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찰스 삼촌이 느닷없이 인도에 다녀오고 싶다며 제로니모도 함께 데려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은 고향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우주에서 뭄바이‘라는 외계도시가 내려와 그들이 기억하는 봄베이를 송두리째 덮어버린 듯했다. 그러나반드라 일대는 더러 살아남았는데, 건물만이 아니라 분위기도 그대로였고, 제리 신부도 여든 살의 나이에 여전히 정정했고, 여전히그를 숭배하다시피 하는 여신도에게 둘러싸인 상태였고, 다만 그들을 어찌해볼 만한 기력은 아마도 없을 터였다. 늙은 성직자의 성품은 세월과 더불어 침울해졌다. 체중도 줄고 목소리도 힘이 빠졌다. 여러모로 옛날보다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중국 음식을 먹으며 신부가 말했다. "나는 말이다, 라파엘, 이 시대가 아니라 내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내 시대에는 감히 나한테 참다운 봄베이 사람이 아니라거나 진짜배기 인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놈은 아무도 없었지. 그런데 요즘은 그런 소리를 함부로지껄이거든." 오랜만에 자신의 본명을 들었을 때 제로니모 마네제스는 어떤 아픔을 느꼈는데, 그것은 바로 소외감, 즉 자신의 일부인 고향에서 타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고, 또한 닭고기 볶음면을최후의 만찬인 양 허겁지겁 퍼먹는 제리 신부의 심정도 비슷한 소외감, 역시 이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의그때 그녀는 서른 살, 그는 마흔네 살이었다. 그녀는 그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제로니모는 야외에서 비바람에 시달려도 불만 없는 정원사였고 그의 하루하루는 차례차례 드러나는 비밀 같았다.
그의 가래 모종삽 전지가위와 장갑은 글쟁이의 펜 못지않게 온갖생물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봄철에는 대지에 꽃을 수놓고겨울철에는 얼음과 싸웠다. 애견가가 자기 개를 닮아가듯이 무릇일하는 사람은 하는 일에 따라 변모하기 마련일까, 그렇다면 미스터 제로니모의 사소한 기벽도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닐 텐데 아무튼 사실을 밝히자면 그는 자신을 식물로 여길 때가 많았다. 어쩌면인간과 대지의 교합으로 태어난 인간식물이라고, 따라서 경작자라기보다 경작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무신론자답게 그는 시간이라는 토양에 심긴 자신을 누가 가꿀까 궁리해보기도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언제나 그는 홀로 설 수 없어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착생식물이나 선태류처럼 자신도 뿌리 없는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이끼나 물풀이나 착생난초 같은 존재라고 상 상했는데, 그가 의지하는 상대 즉 그의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가꿔주는 정원사는 바로 엘라 마네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