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마땅한 자
마이클 코리타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어 마땅한 자


영미 스릴러소설의 거장으로 꼽히는 마이클 코리타의 신작으로 스릴러 영화는 이런 소설들이 바탕이 되는거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을 읽는 동시에 머리 속에서는 생생한 영상이 연상되었다. 


올 여름 스릴러 소설 한 편이 읽고 싶다면 바로 이 소설을 집어들길 추천한다. 아이들을 지키려는 여성의 모성이 얼마나 강한지, 그 모성과 킬러들의 한판승부가 숨막일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 메인주의 대자연 속이다. 거기서 홀로 살아가는 여성 리아 트렌턴이 주인공이다. 그러다 10년 전 코슨 라워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위장했을 때 아이들과 함께 남겨두고 왔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어느날 날아들며 휘몰아치는 이야기는 시작된다. 


라워리가 보낸 전문 킬러들에게 쫓기게 되고 그녀는 또 다른 킬러 댁스 블랙웰과 손을 잡는다. 블랙웰 또한 이 소설의 씬스틸러로 묘한 캐릭터로 흥미를 더 한다. 결국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들이 이 소설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젊은 킬러 댁스 블랙웰은 살인청부를 가업으로 하는 블랙웰 집안에서 암살자 교육을 받고 성장했으며, 살인에 관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이다. 그는 자부심 넘치는 킬러로서의 호기심을 동기로 이 피의 게임에 참여한다..


저 ‘눈빛.’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블랙웰가 사람들의 눈빛. 램킨 박사는 그 눈을 누구보다 잘 기억했다. 댁스의 아버지와 숙부는 서로를 쳐다보는 법이 없었다. 서로 대화는 했지만―아, 대화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둘 사이의 유대는 늑대의 그것과 같아서, 즉 서로에 대한 이해가 워낙 깊고 내밀해서 둘 중 어느 한쪽도 형제를 볼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어떻게 반응할지 다 알고서, 한 몸처럼 움직였을 뿐. 두 사람은 마치 살인이 능한 춤꾼처럼 물리적 공간과 대화를 자유자재로 주물렀다. 댁스도 눈빛이 그들과 똑같았지만 대신 혼자였고, 그래서 박사는 다른 한 명을 볼 핑계로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킬러들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 이렇게나 멋지게 글로 표현될 수 있다는데 놀라웠고 미국의 광활한 자연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펼쳐지도록 만드는 작가의 필력 또한 감탄스러웠다. 


리아는 바위에 기댄 채 주르륵 내려오면서, 탄피를 배출시키고 새 탄환을 장전했다. 손은 전혀 안 떨렸지만 심장은 록밴드 드러머가 광란의 공연을 펼치는 양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사실은 아까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아이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부터 계속 그랬다. 발사하는 순간 총신을 살짝 돌렸고, 그걸로 충분했다. 얼떨결에 영점 몇 초의 차로 움직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 p.4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찰지능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찰지능 


IQ가 아닌 EQ의 시대란걸 알게 된 것도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InQ의 시대가 왔다는 주장을 설파하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주장에 완전히 설득되었다.    


특히 요즘 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세상을 살아갈지에 대한 개인적인 화두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주었고 4차 산업 혁명과 AI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주었다.


책의 구성은 우선 저자가 새롭게 제시하는 InQ라는 키워드 설명부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에 취약한 이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 등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가만히 보면 성공하는 사람에겐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런 사람은 IQ와 EQ는 당연히 어느 정도 갖추고 있고 이에 더하여 두 가지 지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이다.


처음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라는 저자의 이력이 의아하기도 했다. 의학 분야의 전문가가 쓴 인문학 책이면서도 자기계발적 요소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이야기들은 실제 의료 분야 경험이 바탕이 되어 여러 흥미로운 사례들을 읽어볼 수 있게 했다. 


