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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ㅣ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1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사랑했던 <카모메 식당>의 저자 무레 요코의 신간 장편소설이다. 이 책 또한 영화로 상영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연꽃 빌라 사람들의 생활이 조용히 표현되어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독신의 몸으로 작은 방에 일 없이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일본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주인공 교코씨 또한 무직으로 세평짜리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 빌라의 이름은 연꽃빌라. 그녀의 나이는 적지 않은 마흔다섯 살이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직장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나 연꽃빌라에서 혼자 자립한 그녀의 생활은 여유롭고 찬란하기만 하다.
교코씨가 마흔다섯 살에 유명한 광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잔소리 심한 엄마에게서 벗어나 정착한 곳이 연꽃빌라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쉴새 없이 일만 하고 집과 직장을 오갔던 그녀는 연꽃빌라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시간을 보낸다. 사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인생의 아무런 즐거움도 모르며 가족을 위해 일만 하다 55세의 젊은 연세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교코는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자신이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한달에 10만엔씩 쓴다면 평생을 놀면서 살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연꽃빌라에 정착했다.
주택가 안쪽 구석에 위치한 세평짜리 연꽃빌라는 한여름에는 모기와 사투를 벌이고, 겨울에는 추위에 꽁꽁 얼어붙는 낡은 빌라였다. 하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교코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엄마는 그곳을 '더러운 곳'이라며 고개를 저어대고, 변함없이 굴지만 교코는 그런 말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교코는 이사하고 처음 얼마동안은 할일이 없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지만, 곧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면서 옆방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그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생활을 찾아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연꽃 빌라의 선배 주민인 할머니 구마가이씨와 직업이 '여행가' 라고, 외국인 남자를 좋아하는 고나쓰라는 아가씨. 그리고 폭력을 일삼는 주방장에게 요리 수업을 받으며 고군분투하는 사이토군. 연꽃빌라 이웃들과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이 교코의 조용한 일상에 큰 재미를 안겨 준다. 평생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우리만의 연꽃빌라를 마음속에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흐르는 강물에 제 몸을 맡긴 사람은 기분 좋게 흘러가지만, 도중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는 사람에게 현실은 고달프다. 아무 생각 않고 매 순간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사람은 흘러가는 데 능숙해져 오히려 그쪽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p.55)
결국은 스스로 정해야 하더라고. 가족이 있어도, 무슨 일을 하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거야. 누군가를 흉내 내는 건 할 수 없어. 너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없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으니까 시간이 나서 뭔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면 앞으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때?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거기서 또 생각을 해야 돼 하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잖아. (p.141)
조금은 어른이 됐구나 싶어 교코는 스스로를 살짝 칭찬했다. 부족할 것 없는 주거 환경에서 에어컨 신세를 지며, 창밖이 어떤 날씨이건 간에 쾌적하게 지내 왔던 삶 쪽이 오히려 가짜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본래 인간은 이렇게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래?" 하고 중얼거리며, 어느 때는 감사하고 또 어느 때는 당혹스러워하면서 서로 타협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