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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름들 - 감각을 일깨우는 시인의 예술 읽기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4월
평점 :
사람의 영혼에도 숱한 주름과 상처가 있듯, 예술에도 수많은 주름들이 있다. 그런 주름과 상처들이 파도처럼 서로 밀려오고 쓸려나가며 시와 예술 사이의 작은 길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바의 바람이 담긴 책이다.
나희덕작가님
내겐 <배추의 마음>에서 자연과 사람이 물아일체하는, 혹은 이중섭의 그림들을 통해 제주생활을 시로 표현한 <섶섬이 보이는 방>으로 먼저 기억된다. 둘 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시들이다. 마치 눈앞에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혹은 그림 속 풍경이 고스란히 글들로 고이고이 땅으로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림도 시가 되고, 시도 그림이 된다는 것, 말이 아닌 진짜 글로 보여준 작가님이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냉큼 구입한 책, 자연과 여성주의정체성,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시와 통하는 예술 등으로 나뉘어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들이 담긴 책이다.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에요.” 라는 아네스 바르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라면 걸어가는 사람은 실이 되고 , 걷는 일은 대지를 꿰매는 바느질 같은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까 걷는 다는 것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의 행위인 셈이다.> 걷기와 눈의 응시 등을 통해 고행과 삶의 태도를 묻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간 위주의 길에서 만들어지는 로드킬을 다룬 황윤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란히, 초상화로 보여주며, 그 속에 담긴 깊은 심연과 고통에 동화되게 하는 정영창
누군가의 뮤즈가 아니라 자신의 뮤즈가 된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 로랑생, 콜비츠.
의자와 거미줄로 세상을 연결한 시오타 치하루
어머니를 찍은 한설희
어둠을 끄집에 낸 고야,
본질만을 남기고 싶었던 자코메티
그 외에도 글렌 굴드나 김인경, 뒤샹, 에셔, 칸딘스키부터 장민숙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소통한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색이 공감각임을 알게 해 준 화가 로스코.
그리고 검은 눈물을 거칠게 토해내며, 절규와 분노를 그렸던 윤형근, 이매리의 <시배달>
시도 소설도 그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림을 본다는 건, 그냥 본다는 것이 아니다. 그림 속엔 울다가 벌개진 눈동자가 있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규도 있다. 그럼에도 삶의 이유가 담긴 희망이 있다. 어떤 그림은 이콘처럼 성스럽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같이 침을 뱉자고 유혹한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림에도 뒷모습이 있다. 그 뒷모습은 각자의 경험이나 삶의 모습에 따라 다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긴 여운을 남기는 그 뒷모습은 작가님들이 우리에게 주는 보너스컷 같은 건 아닐까.