그 외에도 한석봉 어머니와 고흐의 대결, 게슈탈트 전략으로 보기, 조선의 단발 기생 강향란, 만족 사고: 사람들이 사주팔자를 보러 가는 이유, 데릭 지터와 아지 스미스 중 누가 더 뛰어난 유격수인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의 BTS, 박인비의 품격, 만성 질환 치료의 본질: 이스터섬의 비극, 나무꾼과 김신조, 부부 싸움: 명분과 실리 둘 다를 살리는 인생의 자습법 등 어디서도 접해보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례들에서 독창적인 해석과 인사이트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열 가지 방법들을 나열하며 명쾌한 결론을 떠먹여주기도 한다. 통찰지능의 본질은 ‘과정’이다. 그리고 과정은 맥락이다. 그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 결과만 바라본다면 시야 사고, 지식 사고, 만족 사고만을 반복하게 된다.

인간의 통찰지능은 ‘메타인지’에서 꽃을 피운다. 메타인지란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케치 아프리카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케치 아프리카


수많은 에세이 책들을 만나봤지만 아프리카 스케치 에세이는 처음이라 솔깃했고 기대 이상으로 즐겁고 신선하고 특별했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실제 두 달여 간의 아프리카 여정을 스케치로 남기고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그림들과 함께 엮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와 빅토리아 호수, 타랑기레 국립공원은 여러 다큐멘터리와 인터넷 상에서도 사진과 영상으로 많이 접해봤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스케치는 또 다른 영감을 선사했고 그림 하나 하나 마다에서 한참을 머물며 감상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책의 구성은 다섯개의 챕터에 아루샤와 타랑기레 국립공원부터 만야라 호수와 응고롱고로 분화구, 올두바이와 세렝게티 국립공원, 내륙의 바다 빅토리아 호수, 아프리카의 사람들까지를 담고 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 호수와 거대한 분화구, 넓은 평원을 가득 메운 누 떼와 얼룩말들, 우아한 자태의 치타, 수많은 종류의 새들과 작은 곤충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그림 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이 넘쳐나는 문장들도 즐겁게 읽었다. 


물을 머금어 잔뜩 부푼 화지들과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프리카를 반추해 본다.

훗날, 내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도

아름다운 대자연의 싱그러움이

지금처럼 건재하기를 기원하며….


이곳의 풍경은 나무와 땅, 초록색과 갈색 두 가지 뿐이다. 탄자니아의 스와힐리어는 단어의 수가 그리 많지 않지만 초록색을 표현하는 단어만큼은 스무 개가 넘는다고 한다. 친절한 나의 가이드는 연노랑에 가까운 라이트그린에서 검정에 가까운 다크그린까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꼽으며 색깔 이름을 알려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말에서 회색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떠올려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폴레옹 세계사 세트 - 전3권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폴레옹  세계사


역사덕후라면 무척 반가워할 나폴레옹이 유럽을 재패할 시기를 1400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한 멋진 책이 나왔다. 단순히 나폴레옹 위인전이나 프랑스 역사책이 아닌 그 시대 유럽 전역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에 미친 영향을 세세하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해석에 힌트를 얻기도 했고 역사는 도미노처럼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고 그 사건이 또다른 흐름을 만들게 되고 어떤 작은 사건이 크나큰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흐름을 읽는 재미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했다. 


저자는 1792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은 180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름을 바꿔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궁극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23년간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이를 나폴레옹 전쟁이라 명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학창시절 어렴풋이 나폴레옹이 근대 유럽에 미친 영향을 아주 짤막하게 배운 듯 한데 이 책을 통해 아주 깊고 체계적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내부보다 해외에 훨씬 더 장기적 영향을 미쳤는데 결국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그의 제국은 유럽의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같은 시기에 영국은 인도 지배를 공고히 하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커나갔다. 


