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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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달달함이 느껴지는 책의 표지와는 달리, 이 책을 읽기전에 우선 마음가짐을 한번 단단히 먹고 첫 장을 넘기시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보면 십대의 일기장이라고 하면 뭔가 풋풋하고 순진한 느낌을 주리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이라는 문화에서 보면, 그들의 십대는 대개 이러한가? 라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 <클레브>라는 곳에 살고 있는 십대 소녀 솔랑주의 일기이다. 시대는 1980년대. 한 소녀의 비밀스러운 일기장이 공개된다.

 

이 일기장의 주된 주제라 함은 '사춘기와 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녀 솔랑주의 적나라한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열거된다. 아주 잠깐 몇번은 순진함과 귀여움에 웃은 문장도 있었으나 그 외에는 그냥 직설적이며 적나라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일기장에는 날짜가 없으며, 순수하게 그날 그날의 날씨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열거, 열거 뿐이다. 소녀 솔랑주와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비오츠라는 그녀에게 있어 의미있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나의 십대를 생각해보노라면, 나또한 그런 생각을 안 해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솔랑주처럼 이렇게 일기로 남길 생각은 할 수 조차 없었다. 그것들은 은밀한 것들이었고, 글자로 남긴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소녀 솔랑주에게 매일의 일상은 오직 성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경험하고 싶었던 첫관계는 그녀를 돌보는 남자인 비오츠라는 사람이어서 더 혐오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솔랑주를 돌봐야 했던 어른 비오츠가 성에 대해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미워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린 솔랑주보다 나이많은 그의 순수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솔랑주의 떠나겠다는 편지로 그는 자살을 결심하였으니 말이다.

 

아- 십대들의 머리속에는 어쩌면 정말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할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춘기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책으로 읽기에는 조금 버거운 적나라한 이야기였다. 어떠한 사건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솔랑주라는 한 소녀의 성과 사춘기가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어보면 되겠다. 너무 직설적인 부분이 많기에 조금 마음을 다스려 가며 읽으시길 바란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책이었는데,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은 어떤 류의 책일까 궁금하다.

 

 

 

 훨씬 더 나중에, 한 달 뒤, 일 년 뒤, 이 년 뒤, 삼 년 뒤에 열여섯 살이 되고, 열여덟 살이 될 것이다. 기다림을 참을 수 없다. 성인이 되고, 여자라고 불리고, 인생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알아야만 한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가고, 오고, 전화하고, 이야기하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p.172)

 

너는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어. 세상만사는 서로 연관 되어 있어. 우리가 반드시 그걸 알아차리지는 못하더라도 말이야. 그걸 나비 효과라고 해. 나비 한 마리가 중국에서 날갯짓을 한 번 하면 클레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는 거야. 네 인생도 비슷해. 오래전에 일어난 일, 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신 일, 중세 사람들이 한 일이 네가 상상하지 못하는 경로를 통해 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야.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지. 넌 정신적으로 해방되어야 해. 만약 뭐가 뭔지 모르면? 너는 아무에게나 들이대겠지. 이 모든 건 네가 아버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야. 그가 네 내면의 폭군인 거지.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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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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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나는 생일 미역국을 먹으면서 신랑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뉴스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방송중이었고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쉴새없이 떴지만, 곧이어 그 문구는 바뀌었다. 매년 나의 생일날에는 이 사건이 방송될것이며, 이날만은 전국민 모두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아니, 일어나서는 않될 일이다. 이 책에서 한분의 작가가 언급했던 것처럼 정말 이 일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쌓이고 쌓인 대한민국의 언젠간 일어나게 되있었을 예고된 일이었고,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침통하고 또 가슴 아픈 일이다. 4월 16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총12명의 작가, 교수분들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나자 그와 관련해서 발간한 글들로 세월호의 참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후에 이 책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 책의 판매에 따른 수익금 전액은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책의 정가도 부담스럽지 않은 5,500원이니 구입하셔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좋은 작가분들의 좋은 글들이 깨알같이 실려 있으며, 마음 속 무언가를 툭툭 건드리는 좋은 책이었다.

 

이사건 '세월호'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4월에 일어난 이 사건은 11월인 현재까지도 아직 진행중이다. 여름이 되기 전 발생했던 그 일이 추운 겨울인 현재까지도 차디찬 바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나조차도 이럴진대, 하물며 이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일이다.

