가 당장에 모친이 치매로 병원에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동질감은 더더욱 끈끈하게 보이기도 했다. 역시 처지의 비슷함과 지향점의 비슷함은 이해라는 감성적 연대로 이어지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사진 글에서 나오는 말이 " 사는 게 별거 없다"라는 것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작가도 이 생의 달관을 이룬 느낌도 들었다. 그래 사는 게 별거 없다. 컨테이너에 누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불면으로 잠도 못 이룰 때 독한 고량주 한 잔으로 간 밤에 지나가는 비구름을 안주 삼에 보는 것도 존재의 운치를 더하고도 남는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마지못해 벌어먹고 살아도 돌아갈 시골로 작은 오두막이라도 있다면 삶에 있어서 큰 위안이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지난번에 마저 다 먹지 못한 술이 기다리고 있다면 다시 찾아갔을 때 담가 놓은 술은 또 얼마나 익었을지 조바심과 안달 내고 그런 시간의 기다림으로 한 세상 흘려 거쳐도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사는 게 별거 없다는 말. 참 와닿는다. 그래 우리 별거 없는데 왜 이렇게 별 거 있는 것을 찾으러 오늘도 헐떡 거리며 살아가는 걸까?
다음 주 휴일이 오면 시골로 머물 곳 찾으러 가야겠다. 몰론 카메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