북유럽에서는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지위가 바뀌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재정렬이 이루어졌고 미국은 1776년에 시작한 독립의 과정을 1815년 전쟁으로 마무리하면서 진정한 탈식민 강국으로 부상했다. 에스파냐 아메리카 제국은 본국이 나폴레옹 전쟁의 격랑에 휘말리면서 해체의 길을 밟았다. 나폴레옹이 탄생시킨 라인 연방이 독일 연방으로 확대, 변형되면서 독일 통일의 첫 단추가 끼워졌고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세력 다툼에 엮이는 사이 이집트와 발칸반도 등 속주에 대한 지배력이 한층 약해졌다. 


책의 구성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의 집권까지의 혁명기를 다루는 초반부와 나폴레옹 전쟁의 여러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또 지리적으로 보여주는 중반부,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전쟁 이후의 세계를 둘러보는 후반부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혁명전쟁으로 프랑스가 획득한 것을 공고히 하려는 나폴레옹의 시도들과 그에 대한 유럽의 대응, 프랑스-영국의 긴장관계, 스칸디나비아와 발칸반도, 이집트, 이란, 중국, 일본, 남북아메리카 대륙 등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었다. 


그 외에도 29개의 세밀한 지도는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을 주며 독자들의 시선을 한참 머물게 했고 빼곡하게 수록된 지명들이 전쟁의 양상에 따라 국경선을 넘나들고 속령을 바꾸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폴레옹 전쟁이 세계지도만 다시 그린 것은 아니었고 중앙 권력의 강화, 징집제, 민족의식의 고취 등 나폴레옹 전쟁의 정치적, 사회적 유산 역시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로벌마켓 2023-08-1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으면서도 심플하고 구조적이면서 포괄적으로 서평을 잘 쓰신것 같습니다. 지나던길에 칭치ㅡㄴ

글로벌마켓 2023-08-14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던길에 칭찬드립니다.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 살려고 받는 치료가 맞나요
김은혜 지음 / 글ego prime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제목도 그렇고 ‘살려고 받는 치료가 맞나요’ 라는 부제도 그렇고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과 희망과 포기를 오가는 연명치료가 연상되는 첫인상의 책이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한방 암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를 보는 한의사라는 색다른 이력의 저자가 쓴 이야기였다. 일명 4차병원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동네에 있는 1차 의원부터 대학병원 같은 3차 병원까지 다 돌고 나서야 저자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저자의 병원에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다. 억울하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말기 암 환자들과 이들을 돕고 있는 저자의 경험, 생각, 느낌,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에세이 형식으로 엮여있다. 


선생님이 제 선생님이어서 행복했어요, 예쁘게 죽게 해주세요, 환자 티 안 나게, 가족을 놓아준다는 것, 좋은 아빠, 또 좋은 아들이고 싶었는데, 그래도 딸 결혼식에 손은 잡고 들어가야지 등의 눈물없인 읽을 수 없는 메디컬 드라마를 읽어볼 수 있었고 그렇다고 마냥 슬프고 힘든 얘기만 있는게 아닌 그 속에서도 일종의 희망의 불씨와 인생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죽음은 그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남은 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더 이상 밤마다 먹던 과일도, 사달라 조르는 것도, 외식도, 해외여행도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해서 스쳐 지나갔던 아빠의 모습 또한 오히려 그가 떠남으로써 기억 속에서 더욱 곱씹어졌고 선명해져 갔다.


“선생님, 이제 그만, 제발,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심장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러시는 거죠? 사모님 계시는데 잘 버티실 수 있어요. 더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 찾아볼게요.”


겉으로 감정을 숨기고 애써 여상히 말했지만 환자의 대답은 같았다.


“저 좀 포기해 주세요.”


꽤 자주 원망의 말도 날아오곤 했다. 포기해 줄 수 있으면서 왜 안 해주냐, 왜 내 말은 아무도 안 들어주냐, 누가 원해서 여기 있는 거냐, 당신이 뭔데 내 인생의 마지막을 휘두르려고 하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