 

총12명의 작가분들 중에 가장 와닿았던 글이 김연수 작가의 글이었다. '미래는 과연 과거보다 진보하는가?' 라는 주제로 한국사회를 차디차게 비판하였는데, 이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차후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오늘 보다 나을 것이라고 비판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꼭 밝혀져야 할 일들은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과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반 일리치는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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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 꽃 저승 나비 - 상
이청은 지음 / 아롬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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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 보는 듯하다. 중학생때 집근처 책대여점을 자주 들락거리며 로맨스 소설을 그토록 빌려 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그때는 만화책도 함께 자주 빌려보곤 했었는데, 다른 취미거리가 없었던 나에게 책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로맨스 소설을 그리 자주 읽지는 않는다. 이젠 나이를 먹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 한번은 아무런 생각없이 읽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순식간에 두 권을 읽었다. 역시 로맨스 소설은 금새 후다닥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책의 표지도 얼마나 달달한가. 훗. 요즘 중학생들도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는지?

 

현시대의 여자아이가 조선시대로 공간이동을 해 그시대의 자신과 똑같이 닮은 한 여인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생긴 러브스토리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영혼이 조선시대 참형하는 장면앞에 와 있었다. 그것도 투명인간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쳐 갔으며, 그녀는 자신이 공간이동을 하는 능력이 있는줄로만 알았다. 그것도 투명인간으로. 하지만 그녀의 영혼만 그곳으로 간 것으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우예곡절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여식인 김연 규수는 중전의 삼간택의 세처자 중 한명으로 뽑혔지만, 미모가 너무도 출중하다는 이유로 삼간택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임금은 김연 규수를 첫눈에 본 후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것은 김연 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연 규수는 삼간택에 떨어진 이후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에 병까지 걸려 3년동안 그리움이 극에 달하고 선비 복장으로 임금이 있는 궐로 찾아가게 되는데... 이들의 달달한 사랑은 이대로 끝나고 말 것인가?

 

이제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겨울이 온 듯한데, 그래도 아직 기분은 가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아니, 생각하고 싶다. 이 남은 가을마저 가기 전에, 달달한 로맨스 한편 읽어 보심은 어떠신지? 읽고 나면 조금 허무할지라도, 커피 한잔과 비스킷을 옆에 두고 읽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채 지나가 있을 것이다. 김연규수와 임금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사랑의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윤랑 선비의  달달한 로맨스 한편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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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바로 섰는가 - 하루를 시작한다면 마쓰시타 고노스케처럼
PHP종합연구소 엮음, 김현석.여선미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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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고노스케. 이 분에 대한 자기계발서를 몇권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이렇게 이분의 글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총365개의 각기 다른 내용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는 마쓰시타그룹의 창업자인 이분의 강연 내용중 365개를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우선 나는 한번 죽-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다시 한번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고 이 책을 내 가까이에 두고 한장씩 다시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을 많이 본 분들이시라면 조금 진부하다 느낄수도 있겠다. 여러 곳의 책에서 본 내용들과 비슷한 내용들도 많았음에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되새긴다는 기분으로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현재 살아계신 분이 아니시다. 1989년 4월에 타계하셨다고 하시는데, 내가 1982년생인걸 생각하면, 꽤 오래전 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이 분의 글은 이렇게 남아있다. 역시 세상에 그 어떤 업적을 남긴 사람은 이렇게나 무엇을 남기게 된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후에도 영원이 이분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을 테지. 특히나 일본에서 이 분에 관련된 책들은 아주 많을 것이다. 이름이 거론된 책은 수없이 많을 테고 말이다. 나 또한 이 분에 관련된 책을 몇권 만나보았으니 말해야 무엇하랴?

 

이 책은 자기계발서라는 주제도 포함하지만, 삶의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두루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회에서 성공한 리더의 말씀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가 해주시는 조언들이라고 생각하면 더 와닿을 것 같다. 또 읽으면서도 정말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리더십의 내용도 있지만, 가족에 관한 것이라거나, 삶에 있어서 빼놓지 않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글들이 참 많이 실려 있다. 그리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기도 하고 말이다. 설설 읽어 내려가면 되었다.

 

역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운이 좋거나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성공의 길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할 수많은 고난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이란 역시 모든 것이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는 것처럼 어디 하나는 부족한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되새기며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젊은이들은 '이 일은 내 성격에 안 맞아.', '저런 상사 밑에서는 도무지 일할 맛이 나지 않아.'하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의 폐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성을 찾아내는 방법은 오직 다양한 경험뿐이다. 그리고 성격과 의견이 다른 상사나 선배 밑에서 갈고닦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견고하게 키우는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p.100)

 

더 큰 행복을 추구하려면 무엇보다 생각이 올바르게 서야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어떤 존재인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에 생각이 바로 서야 한다. 생각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하는 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하며,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리더가 먼저 올바른 인간관과 사회관을 세우고, 그에 기초해 원칙과 목표를 만들 때 조직은 더욱 견고해지고 발전한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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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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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슬픔 그 자체를 안고 사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말을 섞어보지 않아도 그의 얼굴과 분위기에서 풍겨나오는 그 어떤것으로부터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사람말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인 그들도 나의 바로 옆자리에 현실로 툭. 하고 튀어 나온다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으며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 사람들..

 

항상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보는 나는 이 책도 예외가 아니듯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무심코 쓰여져 있는 전경린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본다. 작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그런식으로 진행된다면 책은 별다른 재미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런 소설은 어떤 소설인 것일까.. 라고 다시금 찬찬히 생각해 보면서 이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는 '나'를 포함해 총4명의 사람들은 바다에 해삼을 잡으로 간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해삼을 잡는 기억은 과거였으며,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다시 과거를 넘나든다. '나'인 유지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 작은 고모가 사는 해변빌라 509호로 이사를 오게 된다. 고모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자신의 친생모임을 알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 일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유지는 그 상처를 안고 중학교 생활을 해변빌라에서 시작하였다.

 

아빠의 빈 자리를 찾지 못했던 유지는 중학교 생물 교사인 이사경을 만나면서 자신의 빈 곳을 찾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던지도 모르겠다. 유지는 성장하였으며, 사랑을 만났고, 다시 해변을 찾게 되지만, 예전의 상실감은 그대로였다. 사랑은 언제나처럼 반복되고, 생활도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해변빌라와 해변의 카페, 폐해수욕장의 정경들은 흡사 외국의 그 어떤 곳으로 상상되어지곤 했다. 주인공들이 전해주는 가라앉는 분위기의 느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 소설을 잡고 있노라면, 귓가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 듯하고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것 또한 작가가 글로서 내 뿜는 글의 매력이자 능력이리라. 전경린 작가의 열한번째 소설 <해변빌라>는 그런 분위기를 풍겨냈다. 서점을 둘러보다, 인터넷을 끄적여보다 만나게 될 전경린 작가의 다음 열두번재 소설을 기다려 불 것이다.

 

 

 

밤에 긴 머리카락을 목에 감고 식물처럼 잠들 때, 아침 식탁에서 빵에 잼을 바르고 사과를 자르다 말고 가만히 정지해 있을 때, 발코니에 서서 오래 발아래에 출렁대는 바다를 내려다볼 때, 해변 방파제를 흰 치마를 입고 2센티미터쯤 부양한 사람처럼 걸어갈 때,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라고 사과 껍질 같은 시 한 구절을 중얼거릴 때. (p.47)

 

내가 그곳으로 간다 해도, 당신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령 내가 당신 곁에 묻힌다 해도, 당신의 유해로부터 내 유해 사이에는 아무런 통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당신이란 표현은 속임수, 수사학적 술책이다. 당신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p.71)

 

그러면서 왜 사랑을 하느냐고요? 말도 안 되는 사랑을 왜 하고 또 하느냐고요? 허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외에 무엇이 있지요? 먹는 것, 입는 것, 꿈도 없는 수면, 걷기, 살랑이는 바람, 햇살, 온갖 향기, 미소, 하지만 타인의 살갗을 파고드는 사랑보다 더 강렬한 행복감은 없어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 중독자이지요. 하지만 그 동작이야말로 삶에서 최고가 아닌가요? 그 외엔 아무리 미화해도 일과 온갖 관계와 생활이란, 그저 인생의 노동일 뿐이니까요.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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